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상실을 미리 겪어본 자의 고백

by 권민

어제는 『두 번째 나』를 함께 읽으며 ‘자기다움’을 찾는 독서 모임을 가졌다. 이번 주제는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편지 쓰기’였다. 우리는 워크숍을 통해 상상으로 만든 ‘미래 기억’이 지금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눔 시간, 부모님이 오랜 질병으로 고생하고 계신다는 40대 후반의 한 회원이 입을 뗐다. 그분은 80세가 된 자신이 40대 후반의 자신에게, 병든 부모님을 모시는 고단함에 대해 편지를 써보았다고 했다. 80세의 시선으로 부모님의 나이에 서보니, 부모님의 고통과 외로움이 가슴으로 들어오더라는 고백을 했다.


나 역시 회원들에게 나의 충격적인(?) 편지 쓰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장례를 마친 뒤 홀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설정이었다. 『두 번째 나』를 집필하기 전, 여러 워크숍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 본 일종의 ‘미래 충격 실험’이었다.


이런 가혹한 설정을 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훗날 내가 치매에 걸려 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고, 질병이나 사고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마지막 인사를 전할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부재한 세상에서 아내가 겪게 될 슬픔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


혼자 식탁에 앉아 펜을 들었지만, 한동안 단 한 글자도 적을 수 없었다. 머리로는 ‘설정’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밀려오는 슬픔과 막막함은 실재처럼 무거웠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 상황을 직면하기로 했다. ‘잃어보아야 소중함을 안다’는 격언을 관념이 아닌 심장의 통증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넘도록 오열하며 편지를 써 내려갔다.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이었지만, 그 고통은 아내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기적 같은 선물임을 각인시켰다. 13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내 안에 깊은 흉터로 남았다. 예전에는 혼자 집에 있을 때 소파에 누워 TV만 보았다. 지금은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밀려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덕분에 아침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아내의 뒷모습만 보아도 마음 한쪽이 짠하게 차오른다. 나는 이미 그 편지 속에서 그녀를 한 번 잃어보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전해 들은 목사님은 이를 부부 세미나에 도입하셨다. 예상대로 참가자들의 눈물이 이어져 진행이 쉽지 않았다. 그 세미나에서 아내 역시 예외 없이 이 편지를 써야만 했다.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혹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거는 행위는 나라는 존재를 가장 깊은 곳까지 이해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먼 미래의 추상화가 아니라, 반드시 당도할 나의 현실이다.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시선으로 내 곁의 사람과 나의 일을 바라볼 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상인지가 가려진다. 그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내 삶의 가치를 둘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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