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퇴직)이후, 인생 문법의 전환*

은퇴 이후,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딩

by 권민

나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해왔다. 내게 브랜드는 상표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세계관이 되었다.


삶을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나눈다면, 마케팅은 ‘경쟁의 언어’다. 남과 달라지기 위해, 남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는 방식이다.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 생존을 위해 마케팅을 하듯, 사람도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마케팅한다. 더 나은 성과, 더 높은 연봉, 더 안정적인 자리. 마케팅은 말 그대로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문제를 다룬다. 비교와 경쟁이 삶의 기본 문법이 된 시대,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케팅의 문법으로 살아왔다.


반면 브랜딩은 ‘정체성의 언어’다. 남과 비교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더 분명해지는 과정이다. 브랜딩이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 길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다움을 ‘도구’로 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을 넘어 고유한 정체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그 자체로 ‘완성’되는 길이다. 전자의 선택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자기다움이 도구로만 남는 순간, 브랜딩은 다시 경쟁의 언어로 되돌아간다. 후자를 택해 끝까지 밀어붙인 브랜드는 결국 경쟁의 규칙을 바꿔 버린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이 그랬다. 그들은 경쟁사의 기능을 따라가는 대신, ‘애플다움’이라는 자기 기준으로 세계를 재편했다.


이런 브랜드는 늘 ‘자기 기준’으로 산다. 애플은 애플다워야 하고, 할리 데이비슨은 할리 데이비슨다워야 한다. 남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이어야 하느냐가 기준이 된다. 이것이 브랜딩의 핵심이다.


브랜드가 사람을 닮은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 가치관, 결핍과 욕망이 브랜드 안에 스민다. 그래서 훌륭한 브랜드에는 인격(personality)이 있다. 결국 우리가 어떤 브랜드에 끌린다는 것은, 그 브랜드가 품고 있는 인간적인 고유함에 공명한다는 뜻이다. 브랜드가 사람을 닮았다면, 사람도 결국 자기라는 브랜드를 살아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은퇴 이후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브랜드 관점에서 은퇴는 멈춤이 아니라 ‘문법의 전환’이다. 타인의 기준을 맞추던 마케팅의 언어를 내려놓고, 나의 기준을 세우는 브랜딩의 언어로 갈아타는 시간이다. 그래서 은퇴 이후는 여생이 아니라,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세상에 고유한 존재로 남는 적극적인 브랜딩의 과정이어야 한다. 무엇을 더 얻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누구로 남느냐가 중요해지는 시기다.


조지 버나드 쇼는 “우리는 우리가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은퇴 이후의 시간은 과거를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정체성을 세우고 완성하는 시간이다. 타의에 의해 씌워진 가면을 벗고, 스스로의 길을 담대하게 개척할 때 은퇴는 그 자체로 위대한 모험이 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맞이한 중장년 은퇴를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내가 되려는 용기를 가질 때,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나다워지는 ‘나듦’이 된다.


나는 이 전환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삶의 문법을 마케팅에서 브랜딩으로 바꾸는 실험을 내 인생에 직접 적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은퇴라는 이름의 퇴직 이후, 1인 기업가로 다시 창업했다.


10년 전 내가 발행했던 『유니타스브랜드』는 에디터, 디자이너, 마케터 등 나를 포함해 13명의 동료가 함께 치열하게 만들던 잡지였다. 반면 지금의 『엔텔러키브랜드』는 1인 기업이 만드는 독립잡지다. 조직의 덩치는 줄었지만, 브랜드의 밀도는 더 높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일을 평생의 일로 삼고 싶었다. 물론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낸 것은 아니다. 또 다른 1인 기업가와 협업해 『엔텔러키브랜드』를 완성했다.


지난 1년, 1인 기업으로서의 시간은 내게 ‘1인 학교’였다. 조직의 직함 뒤에 숨어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혼자 힘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배워 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 배움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어 함께 나누려 한다.


1인 기업은 내가 나를 배우는 ‘인생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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