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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05. 2021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1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히바에서 부하라는 꽤 먼 거리입니다. 비행기가 뜨고 잠시 후, 창밖으로 사막이 펼쳐집니다. 사막을 가로질러 흐르는 아무다리야강. 보이는 것이라곤 파란 하늘과 하얀 모래밭, 그리고 흙빛 강줄기와 함께 흐르는 오아시스뿐입니다. 낯설고 신비로운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아무다리야강은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합니다. 지구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산맥의 북서쪽이자 중앙아시아의 남동쪽에 있는 파미르고원부터 장장 2,540킬로미터를 흐릅니다. 한반도의 남북길이 두 배를 훌쩍 넘는 거리를 흐르는 동안, 아무다리야강으로는 흘러들어오는 지류도 하나 없습니다. 사막 지대를 거치면서 오히려 증발로 수량이 줄어들 뿐입니다. 아무다리야강은 그렇게 아무의 도움 없이, 오히려 자신을 나눠주면서 흐르다가 아랄해에게 모든 것을 넘기면서 사라집니다.         

 

히바에서 부하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키질쿰 사막을 흐르는 아무다리야강과 주변 오아시스


부하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입니다. 부하라시의 남동쪽에 있는 공항에서 시의 서쪽에 있는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까지는 버스로 20분이 채 안 걸립니다. 부하라는 동서로 가장 긴 거리가 13킬로미터 정도 되는 별로 크지 않은 도시입니다. 더구나 유적은 대부분 도심에 몰려 있어 걸어 다녀도 충분합니다. 가장 서쪽에 있는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초이르 미나렛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입니다. 그 사이에 유적이 대부분 몰려 있으니, 쉬며 걸으며 하루종일 천천히 고대 도시를 음미해야겠습니다.     


사만왕조를 일으킨 이스마일 샤마니     


이스마일 샤마니의 영묘는 작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주변과 흙빛으로 고고하게 서 있는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사각형 보도블록이 깔린 정갈한 마당에 팔각형 모양의 연못과 네모난 잔디밭, 잔디밭마다 동그랗게 잘 관리된 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계단을 다섯 개 내려가 그 정갈함 속으로 들어섭니다. 멀찌감치 서서 영묘를 바라봅니다. 이스마일 샤마니가 그의 아버지를 위해 892년부터 무려 51년에 걸쳐 지었다는 사만왕조의 영묘입니다. 이스마일 샤마니는 사만왕조의 두 번째 왕입니다.   

            

이슬람 우마이야왕조가 부하라를 정복한 후, 부하라는 호라산 총독부 관할이 되고 페르시아 귀족이었던 후다드 가문의 통치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외세가 침략한 후에 현지의 통치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굴복한 적은 이미 적이 아니라 효율적인 통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후다드 가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후다드 후손들은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습니다. 이슬람교는 침략자들의 종교였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후다드 가문은 819년에는 이슬람 아바스왕조로부터 중앙아시아 일대의 영토를 나누어 하사받았는데, 이때를 사만왕조의 시작으로 봅니다. 

사만왕조 전성기의 영토(진한 색).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을 거의 포괄하며,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까지 걸쳐 있다.

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이스마일 샤마니는 여러 차례 정복 전쟁을 치렀습니다. 북쪽으로는 투르크족 영토로 원정하여 많은 투르크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고, 남쪽으로는 페르시아계 이슬람왕조인 사파르왕조를 격파하며 영토를 넓혔습니다. 지금의 이란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강력한 왕조로 만들었지요.               


사만왕조는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651년 아랍 무슬림군에게 살해당한 후, 처음 등장한 페르시아계 왕조였습니다(873년 사만왕조에게 정복당한 타히르왕조를 첫 번째 페르시아계 왕조로 여기기도 합니다. 다만, 타히르왕조를 아바스왕조로부터 독립된 왕조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후 아랍계인 아바스왕조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9세기부터 11세기 초까지 여기저기서 다시 토착 페르시아계 왕조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그 왕조들은 짧게는 사십 년, 길게는 백 년이 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길게 180년동안 유지한 나라가 사만왕조입니다.      


