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있나요?"
인생 2막의 햄릿(3-3)
“당신은 2020년 12월 1일에 존재했나요?”
나는 중장년의 자기다움을 찾는 회고록 강의를 시작할 때 수강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대부분은 답을 찾기 위해 사진 앱을 열어 그날의 이미지를 찾거나, 일정표와 메일을 뒤져 흔적을 되짚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날을 증명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면 다시 묻게 된다. “그럼 저는 그날 존재하지 않았던 건가요? 강사님은 어떻게 증명하시나요?”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써 온 일기를 보여 준다. 내가 존재했던 증거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내가 존재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동시에 그 활동으로 나를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글은 나만의 증거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를 남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일 또한 내가 여기에 존재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행위다.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인간의 직립보행과 닮았다. 직립보행으로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도구를 다루고, 마침내 예술과 창의의 세계로 나아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생각을 다루는 도구다. 언어와 문자는 추상적 사고를 붙잡아 정리하게 하고, 그 사고를 타인과 공유하게 한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생각을 피하려는 현대인을 다시 자기 자신 앞에 세운다. 직립보행이 우리를 자유롭게 이동하게 했듯, 글쓰기는 우리를 내면으로 이동하게 한다. 그런데 디지털 매체에 길들여진 우리는 생각하는 글쓰기보다 무의식적으로 동영상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생의 인디언 서머(대개 50대 중반 무렵)에 들어선 이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내가 누구였는지를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인디언 서머를 맞이한 많은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글쓰기와 자기 성찰을 사치나 시간 낭비로 여긴다. 삶을 채워 온 것들이 주로 외부의 목표와 타인의 기대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진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필요가 있다.
논리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내면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오직 써 본 사람만이 아는 경험이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본 사람이라면,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나답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기다움을 글로 남길 필요가 있다. 기억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된 나’는 글로 남는다. 인디언 서머에 쓰는 글은 남이 만들어 준 대본이 아니라, 내가 다시 쓰는 대본이 된다.
소설보다는 개인 일기 쓰기로 더 잘 알려진 아나이스 닌은 이렇게 말했다.
“We write to taste life twice, in the moment and in retrospect.”
(우리는 글을 써서 삶을 두 번 맛본다. 그 순간에, 그리고 돌아보는 순간에.)
회고록을 써 보자. 2020년 12월이 기억에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만 찾아서 글로 써 보자.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서야 알게 되는 운명의 결을 경험할 수 있다.
인디언 서머를 지나는 중장년은 청춘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를 이미 경험했다. 우리는 전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하루살이처럼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나를 알지만, 앞으로의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생을 글로 쓰며 하루를 산다.
“We know what we are, but know not what we may be.” (Hamlet, Act 4, Scene 5)
“우리는 지금의 나를 알지만, 앞으로의 내가 무엇이 될지는 알지 못한다.”
(참고로 계속 연재되는 이 글들은 2026년에 런칭할 uni time 콘텐츠를 소개하는 티저 캠페인(teaser campaig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