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했던 시간을 간직하는 것
친구들은 내가 참 다양한 팀의 다양한 선수를 좋아한다고 놀리지만, 사실 나는 어떤 선수를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것을 꽤나 어려워하는 편이다. 농구뿐만 아니라 혹시 모종의 사유로 9시 뉴스에 나와서 강제로 마음을 접게 될 위험은 없을지까지 상상해 본 후,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내 마음속 방 한편에 ○○ 선수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나쁜 경우의 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을 망설이게 된다.
그러니까 선수에 대한 애정의 상징, 유니폼을 사기까지는 오만가지 고민을 거치게 된다. 단순히 "좋아"의 차원을 넘어 응원의 마음이 충분히 차올랐을 때에야 살 수 있다. 혹여 나중에 유니폼을 옷장 구석에 밀어 넣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과거의 나를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나마 고민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사이에 갑자기 유니폼 판매가 중단되어 유니폼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된 사건을 겪은 이후로, 조금은 덜 고민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긴 했다. 결론적으로는 팀이 없어졌기 때문에 유니폼을 샀다 하더라도 다시는 꺼내 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봄 농구를 하는데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유난히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이후 나답지 않게, 다소 충동적으로 유니폼을 사기도 했다. 대학농구 선수의 유니폼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프로에 가서 활약하면 그제야 그때 대학 유니폼도 사둘걸 하는 후회를 거듭하길 몇 년,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어느 해에는 갑자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4학년 졸업반 선수 중 한 명의 유니폼을 사자고 결심했다.
사실 평소의 내 기준으로 보자면, 그땐 그 선수를 유니폼을 살만큼 좋아하진 않았다. 그냥 또 나중에 그때 살걸 후회할까봐 산 게 맞았다. 그런데 원래 유니폼을 사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는 타입이었어서 그런가, 유니폼을 사고 나니 그 선수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중계에서도 그 선수에게 한번 더 눈길이 가고, 직관을 가서도 선수가 멋진 플레이를 하면 흔들 유니폼이 있으니, 더 신이 났다.
나에게 드래프트란, 우리 팀에 어떤 선수가 올까 고민하는 행사에 불과했는데 "응원하는" 대학 선수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 해는 달랐다. 그 선수가 우리 팀이 아니더라도, 어떤 팀이든 부디 잘 뛸 수 있는 곳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래프트를 지켜보게 되었다.
유니폼 한 장 샀을 뿐인데, 그렇게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좋아서 산 게 아니라 사서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입덕 부정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유니폼이 나의 시선을 바꾸었다는 쪽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유니폼을 사면서, 그 선수를 응원한 시간을 기억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 같다. 그가 프로에 가든 가지 못하든, 나는 대학생으로서의 그를 응원하며 지켜봤다는 사실을 남겨두게 되니까 말이다.
여전히 유니폼을 사기까지 많이 망설이지만, 그래도 고민의 내용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 선수가 충분한지 따지는 것보단, 그 선수를 좋아한 시간을 남겨두고 싶은지 고민하는 쪽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어쩌면 유니폼을 산다는 건, 선수를 향한 애정의 징표라기보다, 그를 응원했던 시간을 간직하는 방식에 더 가까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