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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24. 2021

삶의 교차로 타키 3

대상들의 쉼터 라비 하우즈


타키 사라폰을 나와 다시 지그재그로 걸어 라비 하우즈쪽으로 갑니다. 라비 하우즈는 하우즈, 즉 연못과 두 개의 마주보는 건물로 이루어진 부하라 역사의 중심입니다. 사실 라비 하우즈에서 칼란 미나렛까지는 직선거리로는 500미터 정도입니다. 길을 모르더라도 지도를 손에 들고 동서남북 방향만 잡고 이리저리 걷다 보면 관광객이 가야 할 곳은 어느새 모두 지나갈 수 있지요. 부하라는 그렇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도시박물관입니다. 


가장 먼저 만난 건물은 나디르 디반베기 카나카입니다. 여행하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는 이슬람 수피교도들을 위한 숙소였습니다. 금욕과 고행을 중시하는 이들이 머물다 가게 한 거지요. 연못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같은 이름의 마드라사가 있습니다. 두 건물은 1620년대에 이것을 지은 당시 부하라 칸의 외삼촌인 나디르 디반-베기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두 건물 모두 숙소로 지어졌다고 보는 의견도 있답니다. 대부분의 마드라사는 네 면에 피슈타크가 있는 구조이고 입구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의 하나밖에 없는 피슈타크 앞에 서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이것도 나중에 건축된 것이라니 숙소보다는 마드라사가 더 필요해서 완공 즈음에 개조했다고 해석할 만합니다.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에는 더 특이한 것도 있습니다. 피슈타크에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한 태양을 향해 두 마리의 새가 날아드는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묘사하지 않는 금기가 있는데 어찌 된 일일까요? 

17세기 초 샤이반왕조에서는 이 금기를 지키지 않는 풍조가 생겼나 봅니다. 같은 시기에 세워진 사마르칸트의 레지스탄 광장에 있는 쉬르다르 마드라사의 피슈타크에도 비슷한 동물 형상이 있습니다. 칸의 권력이 신을 넘보았던 걸까요? 발톱 안에 동물을 품고 있는, 고대 이란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무르그라는 불사조가 사람 얼굴 형상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대칭 구조!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의 피슈타크(왼쪽*). 나디르 디반베기 카나카. 상인들의 숙소였다. 지금은 도자기 박물관(오른쪽).



인공 호수 라비 하우즈      


나디르 디반베기 카나카와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 두 건물을 지으면서 연못도 팠습니다. 바로 라비 하우즈입니다. 연못 주변에는 뽕나무가 많습니다. 거칠고 뒤틀어진 생김새가 매우 오래된 고목임을 알 수 있는 것도 몇 그루 됩니다. 뽕나무와 물의 향연입니다. 


욥의 샘에 있던 전시물 중에 호자 가우쿠산 하우즈 사진이 있었습니다. 호자 가우쿠산 하우즈는 타키 사라폰에서 서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미나렛, 사원, 마드라사 모두 있는 호자 가우쿠산 복합단지의 중앙에 연못이 있습니다. 그 연못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모습을 찍은 19세기 말 흐릿한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라비 하우즈에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더러는 연못에 발을 담그기도 했을 테고, 더러는 주변 계단 뽕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기도 했겠지요.               

우리 일행도 라비 하우즈 주변을 차지한 식당에 앉았습니다. 식당 건물과 연못 사이에 차양을 친 곳에 앉았어요. 그늘진 탁자에 앉아 연못의 운치를 즐길 요량이었지요. 차양은 반투명한 플라스틱이 아니라 나무 구조물에 카펫을 얹은 모양입니다. 덕분에 실내로 들어간 듯 햇볕의 뜨거운 기운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차림표를 보면서 시원한 음료수를 고르고 있는데, 위에서 이슬비처럼 고운 물이 흩어져 내렸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지하도로 내려가는 경사로 난간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분수하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뿜어나오는 물을 맞으면 시원하기만 해서 더 맞고 싶은 분수 꼭지가 난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었지요. 여기 차양에도 비슷하게, 분수 꼭지가 아래를 향해 설치되어 있습니다. 뿌옇게 흩어지는 물방울이 얼굴에, 팔에 닿으니 시원하기 그지 없습니다.      


