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호영 Sep 10. 2021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3

볼로 하우즈 모스크_아르크 성


이맘 알 부하리 기념 박물관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르크 성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 중간에 볼로 하우즈 모스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모스크 중 가장 화려합니다. 정면은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이완입니다. 여름 사원으로 사용하는 곳이지요. 목각 기둥 20개가 지붕을 받치고 서 있습니다. 목각 기둥은 기단도 나무이고 꼭대기 부분은 마치 우리 궁궐이나 사찰의 공포처럼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런 장식을 무카리나스라고 부릅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스, 로마에서 가장 화려했던 코린트식 기둥의 문양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한 것입니다(무카르나스의 기하학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이것을 가장 화려하게 사용한 사마르칸트에서 살펴보지요). 여름 사원의 문 뒤로는 겨울 사원으로 사용하는 실내입니다. 커다란 돔을 하나 이고 있습니다.          

       

볼로 하우즈 모스크. 1712년에 지어진 부하라 칸이 예배드리던 모스크로 채색 타일과 목각 기둥이 매우 화려하다(왼쪽). 아테네 제우스신전의 코린트식 기둥 문양(오른쪽)


볼로 하우즈 모스크는 1712년에 지은, 부하라 칸이 예배드리던 모스크라고 하는데, 원래는 이 모습은 아니었답니다. 목각 기둥은 1917년에 추가되었고 마당의 작은 미나렛도 1917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부하라 칸국이 러시아 보호국이 된 다음의 일이지요. 아, 그리고 하나 더. 하우즈 (حوض)는 페르시아어로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볼로 하루즈 모스크 옆에도 연못이 하나 보입니다.  


높고 웅장한 아르크성 안으로     


넓은 공원이 펼쳐진 길 건너 저쪽에 아르크성이 보입니다. 아르크가 성이라는 뜻이니 그냥 아르크라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아르크성이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500년경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답니다. 궁전과 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 행정구역, 군인들의 구역이 있었고 마을의 주요 기능도 모두 성곽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하지요.


성의 정문은 두 개의 흙빛 굴다스타 사이에 있는 이층으로 된 흰색 아치문입니다. 별로 길지 않은 오르막길을 따라 아치문을 지나니 양쪽으로 몇 개의 방이 보이는데, 예전엔 죄수를 가두어놓았던 곳이 지하까지 이어졌었답니다.              


부하라 아르크성벽과 입구. 성벽 위에 보이는 흰색 건물은 궁전의 일부라고 추측한다. 아랍, 몽골, 러시아 등의 침략으로 여러 번 개축하였는데, 지금은 성의 입구쪽만 남아 있다.


입구를 지나자 너른 광장과 함께 건물들이 펼쳐집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살롬 칸의 환영실이고 왼쪽은 주마 모스크, 오른쪽은 대관식도 열렸던 넓은 연회실입니다. 주마 모스크로 먼저 갔습니다. 나무 기둥들이 받치고 선 이완이 소박합니다. 나무 기둥에는 화려한 조각이 없습니다. 위쪽에만 채색 없이 나무 색깔의 무카리나스가 조각되어 있어 흰색 벽면과 어울려 정갈한 소박함만 은은히 풍깁니다. 이완 그늘에는 어김없이 상인들이 앉아있습니다. 아름다운 문양의 접시와 같은 그릇과 수를 놓은 장식용 직물들, 상인이 없는 유적지는 없습니다.

아르크성의 평면도. 1. 입구  2. 살롬칸의 외교실 3. 주마 모스크 4. 총리 관저 5. 쿠리나시칸의 연회실 및 대관식 홀 6. 나고라칸의 음악가의 방 (구글 위성지도)

모스크 안은 코란 박물관입니다. 네 개의 목각 기둥이 높은 천장을 받치고 섰고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놓여 있는 유리장 안에는 코란이 있습니다. 미흐랍의 8겹 로제트를 둘러싼 캘리그라피가 멋스럽습니다. 코발트 색 바탕에 흰색 글자가 시원합니다. 한쪽에는 민바르가 놓여 있습니다.       

            

주마 모스크 옆으로 돌아가니 마당이 펼쳐집니다. 북쪽으로는 무너진 성벽이 복구되지 않은 채 있고 동쪽은 발굴되지 않은 황무지로 넓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둘러싸인 흰색 벽에 가려 그 너머를 볼 수는 없습니다.


옆에 있는 총리 관저로 갑니다. 예전에는 쿠쉬베기라고 부르는 총리와 많은 관리들이 일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자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 전시물 사이에서 재미있는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진들은 우즈벡어, 러시아어, 영어로 세 번 설명된 것과 달리 이 그림만 우즈벡어, 러시아어 두 가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림과 22라는 수만 봐도 딱 짐작이 되는 그림입니다. 구글 번역기에 입력해보니 예상한 대로입니다. 하지인 6월 22일과 동지인 12월 22일에 태양의 고도를 설명한 그림입니다. 한옥의 처마 길이가 동지에는 햇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오게, 하지에는 툇마루까지만 들어오게 설계된 것처럼 천문학이 발달하였던 이들도 이완의 지붕 길이를 계산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주마 모스크. 나무 기둥과 흰색 벽면의 모스크가 소박하고 정갈하다(왼쪽). 자연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총리 관저. 하지와 동지의 태양의 위치를 설명한 전시물과 계절별 사진(오른쪽)


