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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Mar 22. 2024

집사의 기록 2

봄을 맞이한 산책 집사의 마음가짐

강아지와 아침 산책을 하던 중 잠시 멈춰 냄새를 맡던 아지가 뒤를 돌아 나를 빤히 바라본다. 아지의 검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날이 많이 밝아졌네’

언제나 같은 시간에 하는 산책인데 이젠 아지의 눈동자가 보일 만큼 해가 빨리 뜨고 날이 밝아진 것이다.

'겨울이 다 갔네'

아지 하네스 위에 달아놓은 작은 LED 조명에 의지해 어둠으로 캄캄한 동네를 산책하던 날이 불과 얼마 전이다. 날은 하루하루, 같은 시간임에도 어제보다 더 밝아진다.


겨울을 이렇게 또 한 번 보냈다.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작년엔 겨울을 어찌 보냈을까 싶을 만큼 금방 어두워지는 날과 추운 날씨가 걱정이 됐다. 겨울이 되면,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서는 아침 산책길엔 비나 눈이 오거나 흐린 날들을 제외하곤 언제나 별이 보였고, 빠르면 7시에 나오는 저녁 산책길에도 언제나 달이 보였다. 초승달은 초승달대로 새초롬하니 예뻤고 반달은 반달대로 무던하니 마음이 편안했고 보름달은 보름달대로 풍성하니 아름다웠다. 어제보다 더 많이 보이는 하늘 가득한 별들을 보면 행복했고 흐린 날씨에 삐죽 나와 반짝이는 한 두 개의 별들은 사랑스러웠다. 춥고 어두운 겨울, 별을 보며 달을 보며 겨울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어느새 봄이 와 있다.




문득 세상사가 비슷하단 생각을 한다. 익숙한 지금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할 때 막연히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그건 어떻게 하지, 저건 또 뭘까, 이 모든 것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겨울이 다가올 때, 겨울을 어찌 보낼까 걱정을 하듯 새로운 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선뜻 시작하기가 두렵다.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그냥 하면 된다.


아지의 산책도 그랬다. 구조되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임시보호를 전전하던 아지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을 하고서도 나는 걱정이 앞섰다.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별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아지는 그냥 삶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워졌다. 시간이 자유로운 일을 하다 9-6의 회사 생활을 다시 하게 되면서 아지의 산책이 조금은 염려스럽긴 했으나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 밥 먹는 것처럼, 화장실 가는 것처럼 하루 두 번의 산책을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하니 되었다. 별 일이라 생각하면 별 일이 되고, 별 일이 아니라 생각하니 별 일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몇 년째 새벽에 일어나 아지와 산책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겨울을 앞두고 걱정을 했다가도 막상 겨울이 다가오면, 나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핫팩을 주머니에 챙기고, 아지는 겨울털로 풍성해져 털이 찐 채로 캄캄한 새벽 산책을 나선다. 새로운 일도 그런 듯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시작하면 된다. 롱패딩을 입듯 준비를 하고 말이다. 겨울의 한가운데 혹독하게 추운 날이 있듯, 새로운 길에도 춥고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겨울이 가고 봄이 와 있듯 새로운 길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밝고 따뜻한 시간이 와 있지 않을까. 이 봄을 맞고 여름가을이 지나면 겨울은 또 올 것이고, 아마 나는 또다시 겨울을 앞두고, 지난 겨울은 어떻게 보냈지, 이 겨울은 어떻게 또 보내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새로운 시작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란 걸 알 수밖에 없다.




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언제나 남들보다 먼저 모든 계절을  마주하고, 마주한 계절들을 온전히 느낀다. 결국 사람도,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그 섭리대로 흐름에 맡기고 새롭게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 그냥 해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나브로 변하는 계절처럼 나의 삶을 마주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흘려보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애쓰지 말고, 숨 쉬듯 편안하게, 밥 먹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멈추진 않으면서 사부작사부작, 큰 동요는 없이 잠잠히.. 나의 순간들을 마주해 보기로 한다.


- 2024.3.22 금, 아지와의 아침 산책 중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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