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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17. 2021

삶의 교차로 타키 2

타키 텔팍 푸르산_캐러반사라이_마고키 아타리 사원


타키(시장) 텔팍 푸르산에 거의 다 오면 아주 소박한 모스크가 하나 있습니다. 황금빛 현판에 16세기에 세워진 보조리포드 모스크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즈벡어, 러시아어, 영어 그렇게 세 언어로. 나무 지붕을 목각 기둥 하나가 받치고 선 소박한 이완에는 카펫이 걸려 있습니다. 크고 작은 직사각형 카펫들이 하얀 벽에 걸린 모습이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 같습니다. 모스크가 카펫 상점이 되었구나. 계단을 몇 개 올라가 모스크 안으로 들어갑니다.  모스크 안에도 카펫이 즐비합니다. 이국인을 보는 상인들의 눈빛이 빛납니다.        


타키 텔팍 푸르산 바로 앞에 있는 보조리포드 모스크. 지금은 카펫을 판다. 

  

다시 길로 나와 모자나 모피 전문 교역소였던 타키 텔팍 푸르산에 들어섰습니다. 높은 아치문 아래 털로 만든 모자와 하늘하늘한 실크 여름 블라우스가 함께 걸려 있습니다. 전대를 찬 아주머니가 편의점 바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무료한 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타키 텔팍 푸르산의 천장의 천정이 특이합니다. 둥근 돔 중앙에서 늘어뜨린 전등은 사각뿔 틀에 들어있습니다. 철로 만든 사각뿔에 몇 개의 뼈대가 더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등 바로 밑에서 쳐다보자 모양이 달라집니다. 6개의 사각형이 정확하게 90도씩 엇갈리며 별팔각형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똑같은 크기의 2개의 사각형이 별팔각형을 만듭니다. 그래서 점점 커지는 별팔각형이 3개입니다. 이곳 부하라는, 기하학적 문양이 벽에만 있지 않고 허공에도 매달려 있는 곳인가 봅니다.          


타키 텔팍 푸르산의 전등. 옆에서 보면 사각뿔이 거꾸로 매달린 모양이지만 밑에서 보면 정사각형이 엇갈리면서 커져 별팔각형 모양을 만든다.

    

터만 남은 캐러반사라이와 목욕탕     


타키 텔팍 푸르산의 남쪽 출구로 나오면 도로 가운데 섬처럼 조성된 녹지가 보입니다.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어진 녹지가 로터리를 만듭니다. 그쪽에 낮은 담장 위에 군청색 난간으로 둘러쳐진 무언가가 있고 사방팔방으로 화살표를 단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길을 건너 다가가자 길 아래쪽으로 몇 미터 낮게 돌로 엉기성기 구획된 터가 보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립고고학아카데미의 연구자들이 발굴했다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땅 밑에 파묻혀 있던 터를 발굴하였기에 지면보다 몇 미터 내려간 낮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막을 오갔던 상인들의 숙소, 캐러반사라이와 목욕탕 터입니다. 이제는 터만 남아있지만, 길거리마다 있었던 상인들의 숙소와 목욕탕에는 한때 왁자한 활기가 넘쳤겠지요.


상인들의 숙소와 목욕탕 터. 왼쪽 사진의 돔은 바로 옆에 있는 마고키 아타리 사원이다.

     

그 옆은 육각형 돔이 아름다운 마고키 아타리 사원입니다. 마고키 아타리 사원은 언제 지어진 것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몇 개 안 되는 몽골 침략 이전의 유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가 모두 사원으로 사용한 흔적이 각기 다른 지층에서 발굴된 곳입니다. 시간에 따라 지면의 높이가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19세기에 지진으로 묻혔다가 몇십 년 후에 발굴되었습니다. 이 사원이 벽돌 문양의 남쪽 입구를 비롯한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칼란 미나렛이 지어진 12세기 카라한왕조 때이고 동쪽 피슈타크는 그 이후인 1546년 무렵에 증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부하라의 정신세계를 모두 담은 곳이라니 부서져 내린 벽돌, 퇴색한 캘리그라피가 오히려 고색창연하게 보입니다. 이곳도 지금은 카펫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고키 아타리 사원과 라비 하우즈는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먼저 남쪽으로 보이는 타키 사라폰 바자르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라비 하우즈에서 더위도 식힐 겸 쉴 계획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오래된 도시를 보려면 지그재그로 다닌 건 어쩔 수 없지요. 직진만 하다가는 도시를 몇 바퀴를 돌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타키 사라폰이 환전을 위한 교역장이었던 흔적은 이제는 없습니다. 길목에는 눈이 휘둥그레지게 문양이 다양한 도자기 접시들이 바닥에 진열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타키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 실크 옷을 파는 가게, 카펫을 파는 가게가 차례로 있습니다. 붉은 카펫을 잔뜩 걸고 쌓은 가게 앞에 탁자를 놓고 쿠피를 쓴 아저씨가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카펫 조각과 큰 가위뿐, 아마도 카펫 수선을 하고 있나 봅니다.      

               

타키 텔팍 프루산에서 타키 사라폰 바자르로 가는 길. 바닥에 도자기 접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왼쪽). 타키 사라폰 바자르(오른쪽)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손을 쓰는 일은 아주 당연합니다. 카펫도 손으로 짜고 수도 손으로 놓습니다. 나무도 손으로 깎습니다.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린 나무로 만든 필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공업이 발달하지 않아 공산품은 비삽니다. 플라스틱 그릇, 연필, 공책, 우리에겐 흔한 이런 것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매우 고가의 물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은 필기를 안 한다고 합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필기할 공책을 마련하기 힘든 거지요. 어려서부터 쓰지 않고 보면서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말입니다. 공부하려면 일단 연필부터 손에 쥐는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 예전의 공부는 그랬지요. 읽고 외우고 그랬지요.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 눈으로 볼 때와는 다른 기운이 생겨나는 걸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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