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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02. 2021

히바_낙타가 되어 가리라 8

남문쪽 주민 거주 지역


희뿌옇게 밝아오는 히바


오늘은 히바를 떠나는 날입니다. 아침에 우르겐치로 가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새벽 히바를 보기 위해 아직 깜깜한 5시에 나섰습니다. 숙소 프론트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보더니 올 수 있는 택시가 없다고 합니다. 이찬 칼라 안에 숙소를 잡지 않은 걸 후회했지요. 그래도 이런 경우를 예상해서 구글 지도를 내려받아 두었습니다. 이찬 칼라까지의 거리는 2km 남짓, 3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휴대폰의 GPS를 켭니다. 


낯선 도시에서, 더구나 어스름 새벽에 길을 걷는 건 뭔가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남들보다 더 풍부한 인생을 산다는 느낌이랄까. 몇 년 전에 가로등도 없는 베네치아 밤 거리를 휴대폰 GPS의 세모꼴 표시에 의지해서 걷던 때가 생각납니다. 몇 번 길을 잘못 들어 운하로 끊긴 길에서 되돌아 나오기도 하고, 이게 길인가 싶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까지 지나면서 결국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나오긴 했지요. 그때는 낯선 경험에 약간 흥분되면서도 언제 도착할까 초조한 마음이 깔려 있었는데, 오늘은 영 다릅니다. 저무는 밤과 시작하는 새벽의 차이일까요? 서양과 아시아의 차이일까요? 거리 풍경이 어릴 적 주택가 골목길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남문에 도착하는 동안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남문 앞에는 한적한 시골이 펼쳐져 있습니다. 남문 밖 성벽에 봉긋봉긋 아치 모양으로 올라온, 저 벽돌로 만든 둥근 것은 무덤입니다. 파흘라반 무함마드 영묘에서 본 것처럼 이곳 사람들은 무덤을 흙벽돌 봉긋한 구조물, 원을 여러 개 사용하여 그린 아치 모양으로 만듭니다. 완만한 성벽 위에 죽은 자들이 군데군데 누워있습니다.      

    

남문 밖 완만한 성벽 위에 무덤들이 있다.

   

성안으로 들어갑니다. 남쪽 지역은 주민들의 거주 지역입니다. 동문과 서문을 잇는 대로변에 복원된 유명 관광지들이 몰려 있다면 남쪽과 북쪽에는 마드라사와 모스크도 있지만 대체로 거주 지역이지요. 

조금 걷다 보니 호텔로 쓰이는 집인 듯한데 마치 주마 모스크처럼 현관 지붕을 목각 기둥 하나가 받치고 있습니다. 주춧돌 부분까지 나무로 되어 있고 마당 아래쪽에 주춧돌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문화재라고 보호받을만한 것들이 마구 뒹굴고 있습니다.     


          

조각이 아름다운 목각 기둥이 있는 호텔 앞에 주춧돌도 있다(왼쪽). 남쪽 주민 주거 지역의 평범한 집. 뒤로 파흘라반 무함마드 영묘의 푸른 돔이 보인다(오른쪽).

  

아직 이찬 칼라는 잠에서 깨지 않았습니다. 살며시 골목을 걷는데, 밖에 놓인 침상에서 자는 가족이 보입니다. 정해진 길도 없이 걷다 보니 주민들이 사는 집과 호텔로 개조된 집들이 섞여 있습니다. 창문을 광목 같은 천으로 가린 집도 있고 빨랫줄에 옷가지가 널린 집도 있습니다. 주민들이 사는 집은 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방인 듯, 열어 놓은 문 안쪽으로 누운 사람도 보입니다. 조금 더 가니 바닥에 두툼한 침구를 깔고 하늘을 덮고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방해될까 싶어 까치발로 지나갑니다.