이스마일 샤마니는 짧게 부침을 반복한 다른 페르시아계 왕들과는 좀 다릅니다. 이백 년 가까이 잊혔던 페르시아 문화를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쿠란을 페르시아어로 최초로 번역했습니다. 쿠란은 번역하지 않고 아랍어로 읽는 것이 원칙인데,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는 것은 당시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또, 시인과 문학가와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거대한 도서관도 지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발달하여 주변 이슬람 국가는 물론 러시아의 공국들과도 무역을 활발히 하였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발견되는 사만왕조의 동전들이 그 증거입니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발달해나간 부하라는 그렇게 아랍과 페르시아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가 되어 갔습니다. 아바스왕조의 수도 바그다드 못지않은 대도시로 번창하였던 거지요.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는 정육면체 건물 위에 돔을 얹은 모양입니다. 정육면체는 땅을 상징하고 돔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흙을 낙타 젖으로 반죽하면 수천 년이 가는 벽돌이 만들어진답니다. 그 벽돌로만 쌓아 올린 건물인데, 벽돌 쌓는 방법을 조금씩 다르게 하여 변화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벽돌 쌓는 방법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대나무 바구니와 비슷한 느낌의, 저렇게 오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9세기 말에 지은, 현존하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돔은 우주를, 정육면체는 땅을 상징한다.


영묘의 가장 아래쪽에는 불교 형식으로 기단이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이후에 불교의 흔적은 지워졌지만, 영묘가 지어진 9세기 당시에는 아직 불교의 영향력이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북방 경로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의 일입니다. 서역을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해진 대승불교가 발달한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입니다. 특히, 그곳의 쿠샨왕조는 헬레니즘과 불교문화가 융합된 간다라 미술을 발달시켰습니다. 그렇게 일찍이 불교가 발달했던 중앙아시아에서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점과 이후 이슬람교의 확장 탓도 있지만, 그 이전에 북방의 유목민들에게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교리가 맞지 않은 탓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낙타 젖으로 반죽한 벽돌 틈으로 쏟아지는 햇빛     


영묘의 벽면 모양은 아치 곡선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구분됩니다. 벽돌을 쌓아 올린 기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치 곡선 아래쪽은 벽돌을 한 번은 면이 보이게 쌓고 또 한 번은 모서리 부분이 보이게 쌓았습니다. 그렇게 번갈아 쌓았습니다. 아치 곡선 위쪽으로는 수평과 수직으로 번갈아 쌓았습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쌓아 올려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덕분에 햇살은 벽돌의 요철에 부딪혀 반사되기도 하고 그림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햇살 강한 오늘은 벽돌색이 강한 대조를 보이며 건물 전체가 강건하게 보입니다. 아마도 흐린 날에는 밝고 어두운 대비 없이 흙빛으로만 고즈넉이 지나간 역사를 증언하리라 추측해봅니다. 벽돌이 앉고 서고 돌아선 채 전하는 역사의 증언.


아치 곡선을 둘러싸는 ㄷ자 테두리는 벽돌로 만든 원형 고리 모양으로 채워졌습니다. 원형 고리는 태양을, 신을 뜻할 겁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지요. 9세기, 10세기에는 조로아스터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던 시기였으니 태양과 불로 상징되는 조로아스터교 예술의 흔적이 당연히 남아있습니다. 연주문이라고 부르는 구슬을 꿴 듯한 원형의 무늬도 그중 하나입니다. 불교와 함께 서역과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으니까요. 신라 토기에서, 귀걸이와 같은 장신구에서, 도자기에서, 동종이나 금고 같은 불교 공예에서. 박물관에 가기만 하면 보이는 것들이지요.    

  

아치를 둘러싼 ㄷ자와 반복하는 정사각형을 연주문이 둘러싸고 있다. 반복하는 정사각형 안에는 새 문양이 있다.


