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연합
나는 25세에 광고 기획자로 일을 시작했다. 27세에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29세에는 브랜드 기획자로 옮겼다. 33세에는 브랜드 컨설턴트가 되었고, 이후 브랜드 편집장으로, 브랜드 교육자로 치열하게 살았다.
돌아보면 지난 30년은 ‘브랜드’라는 한 단어에 내 삶을 통째로 건 시간이었다. 남의 브랜드를 진단하고, 죽어 가는 브랜드를 살리고, 작게 시작한 브랜드를 키우는 일이 나의 업(業)이었다.
그런데 50세 무렵, 내가 맞닥뜨린 것은 성공의 트로피가 아니라 몸의 붕괴였다. 어느 날 체중계가 98kg을 가리켰다. 그 숫자는 몸무게라기보다 경고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 귀가 갑자기 먹먹해지며 급발성 난청이 찾아왔다. 당뇨 전 단계라는 말도 들었다. 잇몸은 버티지 못했고, 임플란트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워졌다. 몸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그 문장이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먼저 울렸다.
그때 남의 브랜드는 수없이 돌봤지만, 정작 ‘나’라는 브랜드는 처참하게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랜드에는 그토록 ‘지속 가능성’을 강조했으면서, 정작 내 삶의 지속 가능성은 관리하지 못했다는 모순이 내 삶에서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리뉴얼’하기로 결심했다. 홍해파리가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 새 주기를 시작하듯, 나는 삶의 규칙을 다시 설정하는 변환(變換)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몸이었다. 커피를 끊고, 밀가루를 버리고, 운동화를 신었다. 숨이 차오르고 근육이 붙고 체중이 내려가자 삶의 감각이 달라졌다. 피로가 줄고, 머리가 맑아지고, 감정의 파도가 낮아졌다. “몸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말을 그때 처음,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건강 회복은 시작일 뿐이었다. 몸은 바탕이고, 진짜 질문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 누구로 살 것인가.”
나는 여기서 ‘두 번째 나’를 설계했다. 두 번째 나는 과거의 경력을 훈장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두 번째 나는 과거의 명함을 삶의 중심에서 치워 버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맞는 규칙을 다시 세우는 사람이다. 경력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을 갱신하는 사람, ‘직함 기반의 나’에서 ‘목적 기반의 나’로 이동하는 사람—그것이 내가 말하는 두 번째 나다.
첫 번째 내가 조직 안에서 정의된 ‘나’였다면, 두 번째 나는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나’다. 더는 조직이 내 시간을 배치해 주지 않는다. 내가 내 시간을 배치해야 한다. 내가 내 규칙을 만들고, 내가 내 일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내 삶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1인 기업’이 되었고, 그 기업의 본질은 곧 ‘1인 학교’가 되었다. 내가 살아오며 축적한 브랜드의 지식과 경험을, 누군가의 다음 삶으로 옮겨 심는 학교 말이다.
중장년의 경험은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크고 귀하다. 지금까지 쌓아 온 시간을 ‘과거’로 봉인하지 말고, 다음 삶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흩어진 중장년의 시간을 모아 가치로 바꾸는 실험, 서로의 시간을 교환하고 서로의 경험을 자본으로 만드는 연합이 있다. 중장년의 다음 주기와 유산의 설계를, 유니타스라이프(unitaslife.net)에서 ‘1인 기업 연합 학교’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