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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10. 2021

햇빛과 흙빛이 어우러진 부하라 5

칼란 모스크_칼란 미나렛_미르 아랍 마드라사


성문 밖으로 나오면 길 건너에 전망대로 사용되는 철제 탑이 있습니다. 이 탑을 세운 러시아의 엔지니어이자 건축가인 블라디미르 슈코프의 이름을 따서 슈코프 탑이라고 부릅니다. 슈코프 탑은 1927년부터 3년 동안 지은 급수탑입니다. 이 급수탑은 1979년에 불에 탔는데, 철거당하지 않고 전망대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이 급수탑의 윤곽은 쌍곡선입니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쌍곡선 건축물의 시작입니다. 철제 버팀대를 수평 수직이 아닌 어슷한 방향으로 세워 쌍곡선을 만들었지요. 옆에 키가 더 큰 사각 구조물은 엘리베이터입니다.    

           

아크르성 앞 슈호프 탑. 철골을 어슷하게 이은 쌍곡면 모양으로 전망대 사용되고 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 때문에 등장했습니다. 물이 끓을 때 발생하는 증기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기차역에는 급수탑이 설치되기 시작했지요. 중간중간 물을 공급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나 책에서 달리는 기차의 앞바퀴에서 치익치익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본 일이 있지요? 열차의 보일러실에서 몇몇 사람이 얼굴에 검댕이를 묻힌 채 석탄을 계속 퍼넣고 있는 장면도. 증기기관차는 그렇게 석탄을 계속 퍼붓고 물을 끓여야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차역에서 물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급수탑이 설치되어 있는 거지요. 


지금 우리나라에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급수탑은 콘크리트로 지은 원통형이 많습니다. 벽돌로 지은 것도 몇 개 있습니다. 급수탑 아래쪽에는 우물이 있습니다. 급수정이라고 부르는, 멀리서 끌어온 물을 가둬두는 곳이지요. 급수탑이라는 말이 낯설면 물탱크를 생각하면 되지요. 우물 대신 상수도를 설치해서 살고 있는 요즘은 곳곳에서 물탱크를 볼 수 있으니까요. 건물 옥상에 파란색으로 칠해놓은 둥근 통. 


아르크성을 끼고 걷습니다. 아르크성의 위용은 역시 밖에서 볼 때가 제격입니다. 거대하게 높은 성벽이 극히 일부만 복원된 성안의 초라함을 감춰줍니다. 왼쪽으로 돌아서자 부하라 시를 동서로 관통하는 길입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오면 좀 더 복원되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미 눈은 저 앞에 칼란 미나렛으로 향합니다.      


칭기즈 칸이 머리 숙인 미나렛     


칼란 모스크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섭니다. 칼란 미나렛은 칼란 모스크와 미르 아랍 마드라사 사이의 광장에 있습니다. 넓지 않은 광장 끄트머리에 온몸을 흙빛 벽돌로 감싼 칼란 미나렛이 보입니다. 히바의 미나렛이 채색 타일로 화려했다면 이 미나렛은 오로지 벽돌로만 만들어낸 문양이 다채롭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흙빛 미나렛의 선이 아름답구나,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무늬를 바꿔가면서 올라갑니다. 탑은 14층이라는데, 원형 띠의 모양을 하나씩 세다가 어디까지 셌는지 놓쳐버립니다. 벽돌이 만드는 문양에 취했나 봅니다.     


동쪽(사진의 왼쪽)으로는 미르 아랍 마드라사, 서쪽으로는 칼란 모스크가 있는 광장 끝에 칼란 미나렛이 있다.


꼭대기에 있는 창의 위쪽으로 무카르나스도 품격있게 화려합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찰에서 채색 없이 섬세한 조각으로만 화려하기 그지없는 공포를 보는 듯합니다. 칼란 미나렛으로 이어진 칼란 모스크의 담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벽돌로 아치 문양을 만들고 벽 하나하나마다 벽돌 쌓는 방법에 변화를 주어 색다른 문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에서부터 그랬지요. 부하라는 오로지 흙빛 벽돌 하나만으로도 감탄을 터뜨리게 합니다.  

    


칼란 미나렛, 칼란 모스크 벽면의 문양. 흙벽돌만으로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내었다.


소박하게 아름다운 칼란 미나렛에서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어김없이 울려 퍼졌을 겁니다. 밤이면 꼭대기의 16개의 창에 사막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등대 역할을 하는 불을 밝혔을 테고요. 그리고 미나렛의 또 하나의 기능, 사형수들을 자루에 넣어 탑 아래로 집어 던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벽돌이 깨끗하게 깔린 적막한 광장이 품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1127년에 지어진 칼란 미나렛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칭기즈칸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닥치는 대로 건물을 파괴했으나 이 탑만은 파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칭기즈칸을 ‘머리 숙이게 한 멋진 탑’이기 때문이랍니다. 칭기즈칸이 탑을 올려보는 순간 바람이 불어 떨어진 모자를 줍기 위해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고.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나 칭기즈칸이 감동할 만큼 충분히 크고 아름다웠나 봅니다.      


팔각 추모탑의 칼란 모스크     


칼란 모스크 안으로 들어섭니다. ㅁ자 모양의 건물로 둘러싸인 넓은 안뜰이 맞아 줍니다. 1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는 크기라고 합니다. 건물은 막힌 공간이 아닙니다. 안뜰을 향해 열려 있는 주랑 형식입니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얀 회벽의 주랑이 쭉 이어집니다. 햇빛 아래 있을 때보다 훨씬 시원합니다. 

