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0의 순간
아마도 내 핸드폰의 [농구] 사진첩에 가장 많은 사진은 점프볼 사진일 것이다.
언젠가 꼭 기억하고 싶은 경기에서 사진 한 장 찍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구장에 갔던 사진을 넘겨보며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애써 기억해내지 않으면 그 경기를 빠뜨리게 되는 것이 괜히 아쉬워서, 이후에는 직관 때마다 사진을 한 장은 남기려고 한다.
그러나 특별히 마음먹지 않으면 경기 중에는 사진 찍는 것을 까먹기 일쑤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점프볼의 순간을 노리는 편이다.
점프볼의 순간은 아마도 농구 경기 중에 가장 조용한 순간일 것이다. 휘슬이 들리고 심판이 공을 들면, 경기장의 시끌벅적했던 음악이 잦아든다. 이때만큼은 홈팀팬들도, 원정팀 팬들도 응원은 잠시 내려놓고 공에 시선을 집중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점프볼을 따기 위해 뛰어오르는 선수들뿐 아니라, 뒤에서 공을 잡기 위해 가벼운 몸싸움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모두 조용히 공을 향해 시선을 고정할 뿐이다.
소리만 없는 것이 아니다. 경기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0의 순간이기도 하다. 아직 누구도 점수를 내지 못했고, 심지어 아직 어느 팀이 첫 공격을 할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공격과 수비를 미리 정하지 않고, 첫 번째 공격권을 '따내는' 스포츠는 많지 않다. 보통은 대진에 따라 공격 순서가 정해져 있거나, 코인토스 같은 어떤 행운에 달린 경우가 많다. 공격권을 선수들의 플레이로서 쟁취(?)해낸다는 것은 농구만의 꽤나 독특한 매력으로 느껴진다.
한편, 점프볼을 가져오는 것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닌 것 같다. 농구가 공격이 유리한 스포츠는 맞지만, 첫 번째 공격권을 가져간다고 해서 더 많은 점수나 공격 기회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점프볼 이후에는 번갈아 공격권을 갖는 KBL 규칙에 따르면, 점프볼을 따더라도 한 번의 공격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는 마지막 쿼터의 공격권은 상대방이 가져갈 확률이 높다.
점프볼이 승패에 꼭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점프볼의 순간에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집중하는 것은 - 웜업 시간의 다소간의 느슨함을 뒤로하고, 치열한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농구 경기의 시작을 준비하는 무의식 중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곧 경기장에는 시끄러운 응원과 저마다의 함성과 탄식이 가득 차겠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이 순간만큼은 잠깐 한숨을 고르듯 고요만이 흐른다.
하지만 선수들이 뛰어오르고, 누군가 점프볼을 따는 순간 경기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소리로 가득 찬다. 공을 잡은 선수가 공격 패턴을 부르는 소리, 공이 코트를 두드리는 드리블 소리, 각자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이 얽혀 방금 전의 숨죽임은 온데간데없다. 소란스러워진 경기장과 함께 나도 점프볼을 찍기 위해 들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어느새 경기에 몰입한다.
화려한 순간을 남기지 못하는 데에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까먹지 않으려고 게임의 시작을 찍기 시작했을 뿐인데, 돌아보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그 순간이 사진에 남아있다는 것이 어쩐지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그 순간을 볼 때- 그날에 있었던 아쉬움도, 환호도, 내 마음대로 떠올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