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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Nov 07. 2024

이대로가 좋사오니

마음이 변했을 뿐

책을 빌려서 보지 않고 웬만하면 사서 보는 편이다. 지금은 메모하며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사 읽는 게 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한 권의 책, 한 문장, 혹은 한 단어가 상황에 따라 자신의 현재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급적 소장하여 두고 여러 번 보는 편이다. 책의 내용들이 매번 다르게 마음에 닿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환경도 상황도, 외부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의 어떠함이 외부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몇 년 전 같이 수업을 듣던 중년의 어느 분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며 '이대로가 좋사오니'라는 기도를 한다고 하셨었다. 그 이야기를 하시는 그분은 행복해 보였다. 본인이 하는 일, 남편과의 관계, 성인이 된 자녀들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특별히 모난 것 없이 만족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이대로가 좋사오니 지금 이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기도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다. 단순히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고 부러웠다. 그 순간엔 그랬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자기 계발에 열심히였던 한동안은,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이 말이 떠오르긴 했지만 좋게 해석되지 않았다. '이대로가 좋사오니'.. 현실에 안주하는 삶, 자기 발전이 없고 성장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 회사가 직원들이 성장하고 그걸 토대로 발전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책임은 최대한 회피하고 흐린 눈으로 좀비처럼 일하다 월급만 받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니, 이런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고 나름 이곳에 물들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리고 헤매며 돌고 돌아, 이제야 '아 이게 진짜 마음공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최근 몇 달을 보내면서 나는 다시 '이대로가 좋사오니'를 떠올린다. 이대로가 좋다는 건, 상황이 어떻건 무조건 만족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에 안주하여 성장 없이 도태되는 삶도 아니었다. 요즘 읽고 있는 법상 스님의 책 [부자수업]의 첫 장에는 '삶은 이대로 완전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 말은,

1. 현재의 삶이 과거에 화려했던 어느 순간 혹은 바라고 희망하는 미래의 어느 모양이 아니라 하여 현재를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2.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여 그 어느 순간에도 절대 그들보다 우위에 서지 못할 나를 자책하지 말라는 것이고,

3. 변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는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고,

4. 머무르거나 변해가거나 성장하거나 쉬어가는 삶의 모든 순간들이 완전하고 이대로가 좋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삶의 매 순간, 최선을 다하되 가벼울 수 있고, 진심을 다하되 메이지 않고 그 순간 그대로 여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아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 또한 '이대로 완전한', '이대로 좋은' 나의 삶의 일부분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나온 삶의 순간순간 내가 했던 모든 선택과 결정들, 그리고 모든 환경과 상황들이 나를 위한 최선이었음을, 그렇기에 삶이 곧 진실이라는 말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현 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선택이 될 결정을 내리고 난 후, 부산스러운 주변 분위기처럼 나 또한 가을 낙엽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린다. 다만 휘둘리고 번잡스럽던 지난 시간들과 달리 지금은 고요해지려 애쓰는 중이다. 스쳐가는 생각들이 머리에서 나온 분별의 시끄러운 재잘거림인지, 마음의 울림인지 지켜보려는 의지가 생겼으니 그 또한 많은 발전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언제나 지금이라는 말처럼, D-Day 이후 마주한 나의 순간들 또한 여전히 '이대로 좋고 완전한' 지금일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은 아지와의 산책길,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릴 것 같다.

"온전하고 완전한 이대로가 좋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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