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나의 서사를 만드는 일
Aging(나이듦)이 아니라 Branding(나듦) 01
2022년 RM 소더비(RM Sotheby’s) 경매에서 약 1,800억 원에 낙찰된 차가 있다. 1955년형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 우렌하우트 쿠페’다. 내비게이션도 없고, 에어컨도 없다. 빠르지도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쌀까?
이 차가 특별한 이유는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이야기와 오리지널리티가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신 차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의 가치, 기술의 맥락, 한 시대의 상징이 그 한 대에 응축되어 있다.
경매를 보다 보면 그런 물건을 종종 만난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 유니폼이 700만 달러에 낙찰되고, 토머스 테일러가 그린 첫 번째 해리포터 수채화 표지 원본이 19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이것들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이야기를 가진 물건’이다. 결국 가치는 연식이 아니라 서사에서 나온다.
자기다움 교육에 ‘부장품’ 과제가 있다. 내 무덤이 1,000년 뒤 발굴되었을 때도 “내가 누구였는지” 말해줄 수 있는 물건 10개를 가져오는 과제다. 일주일 동안 목록을 고르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이 깃든 물건을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곁에 두고 살았던 것들이 정작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갖고 있었지만 나를 말해주지 못하는 물건이 의외로 많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죽은 뒤, 내 물건들은 어떻게 될까? 20년을 함께한 만년필은 당근마켓에서 중고가로 팔리겠지. 수십 년 동안 이사를 하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책들은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되겠지. 내 식구들은 내 유골함 옆에 무엇을 갖다 놓을까. 만약 내가 직접 하나만 선택한다면, 나는 무엇을 고를까.
은퇴 같은 퇴직 이후 중장년이 되면 결국 ‘내가 누구인지’가 더 궁금해진다. 직함과 역할이 사라질수록, 이름 석 자만 남을수록 그 질문은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나는 ‘사과 상자’ 하나를 권하고 싶다. 직장을 떠나며 ‘짐’을 싸던 상자를, 이제는 나를 찾기 위해 ‘삶’을 담는 상자로 바꾸어보자는 제안이다. 그 안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물건’ 10개를 담아보자. 이것은 물건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내 삶의 이야기를 모으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좋은 것 중 하나는 새로운 물건을 찾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일이다. 사과 상자 안의 10개 부장품이 결국 내 인생의 오브제, 무심히 지나쳤던 흔적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 내가 누구로 살아왔는지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삶’이다. 그러나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삶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의미를 찾아 헤맸고, 때로는 의미가 우리를 찾아오기도 했다. 다만 결국 알게 된다.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글을 써보면 그 사실이 더 선명해지고, 그 의미가 문장으로 드러나 읽힌다.
서양 속담에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아지지만, 그것은 좋은 포도로 담갔을 때만 그렇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도 비슷하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늙은 사람과 어른의 차이는 결국 ‘좋은 포도’(가치)의 차이다. 세월이 우리를 빚어 주는 게 아니라, 세월 속에 무엇을 담아 숙성시켰는지가 우리를 만든다.
오늘 밤, 마트에서 가져온 상자에 부장품을 담아 보자. 그리고 그 물건에서 시작된 나의 인생 이야기를 발효시켜 글로 써보자. 글은 삶을 숙성시키는 힘이 있다. 이해보다는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연재 글은 2026년에 런칭할 uni time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티저 캠페인(teaser campaig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