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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17. 2021

삶의 교차로 타키 1

낙타를 탄 채 들어가는 시장 타키


미르 아랍 마드라사를 지나면 바로 타키 자르가론이 보입니다. 타키는 지붕이라는 뜻의 타직어인데, 둥근 지붕으로 된 시장을 말합니다. 벽돌로 만들어진 둥근 돔은 하나가 아닙니다. 크고 작은 돔들이 이어진 커다란 덩어리가 시장입니다. 그 안에 넓은 공간도 있고 길이 갈라지면서 사방으로 열려 있어 교차로의 역할도 하지요. 


시장은 부하라의 역사입니다. 부하라의 시장은 지붕이 높아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은 낙타를 탄 채 시장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도를 보면 부하라는 텐산 산맥을 중심으로 텐산 북로와 텐산 남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낙타를 수백 마리 이끌고 수개월을 걸어온 상인들. 뜨거운 사막을 지나왔으니 지칠 대로 지친 낙타에게도 그늘이 필요했을 테지요. 아니, 그보다는 낙타에 실은 짐을 부리기 위해 낙타를 시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했을까요? 어쨌든 높은 지붕을 갖춘 시장은 부하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욥의 샘에 걸린 목욕탕 지도. 19세기에 20개의 목욕탕이 있었다(왼쪽). 타키는 둥근 돔이 여러 개 이어져 있는 모양이다. 돔 중앙에는 통풍 겸 채광을 위해 구멍이 뚫려 있다.


부하라는 칭기즈칸에게 약탈당한 후, 13세기 후반까지도 다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티무르제국 아래서, 우즈벡 유목민 부족인 샤이바니가 왕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점차 옛 명성을 회복해나갔습니다. 상인들의 교역장, 시장들이 늘어섰으며, 상인들의 숙소인 캐러밴사라이는 수십 개가 되었고, 공중목욕탕도 길거리마다 즐비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귀에 남은 특이한 음색의 악기      


지금 남아 있는 타키는 세 곳입니다. 타키 자르가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타키 틸팍 푸르산이 있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타키 사라폰이 있습니다. 세 곳의 현판에는 모두 XVI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16세기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고 번역해주네요. 샤이니왕조때 세워졌나 봅니다.


타키마다 취급하는 주요 품목이 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규모의 재래시장은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었지요. 한약 약재를 사려면 경동시장으로, 제빵 관련 물품을 사려면 방산시장으로, 건어물이나 한복을 사려면 광장시장으로 가는 식이었어요. 이곳에서는 타키 자르가론은 금은 보석, 타키 텔팍 푸르산은 모자나 모피, 타키 사라폰은 환전을 위한 교역소였습니다. 지금은 실크, 카펫, 접시 등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 판매가 그 특징을 삼켜버렸지만요.    

  

가장 먼저 타키 자르가론으로 들어갑니다. 건물 바깥부터 기념품들이 즐비합니다. 입구 위쪽에는 줄을 걸어 캔버스 천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수놓은 화려한 천과 가방, 직물공예품을 걸어 놓았습니다. 헹거와 가판대 위에도 겹겹이 놓여 있어요. 조금 높게 설치한 헹거에는 실크로 만든 긴 원피스가 우아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실크의 고장답습니다. 탁자 위에, 땅바닥에 부하라의 건축물을 새긴 크고 작은 장식 접시가 깔려 있습니다.     


기념품 중에는 가끔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것도 있었습니다. 여기 악기가 그랬지요. 부하라에 두 군데 정도 있었는데, 다른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웠습니다. 기타를 닮은 현악기가 생김새도 독특하고 한눈에 반해버릴 정도로 음색이 좋았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데, 저걸 가져오면 애물단지만 되겠다라는 마음이 이겼지요. 그런데 이름도 기억 못하는 그 악기를 다시 보기 어려웠습니다. 유튜브를 보면서 배우면 된다는 말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까지 귀에 아른거릴 정도로 아쉬웠어요.      