연주문은 주로 중심이 되는 주제 무늬를 둘러쌉니다.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에서도 연주문 덕분에 그 안에 자리 잡은 아치 곡선과 반복하는 정사각형의 품격이 한층 돋보입니다. 반복하는 정사각형을 자세히 보면, 새 네 마리가 한 귀퉁이씩 차지하여 정사각형을 만든 모습이 보입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상서롭게 여긴 길조입니다. 두 다리를 모으고 긴 날개를 퍼덕이며 길조가 날아갑니다. 이 문양은 아치 곡선 꼭대기의 삼각형 안에도 있습니다. 히바의 주마 모스크의 반복하는 정사각형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9세기에 지어진 이 벽돌 건물에 아직 조로아스터교의 영향력이 남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영묘의 안쪽에도 벽돌의 변주는 끝이 없습니다. 벽돌을 쌓는 방법만이 아니라 벽돌로 만든 모양 자체에도 변주는 이어집니다. 납작한 벽돌을 다섯 개 붙여 만든 큰 정사각형을 한 칸 건너씩 놓았습니다. 그 사이사이에는 그보다 작고 납작한 벽돌을 네 개 붙여 만든 정사각형을 90도 회전하여 놓았습니다. 큰 정사각형 모서리 가운데에 작은 정사각형이 살짝 닿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 '반복하는 정사각형'*을 만듭니다.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의 안쪽. 벽돌을 쌓은 방법뿐만 아니라 삼각형, 사각형, 원형 등 벽돌로 만든 모양도 다양하다. 반복하는 정사각형 모양도 보인다.


밖에서 보면 앙증맞게 작은 이완들이 옆으로 늘어서서 돔을 받치고 있습니다. 안쪽에서는 그 부분부터 돔이 시작되지요. 여러 가지로 배열을 바꾸며 무늬를 품은 아치들이 벽면을 두르며 사각형 벽면을 둥근 돔으로 이어줍니다. 돔 천장은 얇은 직사각형 벽돌들이 가운데 구멍을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배열되어 있습니다. 마치 별들이 일주운동을 하듯, 돔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있습니다. 사만왕조의 왕족들이 아치와 도형들의 잔치 속에서 영면에 빠져있습니다. 벽돌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햇빛이 바닥에 네모나게 잘려 비칩니다. 정육각형 돌이 빈틈없이 채운 바닥에 네모난 햇빛들이 가득합니다.      


영묘 안쪽에 있는 벽돌로 만든 가묘를 손으로 쓸어봅니다. 비록 가묘이지만, 저 아래 땅속에 묻힌 자들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가묘의 모양은 히바에서 많이 본 모양입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려는데, 누군가 관광 지도를 내밉니다. 나이 지긋한 우즈벡 여인입니다. 아마도 오십 줄에 들어서지는 않았을 텐데, 강한 햇볕에 피부도 빨리 노화되고 평균 수명도 우리보다는 짧은 탓에 나이 들어 보이나 봅니다.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히바 지도를 샀습니다. 히바를 떠나온 아쉬움에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나 봅니다.      


     

밖으로 나와 영묘를 한 바퀴 돕니다. 문양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네 면의 모양은 거의 똑같습니다. 중앙에는 아치 아래 나무 문이 있고 벽면은 벽돌을 엇갈려 쌓았고 그 위로는 아주 작게 이완 모양을 띤 창문이 있는 모습. 나무 문은 발굴되고 나서 짜 넣은 것이랍니다. 지금은 서쪽 문만 출입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위로 반구 모양으로 얹혀 있는 돔에는 납작한 벽돌이 모서리를 삐죽 내밀면서 두 줄로 빙 둘러 박혀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니 아까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입니다. 메카의 카바신전을 닮은 정육면체 건물의 네 모서리에 굴다스타처럼 원형의 기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둥 위 돔 옆에는 작은 돔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이슬람교가 확장되던 초기 건물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불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의 영향력이 모두 깃든 이 성스러운 묘당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중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랍니다. 어느 날, 이 묘당은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칭기즈 칸의 군사는 물론 그 후 여러 차례의 침략자들도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돔 위로 덮인 모래만 밟고 지나갔지요. 이 영묘가 다시 인간의 역사 위로 떠오른 것은 1925년 소련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였답니다. 




* '목각 예술의 도시 히바 5, 주마 모스크에서 만나는 고구려 고분 천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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