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이라는 훈련

중장년 1인 기업가 학교

by 권민



나이듦은 근육의 훈련이 아니라 관계의 훈련이다. 젊을 때는 몸을 관리하면 삶이 따라왔지만, 나이 듦은 그 반대다. 삶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몸이 무너진다.


30대까지 육체와 정신은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마음이 원하면 뛰었고, 느끼는 대로 몸은 반응했다. 아령을 들면 근육이 붙었고, 숟가락만 덜어도 살이 빠졌다. 그 시절 내가 훈련했던 것은 욕망의 절제와 충동의 자제였다. 문제는 늘 흥분한 몸이 앞서 달렸고, 나는 그 에너지를 감당하기 벅찼다는 데 있었다.


40대부터는 육체와 정신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헛돌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노안이 왔다. ‘나’는 여전히 예전 속도로 살고 싶은데, 몸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자전거를 알루미늄에서 카본으로 바꾸고, 최고급 러닝슈즈를 신으며 30대의 리듬을 흉내 냈지만, 청춘의 속도는 30분도 가지 못했다. 염색약으로 검정 옷에 터져 나온 실밥 같은 흰머리를 덫칠해 보기도 했다. 마치 자동차의 잔기스를 붓페인트로 쓱 칠해 감추는 것처럼. 그러나 머리카락과 두피 사이 틈으로 새어 나가는 세월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나잇살은 몸 곳곳에서 누수처럼 흘러나왔다.


50대가 되면 그 틈은 ‘부분’이 아니라 ‘거리’가 된다. 육체는 느려지는데 정신은 여전히 빠르다는 환각에 빠진다. 마치 두 치수 큰 옷과 세 치수 큰 신발을 질질 끌며 운동경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육체를 더 조이는 절제력이 아니다. 육체의 속도에 맞게 정신을 조율하는 훈련이다. 나이듦은 결국 ‘정신의 재부팅과 재정렬’이다.


여기서 나는 나이 든 사람을 어떻게 부를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을 노인이라 부르고, 극존칭으로 어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노인은 생물학의 결과다. 어른은 태도의 결과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도 “어른스럽다”라는 칭찬을 한다. 어른은 나이 먹는다고 자동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결국 중장년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자연의 법칙에 떠밀려 노인이 될 것인가. 성숙과 깊음이라는 지혜를 따라 어른이 될 것인가.


50대는 “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뼈저리게 안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라 삶의 저주다. 늙은 몸에 아이의 전두엽을 갖고 살면 모든 관계가 무너진다. 그래서 나이듦은 ‘어른이 되기 위한 훈련’인 동시에, ‘어른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습관을 끊어내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 훈련은 화려하지 않다. 말 그대로 전두엽 관리다. 공중 질서를 지키고, 말을 끊지 않고, 나이를 권위로 착각하지 않는 일이다.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고, 약자 앞에서 태도가 변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어른에 가깝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중장년에게 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신은 아직 젊은데 육체는 이미 다른 시간대에 산다. 우리는 종종 노화가 천천히 진행된다고 착각한다. 세월은 빠르게 달리는데, 내 몸의 변화는 못 느끼는 것이다. 마치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공전해도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늙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 나이듦을 준비하지 않고 방치한다.


그렇다면 혼자 책을 읽고 사색하면 어른이 되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른이 되는 일은 산속에서 혼자 수행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증명된다. 특히 퇴직 이후가 그렇다. 직위와 직급이라는 계급장, 훈장이 달린 유니폼을 벗는 순간, 우리는 벌거벗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는 타인의 반응 속에서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어른의 길은 공동체 안에서 열린다. 타인을 섬기며 ‘성장’이 아닌 ‘깊이’를 선택하는 길이다. 어른은 홀로 고고한 종교적 성자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틈에서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다.


워런 버핏은 2025년 11월 10일 주주서한에서 이렇게 썼다. “종교가 있든 없든, 행동의 지침으로서 황금률(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대접하라)을 능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친절의 가치를 강조하며, 황금률을 언급한 직후 “청소하는 분도 회장과 똑같은 인간임을 명심하라”고 덧붙였다. 이 문장들에 어른의 핵심이 숨어 있다. 워런 버핏이 말한 '직업과 상관없는 인간 존중'은 타임뱅크의 '모든 시간의 평등함'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황금률에는 함정이 있다.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대접하라”는 말에 “그러면 대접받는다”는 보상 조건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give and take의 사회 공식이 아니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대접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 그 ‘무보상성의 품격’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훈련의 정수다.


나이듦은 결국 이 훈련을 요구한다. 육체를 30대로 되돌리는 기술이 아니라, 육체가 바뀐 자리에서 정신을 새로 배치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기술의 완성은 관계에서 드러난다. 대접하되 계산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어른이다.


나는 이 훈련을 위해 2026년, ‘유니뱅크(Uni Bank)’를 소개한다. 타임뱅크 시스템으로 구축된 유니타스라이프((unitaslife.net)는 한 마디로 어른이 되는 커뮤니티다. 『엔텔러키브랜드』 2호에서 타임뱅크 손서락 대표를 인터뷰하며 깨달은 ‘시간의 황금률’을 실제 커뮤니티로 구현했다. 자신의 경험과 경력으로 타인의 1인 기업을 돕고, 그 도움의 과정에서 스스로도 어른이 되어 가는 방식. 말하자면 이곳은 어른이 되기 위한 체육관이다. 몸을 단련하듯 태도를 단련하고, 자본을 쌓듯 인생의 깊이를 쌓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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