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호영 Sep 10. 2021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4

이븐 시나(아비센나)의 자취를 찾아서


사만왕조에서 시작된 부하라의 전성기인 서기 1천년을 전후하여 알 파라비, 이븐 시나, 오마르 카이얌 등 위대한 학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 성곽 안에서 학문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곳에 있던 거대한 도서관에 대해 이븐 시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 도서관에서 알지 못했던 책과 내 인생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책들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들을 읽었고 각각의 학자들과 학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영감의 문들을 내가 상상하지 못한 지식의 아주 깊은 곳에 놓았다.     


이븐 시나가 왕궁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은 16살 때의 일입니다. 사만 왕자의 병을 낫게 해준 덕분이었지요. 이븐 시나는 이미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였습니다. 철학, 신학, 법학, 자연학,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스승을 넘어선 천재로 명성도 자자한 터였지요. 이븐 시나는 20세가 넘은 이후에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전해지는 책은 242권이라고 합니다. 


그의 생애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은 부하라와 호레즘에서 보냈지만, 사만왕조의 멸망과 함께 가문은 몰락하고 정착할 곳을 찾아 떠돌았습니다. 여러 곳을 떠돌다가 부와이왕조가 통치하는, 지금의 이란 중서부 하마단에 정착하였다가 부와이왕조가 멸망하자 다시 후원자를 찾아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떠돌았습니다. 이븐 시나는 신의 율법을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철학자였습니다. 이성과 신앙, 그리스 철학과 쿠란을 조화시킨 사상가였지요. 그러나 능동적인 지성만이 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한 그의 논리는 비판받았습니다. 이성으로 이슬람 신앙을 위협한다고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신의 자리가 불안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거의 600백년이 지나야 시대가 이성을 인간의 사고의 전면에 내세우며 근대를 열어젖힌 데카르트를 받아들이니, 아직은 너무 이른 시기였나 봅니다. 


이븐 시나는 때로는 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음의 코앞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왕실의 귀빈이 되기도 했지요. 의술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즈베키스탄만이 아니라 그가 머물렀던 이란, 타지키스탄에서도 이븐 시나를 자국의 위인으로 여깁니다. 크고 작은 왕조들의 잦은 명멸 속에서 연구 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학자들의 고된 자구책의 흔적이라고나 할까요. 그나마 학문의 언어가 아랍어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이 나라 잃은 학자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을까요?    


이븐 시나를 철학자이자 의사로 묘사한 말리공화국 우표. 1980년 발행(왼쪽). 이란 우표(오른쪽)


이븐 시나의 대표작은 『치유의 서』와 『의학정전』입니다. 부이왕조의 호의로 안정을 찾은 하마단에서 두 책의 저술을 시작하였지요. 『치유의 서』는 철학 백과사전과 같은 책입니다. 『의학정전』은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18세기까지 유럽의 의과대학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분류법에 따르면 생리학, 위생학, 병리학, 치료학, 약물학을 다룬 의학 백과사전으로 동서양 의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슬람 의학은 불교의 전파 경로를 따라 중국에 전해져 많은 영향을 미쳤고 13세기에 몽골이 세운 원나라 때는 대량으로 이슬람 의학이 들어왔습니다. 


이븐 시나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말보다 더 솔깃할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국민 술이라고 하는 소주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발효주만 마시던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때는 고려 말이지요. 중앙아시아까지 정복했던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서 수입되었습니다. 그 소주는 혼합물을 연구하던 이븐 시나가 처음으로 발명한 알코올 증류법을 원나라에서 응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븐 시나는 최초로 알코올을 소독제로 사용한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소주의 쓴맛을 즐기는 사람은 이븐 시나가 폭풍같이 지식을 흡입한 부하라의 도서관을 찾아 그를 기리고 싶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