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호영 Sep 05. 2021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2

샤마니 공원_욥의 샘_이맘 알 부하리 기념 박물관


대관람차의 사인함수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를 등지고 돌아서자 대관람차가 보입니다. 이 지역 전체가 샤마니 공원이라더니 놀이동산도 있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타본 대관람차는 케이블카처럼 창으로 막혀있었는데, 여긴 아닙니다. 원형의 관람차 좌석 위에 녹색 파라솔만 있습니다. 점점 높이 올라가면 막아주는 창이 없어 무섭진 않을까요?


관람차에 올라타면 처음에는 천천히 올라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관람차는 일정한 속도로 돌지만, 사람의 높이는 일정하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관람차가 30도 회전했을 때와 다시 30도를 더 회전해서 60도 회전했을 때를 비교해볼게요. 각도는 두 배가 되지만 사람의 높이는 두 배가 안 됩니다. 그 높이를 말해주는 것이 사인입니다. 사인은 삼각비 중의 하나입니다. 히바의 쿠나 아르크에서 지구 반지름을 계산할 때도 삼각비를 사용했었지요. 사인은 직각삼각형의 한 각에 대해서 빗변의 길이에 대한 그각과 마주 보는 변의 길이(높이)의 비를 말합니다. 30도에 대한 사인값은 빗변의 길이에 대한 이각과 마주 보는 변의 길이의 비, 60도에 대한 사인값은 빗변의 길이에 대한 이각과 마주 보는 변의 길이의 비이지요. 


두 값을 그림으로 비교해볼게요. 아래 그림과 같이 반지름의 길이가 1인 원 안에 직각삼각형을 그리면 빗변의 길이는 1로 고정됩니다. 분모가 1이 되었으니, 이제 사인 30도의 값은 이각과 마주 보는 변의 길이 0.5이고, 사인 60도의 값은 이각과 마주 보는 변의 길이 0.7입니다. 이 두 변의 길이는 2배가 아니랍니다. 약 1.4배에 불과하지요.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멀리 대관람차가 보인다. 30도와 60도에 대한 사인값은 2배가 아니라 약 1.4배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관람차에 타고 있다면 회전한 각도와 그 사람의 높이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0도 근처에서는 사인값, 즉 높이가 급격히 증가하지만 60도 이후에는 높이가 천천히 증가합니다. 관람차는 보통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지요. 천천히 올라가다가 3시 방향 근처에서는 급격히 빨리 올라가게 됩니다. 이때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할 때이지요. 2시 방향을 지나면서 높이는 아주 천천히 올라갑니다. 12시를 지나면 그만큼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꼭대기 부근에서 별로 무섭지 않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어요. 사인함수가 그리는 곡선이 완만할 때는 무서움을 타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천천히 변하는 것에는 금방 익숙해지니까요. 


샘물이 터져 나온 곳, 욥의 샘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뒤쪽으로 난 길로 백여 미터 가면 조금은 다르게 생긴 흙벽돌 건물이 보입니다. 차슈마 아유브 영묘입니다. 차슈마는 샘물, 아유브는 욥을 말합니다.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 이전의 기록을 같이 사용하니, 욥은 기독교의 구약성서와 이슬람교의 쿠란에 모두 등장하지요. 욥은, 신으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당한 바로 그 욥입니다. 흔히 욥의 샘에 대해 전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하라 사람들은 사막의 바람과 가뭄에 시달리다가 신에게 기도했다. 신은 이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 욥을 보냈다. 부하라를 여행하고 있던 선지자 욥이 지팡이로 땅을 내려치자 샘물이 터져 나왔다. 욥의 영묘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지은 것이다.               


그런데 욥의 샘 내부에 있는 설명문의 내용은 좀 달랐습니다. 위쪽은 나를 눈뜬장님으로 만드는 키릴 문자 설명이니 아래 영어로 쓰인 설명을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욥은 사탄에 의해 자식과 재산도 모두 잃고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피부병에 걸리는 시련 속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많은 기도와 호소 끝에 신은 대천사 가브리엘을 보내 욥에게 땅에 발을 디디라고 명령한다. 그 자리에서 샘물이 터져 나왔다. 몸의 염증을 치료하는 샘물! 이 샘물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정보는 없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욥의 이름과 관련된 장소가 있다.    

  

욥의 샘 내부 전시물(사르도바, 목욕장면, 목욕시설), 사르도바 모형, 샘물 앞 수도꼭지와 뒤쪽 영묘와 설명문(커버 사진은 욥의 샘 건물).


욥의 샘이 처음 지어진 때가 이슬람력 605년(1208년에서 1209년)이라고 아랍 툴루스체로 쓰여 있습니다. 지붕 위에는 연필 깎는 기계로 깎은 예쁜 연필 같은 원뿔 모양의 돔이 올려져 있습니다. 1380년경 아미르 티무르 시대에 증축하면서 올렸답니다. 부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호레즘 스타일입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물 박물관입니다. 중앙에는 사르도바라고 하는 물 저장소 모형이 있습니다. 벽면에는 부하라 지역의 물 저장 체계와 관개에 대한 설명들이 가득합니다.      


