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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Dec 26. 2021

푸른 돔의 도시 사마르칸트 6

레지스탄 광장의 세 마드라사


구르 아미르에서 나와 레기스탄 광장으로 걸어갑니다. 레기스탄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걷자 사마르칸트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레기스탄 광장과 세 개의 건물이 보입니다. 널따란 직사각형 광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건물은 틸랴 코리 마드라사, 오른편은 셰르도르 마드라사, 왼쪽이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입니다. 마드라사마다 양옆에 굴다스타를 거느린 거대한 피슈타크가 고요하게 우뚝 서 있습니다. 푸른빛 주름 잡힌 둥근 돔, 무카르나스로 한껏 모양을 낸 원기둥 모양의 굴다스타, 직육면체 피슈타크와 아치 곡선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기하학적인 조화는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길옆에 마련된, 네모난 전망대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내려갑니다. 저곳에 들어가려면 오른쪽으로 빙 둘러 매표소를 지나야 합니다. 셰르도르 마드라사 옆 벽을 끼고 걷다가 교역센터였다는 작은 돔을 이고 있는 육각형 건물을 지나니 매표소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가득 찬 매표소 앞을 지나 낮은 철문을 지나니 셰르도르 마드라사와 틸랴 코리 마드라사 사이로 들어서게 됩니다. 바닥은 어느새 대리석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레기스탄 광장의 세 마드라사. 왼쪽부터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우주를 상징하는 도형 문양), 틸랴 코리 마드라사(아라베스크 문양), 셰르도르 마드라사(사자 문양)이다.

                        

광장에는 공연이 있는지 무대 설치가 한창입니다. 거의 광장 전체 바닥에 판자를 깔아 조금 높였고 이쪽저쪽에 마이크와 의자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공연은 틀림없이 밤의 불빛 아래 펼쳐지겠지요. 몇 년 전에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보았던 야간 공연이 생각납니다. 가을마다 달빛 야행이라는 이름으로 야간 개장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야간조명이 켜진 전각들 사이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경회루 앞에 마련된 관객석에 앉았지요. 연못 건너에서 경회루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는데, 검은 물을 배경으로 조그만 배를 타고 흰 도포를 입은 인물이 소리를 하면서 나타난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했습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의 밤은 평소 알던 풍경을 신비한 곳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광장에 서서 마드라사 세 곳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마드라사들은 위치로도 구분되지만 피슈타크의 문양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의 피슈타크에는 별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주를 의미하는 것 같은 동심원을 품은 별십육각형과 그보다 작은 별팔각형, 별오각형이 규칙적으로 반복됩니다. 울르그 베그의 천문학 업적을 떠오르게 합니다. 틸랴 코리 마드라사는 노란 별팔각형이 양옆에 자리 잡고 그사이를 노랗고 파란 아라베스크 무늬가 넝쿨지듯 흐르고 있습니다. 피슈타크의 문양은 셰르도르 마드라사가 가장 독특합니다. 셰르도르라는 이름은 ‘사자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어린 사슴을 쫓는 사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사자라고 하는데, 호랑이에 더 가깝게 보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생명이 있는 것을 그리지 않게 되어 있는데 웬일일까요? 전하는 말에 따르면 자니드 왕조의 얄랑투쉬 바하두르 술탄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티무르 제국을 계승한 몽골의 후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사자를 그려 넣은 거지요. 몽골 제국의 궁궐에서는 코끼리, 사자, 말, 용과 같은 동물 형상의 금은 술통이 발견되었고 유적지에서는 이런 동물들을 흙으로 만든 미술품들도 발굴되었거든요.   

   

알라 글자 가득한 셰르도르 마드라사     


거대한 마드라사들이 ㄷ자를 만들고 있는 이곳 레기스탄을 사마르칸트의 중심지라고 하지요. 웅장함과 화려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건물 외벽은 비어있는 곳 하나 없이 문양으로 가득합니다. 쿠파체로 쓴 알라, 무함마드 외에는 읽지 못하지만, 편평한 외벽이든, 둥그런 외벽이든 쿠파체로 쓰여 있는 글자 대부분은 ‘알라’입니다. 글자를 모른다면 추상적인 디자인, 기하학적 디자인으로만 보일 겁니다. 멋진 디자인이 반복되면서 벽면을 가득 채웠다고 감탄할 겁니다. 


알라라는 글자가 가장 많이 새겨진 건물은 셰르도르 마드라사로 보입니다.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동물 문양을 새겨 넣었기 때문일까요? 나머지 벽면 전체는 오로지 글자입니다. 대개는 쿠파체가 아닌 화려한 서체를 사용하는 피슈타크를 감싸는 ㄷ자 영역까지 쿠파체의 알라로 가득합니다.      


부하라의 아르크에서도, 칼란 모스크에서도 알라, 무함마드 글자의 문양을 보긴 했지만, 이곳 사마르칸트는 그 규모가 다릅니다. 채색 타일로 단장한 건물들이 많이 복구되어 있어 눈 돌리는 곳마다 알라의 글자 문양이 보입니다.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 셰르도르 마드라사, 틸랴 코리 마드라사에서는 물론 아까 지나온 구르 아미르에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무슬림들이 얼마나 신을 찬양하는 사람들인지 저절로 이해되었습니다.      

셰르도르 마드라사 벽면을 도배한 알라 글자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의 알라 글자


벽면 가득한 알라 글자. 구르 아미르(왼쪽), 비비하눔 모스크(오른쪽)


셰르도르 마드라사로 들어서자 연주 소리가 들립니다. 안쪽 마당 그늘에 꽤 많은 사람이 저마다 악기를 들고 있습니다. 레기스탄 중앙 광장에 무대 설치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여기서 연습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마도 공연은 저녁때 하겠지요. 가까이 가서 보니 낯선 악기들도 꽤 보입니다. 

레기스탄의 야간 공연 규모는 경복궁보다는 베로나의 아레나에 비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베로나에서 야외 오페라를 보았지요. 콜로세움 비슷한 벽으로 둘러싸인 야외무대에서의 공연은 불빛과 흙벽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푹 빠지게 했었지요. 여기 레기스탄에도 야간 공연이 있는지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한참을 서서 들었습니다.


레기스탄 광장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셰르도르 마드라사 안마당에서 연습 중인 악단원들.


'수학자와 함께 걷는 실크로드'로 2023년에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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