안뜰에는 모스크에 비해서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가까이 가니 나뭇잎에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나이가 오백 년은 가뿐할 이 뽕나무가 없었다면 안뜰의 풍경이 얼마나 심심했을까 싶습니다. 기단에 걸터앉아 그늘을 즐깁니다. 


칼란 모스크 안쪽에 설치된 팔각 추모탑. 칼란 모스크의 내부는 아치문으로 뚫려 있는 긴 주랑이다.
쿠파체로 쓴 무함마드

뽕나무 반대편으로 푸른 돔이 있습니다. 돔은 아랍어로 꿉바라고 부르는데, 평화를 상징합니다. 칼란 모스크는 칭기즈칸에게 점령당하기 전에는 목조 사원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모습은 샤이반왕조 때인 1514년에 갖춰졌다지요. 샤이반왕조는 푸른 돔과 채색 타일을 사용하기 시작한 티무르제국을 멸망시키고 부하라에 가장 화려한 건축물을 남긴 왕조입니다. 돔 앞에는 팔각 탑이 있습니다. 탑이라기보다는 작은 건물처럼 보입니다. 칭기즈칸이 침략했을 때 희생된 아이들을 기리는 추모탑이랍니다. 멀리서 볼 때는 벽돌만으로 지은 탑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한 면은 채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 저 글자는 알아보겠어요. 아치 위에 쿠파체로 쓰인 글자 중에 무함마드라는 글자가 눈에 보입니다.     


모스크를 나와 다시 칼란 미나렛이 있는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정면에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빛 돔을 두 개 거느리고 미르 아랍 마드라사의 피슈타크가 웅장합니다. 건물 양 끝의 굴다스타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돔이 없습니다. 나중에 보니 부하라의 굴다스타에는 대체로 돔이 얹혀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언젠가 무너져 내렸겠지만, 이대로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소련 시절에 유일하게 운영된 신학교로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배움의 길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신학교로 사용되고 있어 틈새로만 기웃거려 봅니다.


미르 아랍 마드라사도 샤이반왕조가 군림한 1536년에 완공되었기 때문인지 다른 건물보다 화려합니다. 미르 아랍 마드라사의 회랑을 마감한 벽돌이 고귀한 화려함을 이끕니다. 짙은 갈색과 밝은 황색의 벽돌을 섞어 돔의 중앙을 향해 꺾인 곡선처럼 올라갑니다. 벽면의 중간부터 솟아난 흰색 선들이 사각 벽이 어느 틈에 둥근 돔 모양으로 바뀌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게 돔 중앙으로 시선을 잡아끕니다.      


이슬람 건축물을 만드는 아치      


이슬람 건축물은 아치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건물은 프랙털처럼 크고 작은 이완을 조합하여 만들어놓은 모양이고 그 이완은 아치 곡선으로 완성됩니다. 미르 아랍 마드라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슈타크의 커다란 아치 안에는 작은 아치를 품은 이완이 6개 들어가 있습니다. 옆으로 늘어선 이완에도 이완 하나마다 아치가 있고 그 아래 마쉬라비야 와 나무로 된 문이 있습니다. 마쉬라비야는 나무로 짠, 바람이 통하는 창을 말합니다. 나무를 촘촘히 배치하여 짰기 때문에 간격을 조정하여 구멍을 작게 할 수도, 크게 할 수도 있지요. 구멍 덕분에 외부와 적당히 차단되는, 창문을 열지 않고도 밖을 살필 수 있고 바람도 통하고 빛도 들어오는 창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곳간에도 이와 같은 형태의 창이 있었지요.      


미르 아랍 마드라사 서쪽 문. 이슬람 건물에는 아치가 무척 많다. 아치 바로 아래 마쉬라비야와 출입문이 있다(왼쪽). 북쪽 바깥 벽면의 마쉬라비야(오른쪽).


이슬람 건축물에 있는 아치는 서양의 것과는 생김새가 다릅니다. 서양의 것은 둥글게 보이는데, 이곳의 아치는 둥글다가 뾰족합니다. 이런 아치는 어떻게 그리는 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아치는 절반으로 나누면 서로 대칭입니다. 그러니 곡선의 모양의 절반만 자세히 보지요. 꼭대기에서 가장자리로 흘러내리는 곡선은 거의 직선에 가까울 정도이고 곡선 부분이 끝나는 쪽에 오면 급하게 둥글려집니다. 이런 곡선을 그리려면 원이 네 개 필요하지요. 

먼저 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원을 크게 그립니다. 이 원의 반지름 위에 중심이 있고 반지름의 끝을 지나도록 빨간색 원을 작게 그립니다. 그중 실선 부분만 택하면 아치의 절반입니다. 이것을 축에 대칭시키면 아치 곡선 전체가 됩니다.             

크기가 다른 원 두 개를 이용하여 아치 절반을 그린 다음 대칭시키면 아치 곡선이 완성된다.

아치 곡선의 둥글기를 조정하려면 파란색 원 중심의 위치를 바꾸면 됩니다. 이 중심이 축에 가까이 오면 아치 곡선이 납작해지고 축에서 멀리 떨어지면 뾰족해지지요. 건물의 모든 아치 모양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원리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두 중심의 위치를 조정하여 아치 모양을 뾰족하게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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