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보이는 것들*

속도에서 방향으로

by 권민

멈춰야 보이는 것들


주말 아침마다 레이싱 자전거(트렉 마돈)를 탔다. 몇 년 전만 해도 50분 안에 3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 풍속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평균적으로 1시간 이내에 30킬로미터를 끊었다.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마돈 자전거는 나에게 페라리같은 모델이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누군가에게 추월당하는 순간, 왠지 백발의 노인이 오픈 스포츠카로 젊음을 과시하다 신호에 걸린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안장이 오르면 나도 모르게 속도를 올렸고, 앞사람을 따라붙어 끝내 추월하며 달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로드 자전거의 속도감 자체를 즐겼다기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기확인과 위안 때문에 페달을 밟았다. 열심히 타면 다리에 근육이 붙고, 오히려 더 젊어질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페달은 앞으로 돌렸지만, 마음은 인생의 시계를 뒤로 감아 지금을 더 오래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심하게 몸살을 앓고 난 뒤부터 1시간 안에 30킬로미터를 타는 일이 버거워졌다. 예전에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육이 붙기보다 피로가 쌓이는 느낌이 더 컸다.


그날 이후, 자전거를 타면서 속도계를 의식적으로 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끝내 속도계를 핸들에서 떼어냈다. 마치 40대 중반에 노안을 받아들이고 안경을 바꿨듯, 50대 중반이 된 나는 몸의 변화를 인정하며 ‘편안하게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탈 때 속도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자전거 안장 위에서 사색할 여유가 생겼다. 일정한 속도로 페달을 밟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움직이는 명상’ 같은 경험이 찾아온다. 앞바람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저항만이 아니라, 바람의 두께와 결, 그리고 온도로 다가왔다.


30~40대에는 속도가 인생의 목표였고, 성공과 발전이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50대가 되니 방향이 중요해졌다. 방향은 더 빨리 가는 법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쓰는지에 대한 감각이었다. 문제는 그 방향을 어떻게 찾느냐였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바꿨다. 경주용 자전거 대신 일반 로드용 자전거로 옮겼다. 클릿 신발도 벗고 평페달로 바꿨다. 기록을 위한 장비도 내려놓았다.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무리로 움직이지 않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호회에 공유된 ‘라이딩 코스’에서 벗어나, 자전거의 속도감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감각을 찾았다. 가 보고 싶은 길, 왠지 끌리는 길,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따라 달리며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찾은 방향은 목적지가 아니라, 이렇게 달리는 시간을 사랑하는 나였다. 그리고 그 깨달음 이후, 움직임은 더 이상 젊음을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균형을 지키기 위한 리듬이 되었다.

누구나 중장년의 시간에는 ‘멈춤’이 찾아온다. 멈춤은 정지나 끝이 아니라, 속도의 방식을 바꾸라는 신호다. 그 신호 앞에서 다시 방향을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를 알게 된다.



(연재 글은 2026년에 런칭할 uni time 콘텐츠를 소개하는 티저 캠페인(teaser campaign)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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