화려한 마드라사와 소박하지만 정갈한 모스크만 보다가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저 사람들처럼 길거리에서도 방에 누운 사람이 보이는 집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민망해서 걸음을 서둘렀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건조한 곳이라 전혀 찜통이 아닌데도 밖에서 자나 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집밖에서 자는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여름에는 툇마루로 나와서 자곤 했습니다. 찌는 듯한 삼복더위를 못 견디고 마루로 나왔던 것 같은데, 자다 보면 서늘한 기운에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집안 툇마루가 아니라 동네에서 가장 큰 몇백 살은 되었을 아름드리 아카시아 아래 평상에서 자던 동네 어른들이 부러웠습니다. 이젠 집 밖에서 잠을 못 자게 할 어른도 없지만 길거리 평상에서 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가슴이 탁 트이는 자유를 느꼈던 것은 바람을 가르는 속도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대지 위에 몸을 누인 기억도 큰 몫을 차지하지요. 북한강 변 운길산이었을 거예요.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다 지친 우리 일행은 조금 널찍한 풀밭이 나오자 자전거와 함께 모두 쓰러져 버렸지요. 널브러진 자전거들, 하늘을 바라보며 누운 우리. 자전거를 타다 힘들면 그렇게 아무 데서나 누워버렸었지요. 


슬며시 날은 밝아오는데 아직 잠에 빠진 주민들은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다면 바닥에 얇은 담요 하나 깔고 이곳 주민들처럼 눕고 싶습니다.       


아치 벽 남쪽은 이찬 칼라의 주민 주거 지역이다(왼쪽). 주민 거주 지역에서 가족인 듯한 5명이 바깥 침상에서 자고 있고 방문을 열고 자는 집 뒤로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 보인다

       

이리저리 새벽길을 헤매는데, 허름한 집 뒤로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 가까이 보였습니다. 이제 남쪽 주거 지역이 거의 끝났나 봅니다. 돌바닥에 푹신한 침구를 깔고 아직 잠에 빠진 사람들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 아치문을 지나가자 어제 돌아보던 이찬 칼라의 화려한 길거리입니다. 


빈 거리에 노점상이 물건을 판매대 위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거듭니다. 주마 모스크 미나렛 앞의 반원형 벤치에 앉아 봅니다. 어젯밤에 쌍곡선을 그리던 성벽 위에 달린 전구가 보입니다. 전구 불빛이 꺼지니 쌍곡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를 키우는 아이


날은 완전히 밝았습니다. 남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흙벽돌 집들의 색깔이 모래 색깔에 가깝습니다. 어제 대로변의 화려한 마드라사나 궁전의 흙빛보다 훨씬 밝습니다. 사막의 한 가운데라는 느낌이 짙게 풍깁니다. 남문 양옆으로는 꽤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습니다. 바로 오른쪽으로 성벽이 무너진 곳이 눈에 띕니다. 아니, 아직 복구하지 않은 성벽이라고 해야겠지요. 그 무너진 성벽 앞쪽에, 몇 그루의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사이로 소가 한 마리 보입니다. 갈색 소. 우리나라 외양간에 데려다 놓아도 멀리서 데려온 티가 전혀 나지 않을 것같이 생긴 소입니다.         


남문 옆 아직 복구하지 못한 무너진 성벽. 흙벽돌 잔해가 보인다. 남문 안쪽에는 소를 기르는 집도 있다. 그 집의 어린 딸은 엽서를 팔았다.

 

어디선가 대여섯 살 먹은 여자아이가 나타났습니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엽서를 내밉니다. 이찬 칼라의 유적들이 찍힌 엽서가 여러 장 들어있네요. 너희 집 소니? 소를 가리키며 묻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엽서를 팔기 위해서라면 그쯤은 대답해줄 수 있다는 여유가 보입니다. 사진도 같이 찍어주었습니다. 엽서는 꽤 여러 장 들어있었지만, 끝이 해진 것도 있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도 한양도성 담벼락 아래 있었습니다. 성벽은 내 책가방보다 몇 배는 큰 돌덩어리들로 쌓아 올린 것이었습니다. 마당 한쪽 벽이 성벽이었지요. 수직으로 가파른 성벽 돌 틈에서 앵두나무도 자랐습니다. 돌 틈에 발을 끼워 넣으며 벽을 타고 조금 올라가서 앵두를 따 먹곤 했습니다. 그 집은 무허가 집이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늘어선 마을 집들이 모두 강제 철거되던 날, 엄마도, 동네 어른들도 울며불며 매달렸습니다.


이찬 칼라 남문 성벽 앞에서 만난 달러로 거스름돈까지 들고 나타난 아이는 성북동 성벽 밑에 살던 그 아이 또래의 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엽서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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