타키 자르가논에서 악기를 파는 상인. 상인이 직접 시연해주는 악기의 음색이 매우 특이했다.


타키 자르가론을 나오면 넓은 광장 동쪽으로 거대한 건물 두 개가 마주보고 있습니다.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와 압둘라지즈칸 마드라사입니다.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는 티무르제국을 세운 티무르의 손자인 울르그 베그가 1420년에 완공한 건물입니다. 입구 왼쪽, 건물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길게 새겨진 캘리그라피는 ‘지식에 대한 열망은 모든 무슬림 남녀의 의무’라는 뜻이랍니다. 부하라를 이슬람 세계의 중심 문화 도시로 만들려는 티무르제국의 포부를 담아 지은 건물이지요. 아쉽게도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압둘라지즈칸 마드라사도 마찬가지입니다. 17세기에 지어진, 당시에는 사마르칸트의 것들처럼 몹시 화려하게 지어진 흔적이 역력합니다. 비록 피슈타크의 채색 타일도 깨져나가고 벽돌이 드러나 있고, 양옆 2층으로 늘어선 이완에도 채색 타일은 흔적도 없지만요.     


타키와 길거리를 뒤덮은 카펫      


타키 자르가논에서 타키 틸판 푸르산까지는 거리가 200미터 남짓, 짧습니다. 길 양편으로 상점이 늘어서 있습니다. 길은 적당히 좁아서 좌우로 기웃거리며 양편 상점을 모두 구경할 수 있지요. 기념품 품목은 대체로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장식 접시는 도시마다 약간씩 특징이 있습니다. 도시의 건물이나 풍경을 담은 탓도 있지만, 히바의 것이 투박하고 소박하다면 부하라의 것은 조금 더 세련된 느낌입니다.      



타키 자르가논과 타티 텔팍 프루산 사이의 거리. 정면에 보이는 돔이 타키 텔팍 프루산이다.


카펫이나 천에 수를 놓은 직물공예품은 가는 곳마다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곳곳에 카펫 박물관, 카펫 시장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타키 자르가논에서 타키 틸판 푸르산쪽으로 몇 발자국 안 가서 있는 팀 아불라칸도 카펫 시장입니다. 타키처럼 크고 작은 돔 여러 개로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타키처럼 교차로에 있지 않고 마드라사처럼 길옆에 있습니다. 그래도 중앙의 가장 큰 돔 아래 공간에는 바닥은 물론 주변 벽까지 온통 카펫입니다. 기둥과 아치 모양의 벽감까지 휘황찬란하게 카펫들이 서 있고 누워있습니다. 타키처럼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길이 열려 있어 아무대로나 나갈 수 있지요.     


팀 아불라칸도 카펫 시장. 크기와 무늬가 다양하다.


카펫은 손바닥만 한 장식용 소품부터 큰 거실에 깔아도 충분할 만큼 큰 것까지 다양합니다. 길게 걸어 벽을 장식하기 좋은 것들도 있고, 모양도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 등 각양각색입니다. 부하라의 카펫은 흔히 생각하는 바닥에 까는 두터운 것만 있지 않습니다. 실크로 짠 것도 있습니다. 실크로 짠 카펫이라니. 보이는 아무 나무나 가리키면 뽕나무일 정도로 양잠이 아주 오래전부터 발달한 지역이니 카펫도 실크로 짤 만하지 않은가요? 카펫이라기보다는 예술품입니다. 오래 걸리는 것은 몇 달에 걸쳐 짜기도 한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카펫을 까는 문화가 아니지요. 여름엔 벽지가 뜰 정도로 습하고 겨울엔 장판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온돌을 만끽해야 하니 카펫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내가 카펫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라비안나이트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하늘을 나는 양탄자! 예전에는 카펫이라는 말보다는 양탄자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였지요. 양탄자에 올라타고 하늘을 날아서 순식간에 이동하는 장면에서는 어느새 내 몸도 같이 양탄자에 올라타 날아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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