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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Dec 10. 2021

푸른 돔의 도시 사마르칸트 1

아프라시압 왕조의 흔적을 찾아서


사마르칸트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아프라시압 유적 터로 향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쨍쨍합니다. 버스 밖 풍경은 부하라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사마르칸트는 수도인 타슈켄트에 이어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입니다. 차도 많고 길 주변에 늘어선 낮은 건물이 깔끔합니다. 큰 도시의 냄새가 물씬 납니다. 

사마르칸트는 소그드인들이 사는 오아시스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도시국가라고 할 수 있지요. 소그드인들이 살았던 중앙아시아 지역을 소그디아나라고 하는데,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포함하는 매우 넓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소그드인은 누구일까요? 소그드는 스키타이라고도 불립니다. 주로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활동한, 세계사 교과서에서 최초의 유목민국가를 세웠다고 배웠던 바로 그 기마민족으로 스키타이입니다. 이란계 유목민족이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면서 형성되었다고 보지요.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족 스키타이     


유목민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정해진 경로에 따라 옮겨 다닙니다. 기후 때문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자연의 힘에 기대어 옮겨 다니며 목축을 하는 삶의 양식을 터득했겠지요. 그 결과 유목민들은 가축, 모피, 가죽 같은 것을 정주민에게 팔고 그들에게서 곡식과 옷감을 샀습니다. 정주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한곳에 정착해서 자급자족하며 삽니다. 그렇지만 유목민들은 교역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스키타이인들에게 말은 생명이었습니다. 기동력과 전투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초원지대와 시베리아를 누볐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공예품이나 장신구를 동방에 갖다 팔고, 알타이 지방의 황금과 중국의 비단을 서방에 팔았습니다. 교역은 교역으로 그치지 않고 문화도 옮깁니다. 그들이 다닌 길을 초원길이라고 부르지요. 실크로드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몽골,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 청동기 문화를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기원전 6세기경 스키타이의 청동기 문화가 전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단검, 말에게 씌우는 재갈, 허리띠를 죄는 동물 모양의 장식은 유목민답게 동물 모양을 본뜬 스키타이의 독특한 문화가 전해진 결과입니다. 낯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고대 문화에 영향을 끼친 스키타이의 땅이라니, 세상 좁다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소그드인 사브리나     


언제부턴가 소그드는 중앙아시아에 사는 스키타이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그드인인지 알아볼 능력은 없지만, 우리의 현지 가이드인 사브리나는 소그드인의 후예라고 합니다. 사브리나는 여기 사마르칸트가 고향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그드인과 말을 주고받으며 다니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이렇게 낯선 일이 훌쩍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바로 여행의 맛이겠지요. 

버스를 탄 지 별로 오래지 않아 창문 밖으로 낮은 담장 너머 폐허 같은 허연 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듬성듬성 관목이 초록빛을 내보이지만 공사하려고 파헤친 산등성이처럼 황량한 풍경입니다. 이윽고 버스가 우윳빛 웅장한 직육면체 건물 뒤쪽에 섰습니다. 아프라시압 박물관 뒤편의 주차장입니다. 박물관 반대편으로 키보다 훨씬 높게 시야를 막고 선 흰색 가벽에 문이 조금 열려 있습니다. 빼꼼히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열려 있습니다. 아프라시압 터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해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유적 터를 먼저 보고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겠지요. 문 안으로 들어서자 넓고 황량하고 메마른 구릉지가 펼쳐집니다. 이곳이 아프라시압 왕조가 있던 터입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아프로시압 유적(왼쪽). 아프라시압 박물관 뒤쪽으로 유적지 입구가 있다(오른쪽).

        

 혜초 스님과 현장 스님이 다녀간 도시 아프라시압     

 

소그디아나에는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작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흥망성쇠 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흡수되고 확정되었습니다. 거점도시 역할을 한 오아시스 도시에는 왕이 있고 작은 오아시스 도시에는 왕은 없고 성주나 군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아시스 도시국가에서는 관개농업도 했습니다. 산에서 녹은 눈을 지하수로로 끌어오는 거지요.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의 중심지로도 성장했습니다. 

소그드인의 황금기는 5세기에서 8세기라고 봅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소아시아로 이어지는 수많은 도로를 따라 시장을 건설하였습니다. 소그디아나를 중심으로 중국, 중앙아시아 초원, 몽골 곳곳에 퍼져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나갔습니다. 국제 무역에는 면직물, 대마, 금, 은, 구리, 무기와 갑옷,     향료, 모피, 카펫과 의류, 도자기, 유리와 도자기, 장식품, 준보석, 거울이 포함되었습니다. 7세기에는 양잠의 비밀도 터득하여 비단도 중국 실크를 대체하여 자신들의 실크도 수출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마르칸트는 소그드의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가 되었습니다.      


소그드인에 대해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중국의 것입니다. 5세기 넘어서 수나라, 당나라와 접촉한 기록이 있습니다. 수나라 역사를 기록한 『수서』에는 강국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나라와 접촉했던 기록은 『북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서』에는 강국의 사람들이 모두 눈이 깊고 코가 높으며 수염이 많다, 그들은 장사에 능하고 여러 민족이 장사하러 그 나라에 많이 모여든다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여러 민족이 장사하러 낙타를 몰고 다니는 길이 바로 실크로드였던 거지요. 『수서』와 『북서』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하면,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소그디아나에 존재했던 도시국가 중에 강국과 안국이 큰 세력이었지요. 강국은 사마르칸트, 안국은 부하라를 가리킵니다.      

아프라시압의 모습은 현장 스님이 기록한 『대당서역기』에도 나타납니다. 629년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길에 현장 스님은 이곳을 지나게 되지요. 주민이 많고 물자도 풍부하고 여러 나라의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하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8세기 초에는 혜초 스님이 『왕오천축국전』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불법을 구하러 인도에 다녀오는 길이었지요. 이곳 사람들이 불법을 모르고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있었다고, 절은 강국에만 하나 있었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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