욥의 샘에 걸려 있던 호자 가우쿠산 하우즈 사진(왼쪽). 라비하우즈 서쪽의 카페. 여름엔 천장에서 물을 뿌려 시원하다(오른쪽).


메뉴판에는 과일주스가 없었습니다. 히바에서 마신 멜론이나 수박을 갈아 만든 시원한 주스가 없다니. 차선으로 택한 것은 에이드였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탁자에 놓인 에이드에는 뜻밖에도 향신료로 쓰이는 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잘게 잘려서. 나는 음식에 넣는 향신료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 베트남 쌀국숫집에서는 고수 많이 주세요라고 주문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호기 있게 벌컥 마셨는데, 도저히 넘길 수 있는 향이 아니었습니다. 손톱만 한 이파리들을 건져내기 시작했습니다. 음료수에 향신료를 넣을 것이라고는 예상 못 한 일행들도 모두 곤혹스럽게 에이드 잔만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참 넓습니다.     


나귀를 탄 호자 나스레딘     


연못을 따라 한 바퀴 걷기 시작했습니다. 큰 걸 건너 북쪽에 있는 쿠켈다시 마드라사를 거쳐 숙소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연못을 향해 쓰러질 듯 잎을 드리우고 있는 뽕나무는 이곳이 실크로드임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식당 건너편 쪽으로 오자 낙타 모형도 있습니다. 쌍봉낙타 세 마리가 일렬로 앉아있습니다. 새끼 낙타를 거느린 엄마 낙타도 있습니다. 비록 조형물이었지만 부하라의 갈색 낙타는 순식간에 나의 마음을 사막으로 태우고 가버렸습니다.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 앞에는 잔디밭에 커다란 나무들이 심겨 있습니다. 그 나무들 사이로 두 손을 치켜든 모양새가 범상치 않은 동상이 하나 보입니다. 13세기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지혜로운 해학을 상징하는 호자 나스레딘입니다. 그도 이슬람 신비주의라고 하는 수피즘 교도입니다. 수피들을 위한 숙소 앞에 기념하기 좋은 인물이지요. 고개를 왼쪽으로 꼰 귀가 얼굴만큼 긴 나귀는 뭔가 못마땅한 듯합니다. 나귀에 올라탄 호자 나스레딘은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붙인 채 웃음기 넘치는 얼굴 위로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맨발에 반쯤 벗겨진 신발에서 자유로움이 피어납니다. 풍자 정신의 상징이라더니 동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대범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는 당대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현자로 우리나라에도 호자 나스레딘의 일화가 담긴 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워낙 넓은 지역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인물이라 일화가 약간씩 다르지만, 아미르 티무르와 얽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 앞에 있는 13세기 이슬람 수피 현자 호자 나스레딘의 동상. 

아미르 티무르와 호자 나스레딘이 길에서 만났을 때, 아미르 티무르가 물었답니.


 “내가 이 지역을 맡고 나서는 페스트가 생기지 않았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호자 나스레딘은 대답했습니다. 


“신의 은총입니다. 신은 한 곳에 두 가지 불행을 동시에 보내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과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참’사람을 찾아다녔다는 키니코스학파의 그 사람이지요.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상추를 씻고 있는 것을 본 플라톤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디오니시오스 왕의 비위를 맞췄다면 이렇게 상추나 씻고 있지는 않을 텐데." 


디오게네스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나처럼 상추를 씻었더라면, 굳이 디오니시오스 왕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됐을 텐데."


풍자와 해학은 삶을 낯설게 보기에서 출발하지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기존 질서에 주눅 들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호자 나스레딘이 남긴 여러 가지 일화는 잘 모르지만, 저 표정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습니다. 




* (사진 출처) https://www.orientalarchitec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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