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으로 태어나 복제본으로 죽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번째 나’는 미래에서 온 나 자신을 뜻한다. 그런데 이 말은 SF적 상상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살아내는 현재의 나를 부르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일까. 이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로 이어진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1996년부터 일기를 써 왔다. 감정의 변화, 좋아하는 것, 해야 할 일, 마음의 결을 계속 기록해 왔다. 어느 날 예전 일기를 읽다가 놀란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인데도 타인이 쓴 글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바뀌었고 취향도 달라졌고 가치관도 변해 있었다. 일기는 추억보다 더 정확했다. 성장과 성숙뿐 아니라 퇴화와 퇴보의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과거의 나는 유치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떤 순간에는 지금보다 더 성숙해 보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고 더 많이 배웠는데도 내 안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함께 있었다.
그때부터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대인들이 밤하늘을 관찰하며 시간과 달력을 만들었듯, 나도 나를 탐구하며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원칙으로 움직이는지 찾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왜 다를까.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얼마나 달라질까.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과연 누구일까. 나는 이 질문의 끝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내가 붙든 방법이 ‘시간여행’이다. 내가 말하는 시간여행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나를 물리적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내가 되어 현재를 사는 것이다. 방법은 단순하다. 미래의 내가 지금 이 하루를 산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이 질문을 붙들면 현재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한 가지만 묻는다.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오랫동안 일기를 쓰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언제나 특정한 가치에 반응해 왔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그 가치를 기준으로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미래의 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추구해 온 가치를 더 온전히 실현한 나다. 그 가치와 하나가 된 내가 곧 ‘나다운 나’가 된다. 그래서 두 번째 나는 시간상으로는 미래의 나이지만, 실제로는 나답게 살고 싶은 나를 뜻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고, 그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지금”이라는 말이 있다. 내 시간여행도 그 말과 닮아 있다. 20년 후의 나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씨앗을 심는 일이다. 현재는 미래의 토대가 되고, 미래는 현재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미래를 상상이 아니라 ‘기억’처럼 만들어 두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2035년에 온 미래의 나다. 나는 2035년의 나를 방송작가가 드라마의 주인공을 살려 내기 위해 A4 열 장 분량으로 묘사하듯, 아주 자세히 적어 두었다. 이것을 시간여행에서는 ‘미래 기억’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기억으로 정체성을 갖듯, 미래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미래 기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느낀다면, 이제부터 두 번째 나로 나답게 다시 살아가고 싶다면, 시간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그 여행은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두 번째 나]에서 발췌 및 편집
“이미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잘못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빅터 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