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좋아합니다] 농구 덕통사고 경위서

by 우주

언제부터 농구였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소위 관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2002 월드컵,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주요 이벤트는 물론이고, 올림픽 때만 중계해 주는 비인기 종목도 이입하며 보곤 했다.

하지만 농구부가 유명한 학교를 다니면서도 농구부는 실내에서 운동하는 깍쟁이들, 뭔가 키 큰 일진 무리처럼 느껴져서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동아리 오빠가 운동회 날 농구를 잘할 때 잠깐 멋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라떼는 야구가 최고 인기였고, 나는 그 인기에 편승해서 야구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미국에서 잠시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는 야구보다 농구가 인기였다. 그중 한 명이 보고 싶은 팀이 방문 경기를 한다며 농구장을 같이 가자고 했다.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교환학생의 삶에 충실하게 이것저것 새로운 경험을 찾아 헤매던 때라 뭣도 모르고 따라갔던 것 같다. 화려한 경기장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그날은 재밌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그저 그날 하루의 즐거운 경험일 뿐이었다. 몇 번 더 방문했을 때도 비슷했다.

하지만 하필(?) 한국에 돌아온 나는 졸업 학기를 앞두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척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며, 그때는 NBA 중계를 네이버로 무료로 볼 수 있었고, 나는 프로 스포츠 팀을 잡는 데 있어서만큼은 학연, 지연에 약한 사람인데, 미국에서 지내던 곳 연고팀이 그 해 NBA에 돌풍을 일으켰다. 공부하기 싫은데 볼 거 없나 하고 NBA를 켜던 나는, 어느새 시간 맞춰 NBA 경기를 켜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선수도 생겼다. 그렇게 바다 건너 공놀이에 울고 웃는 날들이 시작됐다.

그러나 일에 치이고, 코로나로 인해 리그가 축소되고, 황금기를 이끌었던 스타들이 부상에 시달리며 다소간 마음이 식었다. 농구는 2시간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하는데, 그 2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직장을 옮겼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 누가 "저는 스포츠 보는 거 좋아해요!"라고 소개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한참 공놀이 본다고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그 친구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농구장에 같이 가볼래 물어봐줬을 때는, 사실 나도 농구를 좋아하며 바다 건너 응원팀이 우승했을 때 혼자 축하 파티도 벌였다는 걸 꽁꽁 숨긴 채, 잘 모르는 척- 대학 정기전 때 누구 봤었는데 재밌겠다라며 따라갔던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위장은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학생은 대학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며 연고전(혹은 고연전)이라는 보편적 말을 두고 정기전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단다.

아무튼 잊고 있던 대학 스타들이 내 앞에서 프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추억 여행을 하며, 가끔 한 번씩 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오타쿠력을 얕본 생각이었다.

가끔 한 번씩 즐기는 취미 생활이란, 프로 과몰입러인 나에게는 오히려 쉽지 않은 선택지였다.

회사에서 화가 난 어느 날, 마침 농구 경기가 있었다. 뭐라도 도파민이 필요했던 나는 표를 사서 퇴근하자마자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하필 그 경기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소위 레전드 경기였고, 플레이오프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덕통사고 당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프로농구가 내 인생에 치고 들어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사고 같았다.

바로 다음 경기 표를 예매했다.

조금 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어 이직한 직장은 게다가 마침 모 농구장에서 차로 10분 거리. 그렇게 완벽한 환경을 등에 업고, 일 년에 나는 주전 선수들만큼이나 농구 경기에 자주 출석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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