살롬칸의 환영실은 아치 통로로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외교 사절들에게는 티무르나 러시아 대사가 여기까지 마중 나왔다고 합니다. 회반죽을 칠한 흰색 아치 통로를 지나 대관식도 열렸던 연회장으로 왔습니다. 이곳에서 열렸던 마지막 대관식은 알림칸의 대관식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보호국이 된 이후인 1910년에 열렸으니 1897년에 환구단에서 열렸던 고종의 황제 즉위식만큼이나 비장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르크성의 연회장     


연회장 피슈타크를 통과하자 키보다 조금 높은 흰색 벽이 가로막습니다. 이 벽 앞에서 방문객들은 데리고 온 노예나 신하들을 놔두고 들어와야 한다는 표식입니다. 입구 오른편으로는 쿠피라고 부르는 이슬람인들이 쓰는 모자를 쓴 보기 좋은 남자가 색색의 목걸이와 노리개 같은 장신구를 팔고 있습니다. 깊게 팬 주름살, 초록색 쿠피와 흰 머리와 흰 수염, 그리고 노란색, 초록색 장신구 색깔이 잘 어울립니다.


안에는 넓은 마당과 나무 기둥 회랑이 삼면을 둘러싼 풍경이 펼쳐집니다. 히바의 나무 기둥은 모두 몸통 전체에 화려한 목각 무늬를 입고 있었는데, 부하라의 기둥은 몸통은 나무를 깎은 그대로이고 윗부분의 무카리나스만 조각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정면 이외의 옆쪽으로 늘어선 나무 기둥에는 무카리나스도 없습니다. 부하라에 온지 얼마 안 됐지만, 확실히 히바와는 다릅니다. 목각보다는 여기 피슈타크의 안쪽처럼 채색 타일의 아라베스크 무늬와 캘리그라피가 더 많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피슈타크의 안쪽에 아름다운 문양이 있는 이유는 당연히 칸이 옥좌에 앉으면 바라보는 정면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기 있는 옥좌는 당연히 복제품이지요. 진품은 여기 박물관 유리장 안에 있습니다. 


대관식이 열렸던 연회장. 안쪽에서 보는 피슈타크에는 아라베스크 문양과 캘리그라피의 채색 타일이 화려하다.

      

피슈타크의 아치에는 식물 문양이 화려하고 그 위로는 툴루스체로 보이는 캘리그라피가 두 줄 새겨 있습니다. 쿠파체 캘리그라피와 별팔각형 문양이 휘장처럼 이 모든 것을 ㄷ자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쿠파체는 각진 서체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고딕체라고나 할까요. 둥근 서체는 어떤 서체든 페르시아어이거나 아랍어라고 알아차릴 수 있지만 각진 서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쿠파체의 기본 형태는 정사각형 안에 곧은 선으로만 글자를 표현한 것입니다. 마치 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 시간에 사각형 안에 자를 대고 글자 모양을 만들어 넣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쿠파체는 아랍어를 잘 모르면 그냥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보일 정도로,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디자인이라고만 생각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자세히 보면, 피슈타크의 5개의 별팔각형의 정사각형은 쿠파체 캘리그라피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행이 중반에 이른 지금, 다른 글자는 못 읽어도 알라, 즉 신이라는 글자는 읽을 수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자가 알라와 무함마드입니다. 저기 별팔각형을 이루는 정사각형 안에 새겨진 쿠파체 캘리그라피에도 알라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알라의 아랍어 글자. 쿠파체와 그 변형

  

오른쪽 뒤편은 하렘이 있던 곳입니다. 성문 밖에서 올려다보이는 곳이지요. 지금은 일부만 남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칸의 옥좌와 옷들이 걸려 있는 복식 박물관에는 러시아 사진작가가 찍은 알림칸과 고위 관리의 사진도 걸려 있습니다. 옷을 잘 차려입었지만 쇠락해가는 나라의 통치자인 것을 드러내듯 분위기가 밝지 않습니다. 도자기 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도자기와 러시아에서 찻물을 끓일 때 사용한다는 거대한 주전자 사모바르가 유리장에 비친 나와 비슷한 크기로 위엄있게 서 있습니다.      


아르크성은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존이 잘 된 이찬 칼라의 기억이 너무 생생한 탓이겠지요. 아르크성은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부하라의 통치자들이 천년 넘게 살았던 곳이지요.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6세기입니다. 둘레가 약 790미터, 넓이는 4만 제곱미터 정도 되는 크기로 칸의 집무실이나 하렘은 물론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사원도 있었고, 고급 관리들의 집무 공간과 목욕탕, 모스크까지 수십 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르크성은 7세기 이슬람의 침략, 13세기 몽골 침략 등 주변의 침략으로 여러 차례 개축되었지만, 지금과 같이 80% 정도 파괴된 것은 1920년 러시아와의 전쟁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포격만이 아니라 부하라의 에미르도 불을 질러 성채를 파괴하며 퇴각했던 탓이지요.                      


그래서 아르크성을 돌아보는 데는 미처 다리가 아플 새가 없습니다. 밖에서 보았던 성벽의 위용과는 사뭇 다른 규모이니까요. 성안에 황무지로 남아있는 공간은 볼 수 없습니다. 건물로 막히고 흰 벽으로 시야를 막아 놓았습니다. 막힌 벽 앞에서 생각합니다. 이븐 시나가 감탄했던 도서관은 어디쯤 있었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