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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Being)의 첫 단계: '보는 방식의 전환'

'애씀(Doing)'에서 '존재(Being)'로의 전환

by 하우주
대 자유의 시작은 내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비롯됩니다.
생각하는 '나'를 관찰하기 시작하는 순간,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해 있던 더 깊고 온전한 내면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생각과 마음이 멈춘 그 내면 깊숙한 곳에 광대한 지성이 존재하며, 생각은 그 지성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에크하르트 톨레, 『붙잡지 않는 삶』

지난 글의 끝에 나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끌어당기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해 내는 존재이다.’

부족한 내가 어딘가 멀리 있는 풍요를 끌어와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완전한 나의 우주를 다시 REMEMBER 하는 것.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미 완전하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대체 뭘 해야 하지?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그 첫 번째 답이 엄청난 수행도, 대단한 실천도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답은 아주 단순했다.

무엇을 할까’를 바꾸는 것보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먼저 보는 것.

존재(Being)로 가는 첫 단계는 행동을 갈아엎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삶을 어느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시선의 위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더 힘들어지는 사람

H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알게 된, 몇 살 어린 동생이다. 부서가 달라 자주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H의 입사 며칠 후 처음 인사를 나눴던 날의 모습이 아직 또렷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와는 달리, H는 마치 오래 알던 사람처럼 먼저 다가와 나와 상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던 터라 선크림이나 겨우 바르고 다니는 나와는 달리, H는 공들인 화장에 단정한 세미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건 H의 신발이었다. 서른다섯이 넘은 이후로 나는 출퇴근길에 예의상 잠깐 굽 있는 구두를 신더라도 회사에 도착하면 바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도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런데 H는 사무실에서도 늘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발이 불편하지 않아요?”

어쩌면 쓸데없는 참견이었을 수 있는 나의 질문에, H는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슬리퍼 사기 아깝잖아요”

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말끔한 차림에 슬리퍼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언제라도 바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회사 자체는 예전에 다니던 중소기업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매출이 오르자 대표는 금세 안하무인이 되었고, 한창 잘 돌아가던 프로젝트들은 뒷전이 된 채 뜬금없는 신규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프로젝트는 망가졌고, 당연한 결과지만 신규 사업도 망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다. 몰락해 가는 회사라는 작은 역사 속에서 함께 버틴 사람들에겐 묘한 동지애가 남는다. 퇴사 후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갔다. H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갓생의 얼굴과, 그 뒤에 있는 텅 빈자리

알면 알수록 H는 특이한 친구였다. 원래 소식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 놀랄 만큼 조금만 먹었고, 좀 친해지고 편해진 다른 친구들과 만날 때도 언제나 화장을 잘하고, 회사에서 본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나왔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 해 본 운동, 안 해 본 취미가 거의 없었다. 악기, 각종 운동, 스터디, 야외활동… 오픈 채팅 등으로 낯선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고 경제와 시사를 공부하고, 틈만 나면 몸을 움직이고 밖으로 나갔다. 이른바 ‘갓생’을 사는 친구였다. 조금 친해진 뒤 H의 일과를 들으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몸을 너무 혹사하는 거 아니야?”

여전한 나의 오지랖 섞인 질문에 H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전 원래 이렇게 살아와서 괜찮아요.”


그런 H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H는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 성실하고, 성장 욕구도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어딘가에서 묘한 공허감이 느껴졌다. 정확히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같은 느낌. 취미와 공부, 활동들 뒤편에서 늘 이런 문장이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뭔가 모자라.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해.’


어느 날 H가 내게 말했다.

“언니는 이상하게 편해 보여요, 부족함도, 상처도 없는 사람 같아요.”

조금은 부러운 듯, 조금은 질투가 섞인 듯한 말투였다.

“그래 보여? 좋은 일이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때부터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H는 잘 살기 위해 너무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정한 규칙이 많아 보였다.

이 정도는 해야 괜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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