가짜 일, 가짜 공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진짜 일인가?

by 권민

어제 꿈에 학력고사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해서 끙끙거리는 꿈을 꾸었다. 놀랍게도 꿈속에서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안심했지만, 끝내 고사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총융청 수어청 어영청 금위영,” “아인 아이네스 아이네 아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혀끝에 맴도는 이 단어들은 내 머리에 강제로 박힌 시험용 암기의 잔해들이다. 이런 단어들은 마치 참전 용사의 몸에 박힌 파편처럼 내 몸 어딘가를 떠돌다가, 어느 순간 불쑥 머리 위로 튀어나온다.


1년 전, 재수 기숙학원에서 아들을 데리고 나오던 날이 떠오른다. 기숙사에 쌓인 수험서들을 버리기 위해 마당 한편의 폐지 구역으로 향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컨테이너 4개를 붙여 놓은 듯한 책 쓰레기 더미는 처음 보았다. 아들의 책도 새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곳엔 띠지조차 뜯지 않은 새 문제집들이 수두룩했다. 도대체 이 기이한 교육 환경 속에서 진짜 웃는 자는 누구이며, 돈을 버는 자는 누구인가?


학창 시절 내내 품었던 의문이 있다. “학교에서 배운 이 지식들이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면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할까?” 교양 상식 정도로 충분했을 지식들을 왜 그토록 처절하게 외우며 살아야 했을까? 인공지능이 도래한 시대, ‘공부’와 ‘학습’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뼈아프게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 없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다. 그리고 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직장에 다니면서도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치열한 고민과 대답 없이 그저 열심히만 살다가, 마치 학교를 졸업하듯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대학 입시만을 위한 유통기한 짧은 ‘가짜 공부’의 습관이, 인생 전반을 지배해온 것은 아닐까.


이제 인생의 중반을 넘어 퇴직을 마주한 시점,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를 묻기 전에 먼저 따져물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일은 ‘진짜 일’인가, ‘가짜 일’인가.” 나는 그 기준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했다. “조직의 간판을 떼고도 내 이름으로 지속 가능한가.”


‘가짜 일’은 그럴듯해 보인다. 겉으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정작 내 삶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당장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반복적 업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체면치레용 명함, 목표 없이 그저 시간을 죽이는 활동들이 그렇다. 하루는 빈틈없이 꽉 차는데, 성장의 기쁨도 삶의 의미도 남지 않으니 오래 지속할 동력을 잃고 만다.

가짜 일은 바쁨이 남고, 진짜 일은 결과와 성장이 남는다.


반면 ‘진짜 일’은 두 가지 축을 동시에 바라본다. 하나는 나만의 경쟁력으로 만드는 ‘지속 가능한 수입’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의미’다. 강의든, 컨설팅이든, 혹은 창작이나 멘토링이든 상관없다. 돈만 좇으면 삶이 공허해지고, 의미만 좇으면 현실에 지쳐 금방 나가떨어진다.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자꾸 ‘가짜 일’을 선택하게 될까. 경제적 불안감, 여전히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한다는 인정 욕구, 그리고 낯선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환은 나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질문을 붙들고, 지금 하는 ‘가짜 일’을 10%만 줄여 보자.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작은 실험을 시작하는 거다. 글을 한 편 써보든, 누군가를 위해 작은 강의나 상담을 해보든.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연결될 때, 그 일은 비로소 지속성을 얻는다.


퇴직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의 정의’가 바뀔 뿐이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은, 당신이 붙잡고 있는 일은, ‘진짜’에 가까운가, ‘가짜’에 가까운가.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을 다시 정의해 보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퉁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의 정확한 제목을 붙여 보자. 그 일을 하려면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 적어 보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확인해 보자.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고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자.

끝으로, 내가 쌓은 지식으로 누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정리해 보자. 내가 ‘진짜 일’을 하고 있다는 나만의 정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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