초승달 모양의 이맘 알 부하리 기념 박물관     


욥의 샘을 나오면 정면에 특이한 모양의 현대식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2001년에 문을 연 이맘 알 부하리 기념 박물관입니다. 부하라에서 태어난 알 부하리의 본명은 무하마드 이븐 이스마일 알 주아피입니다. 알 부하리는 부하라 출신이라는 뜻으로, 호레즘 출신이라는 뜻의 알 호레즈미(알 콰리즈미)와 같이 출신지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알 부하리는 하디스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하디스는 이슬람에서 쿠란 다음으로 중요한 책이지요. 무함마드가 말하고 행동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슬림은 알라의 말씀인 쿠란과 더불어 하디스에 기록된 무함마드의 언행을 삶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하디스는 쿠란과 달리 구전되었기 때문에 분파에 따라 서로 다른 하디스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유대교나 기독교 또는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된 잠언까지도 무함마드의 말로 둔갑하기도 했지요. 결국 서기 8, 9세기에 하디스를 수집하고 검증하는 연구가 일어나며 하나의 학문체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알 부하리는 16세에 메카로 떠나 메디나,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바그다그 등 여러 도시에서 학자들을 만나 하디스를 수집하고 기록했습니다. 알 부하리는 16년간 천여 명의 학자로부터 60만 조항의 언행을 수집하고 부하라로 돌아왔습니다. 몇 년에 걸쳐 무함마드의 제자가 누구에게, 또 그 제자의 제자가 누구에게 말했다는 식으로, 전승된 증거가 확실한 7,275조항의 하디스를 장별로 구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846년경 그렇게 완성된 『사힛 알 부하리』라는 하디스 모음집은 수니파의 6종류의 표준 하디스 모음집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이 되었답니다. 

그래서인지 알 부하리 기념박물관은 책등이 보이게 펼쳐진 책을 초승달이 에워싼 모양입니다.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하디스 모음집을 감싸고 있다고 할까요.   

       

 

이맘 알 부하리 기념 박물관의 정면과 측면. 책등을 정면으로 보이게 펼친 책을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에워싼 모양이다.


'초승달' 하면, 몇 년 전에 홍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서 본 초승달이 생각납니다. 아직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성급하게 나타난, 앞서 달리는 일행의 등 위로 보였던 엷은 초승달.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서 노곤하게 지친 눈에 들어오던 초승달은 하늘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푸른색인지 흰색인지 아슴푸레했지요. 그날의 하늘과 기념관을 둘러싼 하늘이 닮아 보입니다.


초승달 모양의 기념관은 원기둥을 어슷하게 잘라 가운데를 파낸 모양입니다. 이런 단면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음료수병은 원기둥 모양이니 탁자에 세워놓았을 때 음료수가 보여주는 원기둥의 단면은 원입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음료수병을 기울여 마실 때 길게 누운 음료수 모양은 어떤 모양일까요?      


어떤 입체의 단면은 요리할 때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오이를 썰 때나 가래떡을 썰 때 원기둥을 어슷하게 자른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가래떡을 직접 써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떡국 떡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요? 예전에는 설날 전에 방앗간에서 받아온 가래떡이 적절하게 굳기를 기다렸다가 어슷하게 써는 풍경이 집집이 펼쳐지곤 했습니다. 덜 굳으면 타원 모양이 뭉개지고 너무 많이 굳으면 썰기 힘들어 고생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엄마가 써는 떡은 적당히 길쭉한 타원 모양이었어요.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원에 가까운 짧은 타원이 나올 뿐이었지요. 


원기둥을 어슷하게 자르면 타원이라는 사실은 언제 알았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메나에크무스와 그로부터 백여 년 후에 살았던 아폴로니우스가 밝혔다고 합니다. 이들에 의해 원뿔곡선-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별로 쓸모없는 곡선으로 취급받다가 17세기에 갈릴레오가 물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케플러가 천체들의 궤도가 원뿔곡선임을 밝히면서 인간의 역사 안으로 쑥 들어온 곡선입니다.     

 

원기둥을 어슷하게 잘라 달의 궤도인 타원을 만들고, 가운데를 파내어 초승달을 상징하는 건물을 설계하다니, 책과 타원과 초승달의 조화가 발길을 붙잡습니다.     


이맘 알 부하리 기념 박물관의 조화에 탄복하고 있는 사이에 일행들은 벌써 저만치 가버렸습니다. 일행을 따라가는 길이 몹시 정갈합니다. 보도블록이 깔끔하게 깔린 넓은 광장에 정팔각형으로 벽돌을 둘러 띄엄띄엄 나무 자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거의 구형에 가깝게 다듬은 나무가 한 그루씩 심겨 있습니다. 나무 하나에 정팔각형 하나씩, 적막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