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나를 통해 쉬어지듯이
나는 불편함, 실명, 부상, 죽음에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발밑이 보이지 않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질 뻔했습니다. 나는 내가 균형 잡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료되었습니다. 마치 손자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는지요!
– 바이런 케이 · 스티븐 미첼 , 『기쁨의 천 가지 이름』
‘내가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을 받아들이고, 내려놓고, 흘려보내고, 그렇게 또 비워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배우고 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이 모든 걸 배워가는 ‘현재’를 살고 있어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 우주 일기 2023.4.26’
2023년 어느 봄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날 나는 ‘허용(allowing)’이라는 단어를 아직 쓰고 있지 않았지만 이미 그 법칙을 어렴풋이 살고 있었다.
이 연재의 5화에서 REMEMBER, 우리는 끌어당기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해 내는 존재이며, 이미 완전한 나의 우주를 다시 기억해 내는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 화에서 우리는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자리에 서서 생각의 소음과 나를 분리해 보는 존재(Being)의 첫 연습을 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좋아, 나는 원래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건 알겠어. 생각도 ‘나’가 아니라는 건 조금은 알겠어. 그런데 현실이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내가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실이 바뀌는 이 ‘문턱’에서 불안함을 느끼며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믿음을 내려놓기 힘들어한다. 결국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계획하고, 더 촘촘히 통제하고, 더 세게 잘되게 하려는 마음을 붙잡는다. 그러나 이 문턱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받아들임’ 혹은 ‘허용(allowing)’이다. (받아들임과 허용이라는 단어는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호흡이 나를 통해 쉬어지듯이
‘쉬어가는 이야기’ 편에서 이야기했던 막힌 호흡은 정확히 보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단전에서 가슴을 지나 코끝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던 호흡을 되찾기 위해 억지로 깊게 쉬려 할수록 호흡은 더 막히는 느낌이었다. 애쓰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바심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내 가슴에 쌓인 묵어 있는 감정들이 참 많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통과해야 할 두껍고도 큰 문의 빗장이 열리길 기다리며, 막히고 답답한 호흡의 흐름을 그저 받아들였다. 사실 뭔가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호흡이 의식될 때마다 그 깊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깊게 호흡이 쉬어졌던 것처럼, 그리고 그 깊은 호흡이 어느 날 막힌 것처럼, 또다시 어느 날 깊은 호흡은 돌아왔다. 내가 억지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숨이 나를 통해 쉬어지는 것이었다.
의식의 자리가 있음을 확인한 이후, 나는 삶 또한 내가 잘 굴려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스스로 흘러가는 의식의 현현이라는 생각에 어떤 삶이 펼쳐질까 설레었었다. 그리고 그 삶의 흐름을 막은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이러면 안 돼’라는 나의 저항일 때가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한편으론 감사와 사랑 그 자체인 의식의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감정의 주파수를 조절하며, 완전한 의식의 그 자리를 REMEMBER 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현존을 살지 못하는 불안, 두려움의 감정들이 끊임없이 의식의 알고리즘을 나의 피드를 구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지금 겪은 불편함(이 또한 내가 규정한 것이지만)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불편하구나’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바닥에서 배우는 허용 – 회사 이야기
호흡 이야기보다 훨씬 전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 허용을 배우고 있었다. 바로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였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던 시기, 처음 몇 달은 그냥 지옥 같았다. 회의 시간마다 일부러 트집을 잡아 혼을 내거나 무시를 하고, 일부러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하던 일을 갑자기 빼앗아 가기도 했다. ‘여길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업무를 주지 않았기에 나는 시간이 많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월급루팡’조차 맘 편히 못하는 나는 근무 시간에는 ‘일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루를 버티는 건 참 이상한 고통이었다. 스스로 할 일을 찾고 만들어야 했다. 보고서를 쓰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기획안을 만들며 ‘쓸모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종류의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난 왜 대기업에 못 갔을까, 왜 하필 이런 회사에 온 거지, 난 왜 이리 회사 운이 없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몇 달 동안 나는 끊임없이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회사가 이러면 안 되는데, 상사는 이런 사람이면 안 되지,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것에 분노하기를 얼마간,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분노와 좌절과 절망이 바닥을 치고 이 이상 더한 모습들을 또 겪을까 싶을 때도 바닥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시간들을 보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애써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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