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준비는 언제해야 할까요?

지금 당장

by 권민

중장년 자기다움 교육 시간에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은퇴는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나요?”


20대가 물어보면 슬슬 시작해야 한다고 답한다.

30대가 물어보면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답한다.

40대에게는 지금 바로, 50대에게는 지금 즉시라고 말한다.

60대가 물어오면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라고 권한다.


수강생들은 이 황당한 조언에 당혹해하며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당장 은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대부분은 은퇴 준비를 돈이나 수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은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안정적인 배당은 어디서 나올지에 매몰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은퇴 준비는 돈과 관련이 없다. 돈은 은퇴의 ‘조건’일 수는 있어도, 은퇴의 ‘정답’은 아니다. 은퇴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사건이 아니라 역할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나를 완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은퇴(隱退)는 한자 뜻 그대로 ‘숨고 물러난다’는 의미다. 나는 이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따라붙는다. 물러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 은퇴 준비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일이다.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더 이상 돈이 나의 역할을 증명해 주지 못할 때, 나는 누구인가.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은퇴 준비란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이 더 이상 나의 가치를 증명해 주지 못할 때 드러날, 진짜 나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 이런 말이 전해진다.

“소크라테스와 오후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회사가 소유한 모든 것과 바꾸겠다.”

세상을 바꾼 기기를 만든 사람이 왜 하필 2,500년 전 철학자를 그토록 갈망했을까. 잡스는 돈과 성취로는 끝내 닿을 수 없는 어떤 ‘가치’를 소크라테스에게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혜일 수도, 깨달음일 수도 있다. 은퇴 준비도 이와 닮아 있다. 성취로 쌓아 올린 나를 내려놓고, 사람으로 남는 나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수업 시간에 나는 잡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종종 묻는다.

“당신에게도 전 재산을 걸고서라도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선뜻 이름을 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끔은 만나고 싶은 이유를 물으면 선명하게 설명하지 못한 채 웃기만 한다. 내 모든 소유와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자 내가 도달하고 싶은 지향점이다. 그런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 삶의 방향이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내가 하는 일에 가격을 매겨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존재로 남을까.


그때 돈과 일로 평가되지 않는 나를 비로소 마주한다. 돈과 일로 평가되지 않는 나, 역할과 직급으로 정의되지 않는 나. 그것은 늙어버린 내가 아니라, 평생 사회적 역할 뒤에 가려져 있던 ‘자기다움’을 가진 나다.


은퇴를 준비한다는 것은 그 만남을 미리 시작하는 일이다. 지금 나의 소유를 모두 바쳐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은퇴 준비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의 일상을 바꾸는 연습이다. 직급이 아니라 태도로 하루를 정리해 보고, 성과가 아니라 관계로 내 시간을 기록해 보고, 돈이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로 선택의 기준을 세워 보는 일이다.


그것은 은퇴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두 번째 나를 미리 연습하며 만나고 싶다.

어떤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 비로소 은퇴 준비를 할 수 있다.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가치있는 진짜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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