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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Mar 20. 2024

집사의 기록 1

괜찮아야만 하는 모든 집사들을 응원하며.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냥이가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아침 출근 전에 냥이 화장실을 가 보니 방울방울 소변을 본 흔적만이 있어 '왜 밤중에 소변을 안 봤을까' 하고는 가끔 있는 일이니 별 걱정 없이 출근을 했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녀석을 지켜보는데 뭔가 예사롭지 않다. 화장실을 가보니 하루종일 소변을 본 흔적이 없다. 화장실에서 냥이의 감자를 찾는 와중에도 녀석은 또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참을 있는데도 소변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큰일이다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을 못 간다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집 근처에 매년 예방 접종을 가는 동물병원이 있지만 몇 번의 과잉진료를 경험하고 나니 내키지 않았다. 이미 시간은 10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병원을 바꿀까 하며 눈여겨보았던, 집에서 15분 거리의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밤 10시 반까지 접수를 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8시 30분 이후로는 응급으로 처리되어 추가 비용 44,000원이 발생한다는 설명을 친절히 해 준다.

"지금 갈게요!"


10시 20분쯤 도착하여 접수를 했다.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고 피검사를 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불러 들어갔더니 냥이의 엑스레이와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다. 방광이 커다랗게 부풀려져 있었다. 초음파 사진을 보니 방광에 슬러지라고 하는 찌꺼기가 바닥에도 가라앉아 있고, 먼지처럼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슬러지 때문에 요도가 막힌 것 같다고 했고 피검사 결과를 보니 신장의 염증 수치가 올라가 있었다. 방광에 주사기를 꽂아 소변을 빼내는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진료실 밖에서 초조히 기다렸다.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서성서성,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병원 안의 풍경들을 초점을 잃은 채 보며 병원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안에서는 냥이가 악을 쓰며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스트릿 출신인 녀석은, 눈이 내리고 춥던 2월의 어느 밤, 산책 중이던 나와 강아지를 따라와 집에 눌러앉게 되었으면서도 내가 손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양치도 힘들고, 발톱 깎는 것도 힘든 녀석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배 털도 밀어버리고 주사기를 꽂고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싫을지.. 녀석의 긴장과 공포가 얼마나 극에 달해 있을지..


치료 중에 수의사 선생님이 밖으로 나왔다.

"끝났나요?"

"아니요 보호자님, 아직 소변을 많이 못 뺐는데.. 냥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토하고 있어요. 좀 진정이 되면 다시 해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주사를 꽂았는데 움직여서 배에 멍이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네.. 제가 들어가서 좀 봐도 되나요?"



녀석은 잔뜩 화가 나서 꼬리를 잔뜩 부풀려 하늘로 치켜들고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가열차게 울어댔다. 다가가 천천히 쓰다듬어주자 조금씩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털을 밀어 분홍분홍 드러난 배 한쪽에 짙은 보라색 멍이 들어 있었다. 한참을 쓰다듬어주고 다시 안정이 되어 또다시 주사기를 꽂아 소변을 뺐다.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이 넘어 냥이는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병원을 방문하기로 하고 지치고 두려워 보이는 녀석을 데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잔뜩 화가 나 삐질 줄 알았는데, 녀석은 집에서 내리자마자 슬렁슬렁 식기로 걸어갔다. 토해서 배가 고플 수도 있다고 했었다. 사료를 줬더니 또 허겁지겁 먹는다. 먹는 거에 진심인 녀석.. 먹어주는 게 고마웠다.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더니 슬그머니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삐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음 날 아침, 급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병원 진료 시작 시간에 맞추어 냥이를 데리고 갔다. 일단은 입원하여 수액을 맞으며 소변이 나오는지 보자고 했다. 오전까지도 소변을 못 보면 마취를 하고 카테터를 꽂아 소변을 빼야 한다고 했다. 다시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수의사 선생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카테터를 꽂는다면 짧게는 3일, 길면 5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비는 하루에 10만 원 이상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만약 오늘 오전까지도 소변이 안 나와서 카테터를 꽂으면 병원비가 꽤 많이 나올 거예요..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괜찮으시겠어요?"

의사를 바라봤다. 지금 이때 내가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괜찮아야죠"

나의 대답에, 의사 선생님은 다음 설명들을 이어나갔다.




냥이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대화가 계속 떠올랐다. 괜찮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반려동물의 어마무시한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미리 이야기를 안 했다가 나중에 치료비 때문에 보호자의 큰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을 듯했다. 그 모든 경험들을 겪었기 때문에 아마도 병원비를 알려주고, 구두상의 허락을 받는 것이리라..


아이들의 어마무시한 병원비가 다 괜찮을 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십만 원, 이십만 원은 우스운 아이들의 병원비를 위해 따로 조금씩 모은 돈도 있었고 이번 달 급여와 함께 들어올 거라던 연말정산 환급액도 있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대충 계산해 보면 그 돈으로도 부족할 병원비겠지만, 여유돈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다행이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얼마 전 병든 노견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친다는 누군가의 글이 떠오른다. 20살 노묘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유튜브도 생각이 났다. 대형견을 산책시키는 게 좋아서 대학 4년 내내 나가서 술 먹은 적도 없다고 한 인스타그램의 글도 읽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아 함께 살아간다는 건, 때로 남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때론 선택지 없는, 괜찮아야 하는 상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집사들을 응원한다. 마음이 아플 순간들을 제외하고.. 그 외의 모든 순간들이 언제나 괜찮기를, 언제나 평안하기를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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