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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Nov 03. 2024

다정한 사람

가을 단풍처럼

[ 다정하다 : 정이 많다. 또는 정분이 두텁다]


얼마 전 직원 하나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춘식이 자동차 방향제를 선물해 주었다. 방향제를 선물해 주기 며칠 전 퇴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었는데 다음 날 방향제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래로 동생들을 여럿 둔 K장녀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이 친구는 사람들을 참 잘 챙겼다. 나와 먹기 단짝인 이 친구는 회사에서 느닷없이 부서가 바뀐 후에 점심밥 먹을 짝꿍이 되어 주었고 가끔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또 가끔은 주말에 맛있는 디저트집이나 빵집에 가면 월요일에 회사로 싸 들고 와 쉬는 시간에 먹기도 했고,  항상 서로의 간식이 떨어지지 않게 간식들을 챙겨주기도 했다. 정이 많은, 다정한 아이.


그 직원이 선물로 준 춘식이 방향제를 차 통풍구에 꽂아 놓은 후 엄마가 내 차를 처음 타신 날, 엄마는 그 방향제를 보고 너무 좋아하셨다. 귀여운 꼬리도 있고, 공을 꼭 쥐고 있는 걸 보라며 너무너무 귀엽다고 하시며 엄마는 방향제를 만져보고 한참 쳐다보시고 말도 걸어 보셨다.

지난주 엄마와 단풍 나들이를 가느라 오랜만에 내 차를 타신 엄마는 앉자마자 춘식이 방향제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잘 있었어~~?"

그리곤 뒤에 앉은 조카에게 말했다.

"oo아, 너 이거 봤어? 귀엽지?"

할머니가 더 귀엽다는 조카의 대답에 한바탕 웃고는 차가 출발하자 엄마는 다시 춘식이가 안고 있는 공을 만지며 말했다.

"꼭 쥐~ 차 움직여~ 꼭 쥐야 안 떨구지"

엄마의 사투리를 알아들으려나 모르겠다며 우린 또 깔깔거리고 웃으며 단풍을 보러 갔다.



목적지인 영주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해 부석사 무량수전까지, 길 옆으로 가득한 은행나무 사이에서 바닥에 떨어진 노오란 은행잎들을 보며 우리는 꽤 먼 길을 걸어 올라갔다. 부석사 가는 길 옆 사과밭에 주렁주렁 달린 예쁘게 잘 익은 사과들을 보며 같이 감탄하고, 길 옆에 사람들이 쌓아 올려둔 돌탑을 지나치지 못하고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작은 돌멩이를 찾아 그 위에 잘 올려놓고는 뿌듯해하셨다. 엄마는 옆길로 돌아가자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석사 무량수전 꼭대기까지 여러 번 있는 계단들을 꿋꿋이, 높은 계단은 기다시피 하시며 올라가셨다. 그렇게 올라간 무량수전 앞에서, 종교도 없는 엄마는 두 손을 모아 곱게 합장을 하시고 돌아서셨다.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 그렇게 곱게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경사진 길에서 엄마는 바닥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들을 골라 주으셨다. 넘어진다는 나의 잔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은행잎 10개를 채워 손에 꼭 쥔 채 내려오셨다. 그 은행잎들은 또 집안 어딘가 엄마의 전시품이 되어 잘 보관될 것이었다.


엄마와 손을 잡고 천천히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와 차에 타니 엄마는 또 춘식이에게 말을 건넸다.

"잘 지키고 있었어~~? 혼자 잘 있었어~~?"

다정한 사람.. 엄마는 세상 모든 것에 다정하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발견한 돈벌레에게도 다정했다. 물이 안 닿는 곳에 잘 숨어 있으라고 말을 건넸고, 돈벌레가 죽었다고 속상해하기도 했고, '걔가 내 친구야'라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모기와 파리를 제외하곤 엄마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같다. 풀 한 포기, 돌 하나, 솔방울 하나, 바다의 조개껍질 하나도 엄마에겐 사랑의 대상이다.


늘 정이 많은 엄마가 답답하기도 했다. 다정한 엄마는 늘 누군가에게 퍼주지 못해 안달이었고, 누군가 서운하게 해도 그때뿐이었고 돌아서면 까먹었고 다음에 만나면 또다시 양껏 퍼주곤 했다. 물건이건 마음이건, 그렇게 퍼주는 엄마가 늘 손해인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하면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게 나아"

라고 웃어 보이는 엄마를, 문득 돌아보면 내가 닮아 있어서, 약지 못하게 살고 있어서, 그래서 때론 더 화가 나기도 했다.  




첫 회사 생활을 할 때 사수였던 어느 분(같은 팀은 아니었으나, 직원이 6명이었으니 사수라 할 것도 하지 않을 것도 없다)은 나에게 말했었다.

"우주 씨는.. 다정한 사람이지."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이 나왔는지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26살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지혜롭고 멋있어 보였던 그분의 말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약은 깍쟁이 같은 아이이길 바랐던 20대의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바램과 다르게, 나는 타지의 생활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사람들을 잘 믿고, 쉽게 마음을 내주었고 그래서 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엄마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별별 일들을 겪으며 40대를 훌쩍 넘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약은 사람이고 싶어 했던 바램은 다 사라지고 무뎌졌다. 회사의 그 직원과, 또 다른 다정한 동료들과, 엄마와 그리고 흘러가는 인연들 속에서 만나는 다정한 사람들을 보며, 그 다정함이 참으로 따뜻하다고 느끼며,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라고 다정히 말했던 사수님을 떠올린다. 나는 다정한 사람일까? 다정한 사람이었을까?




기억력이 나빠진 건지, 마음이 편해진 건지, 지나고 보니 나빴던 일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따뜻하고 좋았던 감정들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생각으로 기억하던 그 어느 기억의 파편들도 선명하지 않은 채 흐릿하지만, 감정이나 느낌들은 마음에 점점 물들어 가며 마음이라는 큰 덩어리 하나가 채색되어 가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마치, 가을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듯 시나브로 변해가더니 어느 순간 눈을 들어 바라보니 화려하게 산의 풍경이 변한 것처럼, 마음의 색도 그렇게 변했고 계속 변해가고 있지는 않을까.


삶이 가볍다고 느낀 건 다행스럽게도 마음에 좋은 감정들이 더 많이 머무르는 덕분인 듯하다. 어쩌면 이 가벼움은 훗날 어느 순간에는 너무 가벼워져서, 가볍다는 느낌조차 훨훨 사라질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다정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좋은 마음으로 가볍게 날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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