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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1. 2021

목각 예술의 도시 히바 2

한여름의 털모자 / 호텔이 된 히바 칸국의 마드라사


한여름의 털모자     


서문으로 들어서자 온통 흙색과 푸른색뿐입니다. 비취색, 에메랄드색, 청녹색 어느 표현이 더 어울릴까요? 차가운 색감은 뜨겁고 건조한 날씨마저 식혀주는 듯합니다. 파란 하늘 아래 쭉 뻗은 길 오른편으로 흙빛의 건물들과 함께 그런 푸른 빛깔의 타일을 온몸에 휘감고 있는 거대한 원기둥, 칼타 미나렛이 웅장합니다. 왼편으로 완강하게 버티고 선 높은 흙벽 뒤쪽은 쿠나 아르크 궁전입니다. 사막 한복판 오아시스 도시답게 흙으로 건설된 도시임을 색깔로 분명히 알려줍니다.     


나지막하게 세워놓은 이찬 칼라 지도를 힐끗 보고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연달아 늘어선 길 속으로 들어섭니다. 하늘하늘한 스카프, 시원해 보이는 옷, 수놓은 네모난 가방, 히바의 건축물을 담은 동그랗고 네모난 유약을 발라 구운 채색 타일, 예쁜 빛깔의 자기 그릇들. 그 사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털로 된 모자였습니다. 길을 따라 가판대에 쭉 진열된 털복숭이 모자.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나 쓸법한 모자가 여기 40도를 넘는 한여름에 팔릴까요? 이런 모자를 쓰고 땀이 날 때 부채질을 하면 더 시원하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은 누가 했을까요. 털모자를 쓴 우즈벡인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손을 뻗어 만져보기조차 망설여집니다. 


서문으로 들어가면 가판대에 기념품이 즐비하다. 왼쪽부터 채색타일, 털복숭이 모자, 가방과 옷


중앙아시아의 신기한 물건들을 보며 몇 걸음 걷다 보니 오른쪽으로 토끼굴 같은 아치 모양 입구가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넓적한 돌이 깔린 길의 양쪽 턱에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가볍게 배낭을 메고 선글라스를 낀 모양새가 다들 먼 곳에서 와서 고대 도시의 그늘을 즐기는 중인가 봅니다. 이 중에 누군가는 예전에는 이슬람교도들이 공부하던 마드라사였고 지금은 호텔인 이곳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에 묵을 수도 있겠지요. 그때와 다른 점은 쿠란을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뿐일까요? 아니, 방마다 문 위에 매달려 있는 나무막대를 사선으로 짜 맞춘 직육면체 상자도 다릅니다. 아마도 저 안에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식혀줄 실외기가 들어있을 겁니다. 


호텔이 된 히바 칸국의 마드라사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를 보려면 고개를 한껏 젖혀야 합니다. 일행들은 누가 누가 고개를 많이 젖히나 시합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면 얼른 잡아 주면서 쨍한 햇살 같은 웃음을 터트렸겠지요. 건물이 크고 웅장합니다.     

직육면체 형태로 생긴 이 거대한 출입구는 피슈타크라고 합니다. 피슈타크가 둘러싸고 있는 아치처럼 둥근 안쪽 구조물은 이완이라고 부르는데, 삼면이 벽이고 한 면은 트여 있는 직사각형 공간을 말하지요. 대게 위쪽은 아치 모양으로, 마치 양파를 세로로 자른 것처럼 둥글면서도 조금은 뾰족하게 파여 있고 아래쪽에는 출입구가 있습니다. 이완은 3세기 무렵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던 파르티아 제국에서 시작됐답니다. 초기 이완은 지붕이 아치 모양이었는데, 페르시아 사산왕조부터 더 웅장하고 화려한 효과를 위하여 이완 주위를 직육면체로 감싼 피슈타크 형태가 널리 퍼져나갔다고 하지요.   

   

무함마드 아민칸 마드라사의 피슈타크 정면에는 모서리를 따라 ㄷ자로, 또 이완의 아치를 따라 곡선으로 푸른 빛깔 타일들이 문양을 정교하게 반복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피슈타크 위쪽에는 마치 제목처럼 가로로 길게 아랍어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읽을 수는 없지만 쿠란의 구절이겠지요. 쿠란 구절을 향해 푸른 빛 채색 타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패턴과 식물 무늬가 아치 곡선을 타고 상승합니다.  


무함마드 아민칸 마드라사의 피슈타크. 

    

호텔로 사용되고 있는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 입구와 안쪽 풍경


마드라사는 대부분 ㅁ자 모양입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이층으로 높게 짓고 안쪽에 중정을 갖춘 모양입니다. ㅁ자의 한쪽은 강의실, 나머지 세 방향의 건물은 기숙사로 사용하였다는데, 마드라사 건물 자체는 마치 프랙털 같습니다. 프랙털이 뭐냐고요? 크고 작은 닮은 모양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구조이지요. 피슈타크에도 작은 이완이 여러 개 배치되어 있고, ㅁ자 건물의 일층, 이층도 이완이 늘어서며 완성되고, ㅁ자 건물의 네 방향마다 중앙에 닮은 꼴인 이완이 하나씩 높게 솟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이완들이 마드라사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마드라사 전체가 이완을 복제하며 프랙털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에는 130개의 방이 있고 260명 정도의 학생이 동시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먼 곳에서 온 학생들도 여기에 머물면서 아랍어 문법, 논리, 이슬람 율법, 신학, 법학 등을 배웠습니다. 마드라사의 교육은 기부받은 재원을 이용하여 무상으로 이루어졌고, 학생들은 공부를 끝마칠 때까지 기간 제한 없이 머물 수 있었답니다. 이런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우선 쿠란이라는 말의 뜻이 바로 읽기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알라의 첫 계시가 ‘읽으라’는 말이었으니 무지로부터의 탈피가 이슬람교도들의 첫 번째 과제였어요. 그래서 마드라사는 종교 활동의 거점일 뿐만 아니라 문화 전수와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학문에 정진하는 것은 신의 뜻을 알기 위한 고귀하고 신성한 일이니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했던 거지요.     


호텔 투숙객인 듯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곳의 유적은 바라만 보는 곳이 아니라 지금도 사용하는 곳입니다. 일부는 호텔로도 사용되고 박물관으로도 사용됩니다. 사실 박물관이라고 해야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같이 큰 규모는 아닙니다. 마드라사나 궁전이 하나의 주제로 박물관을 소박하게 운영합니다. 코지 칼론 마드라사는 음악사 박물관, 압둘라칸 마드라사는 자연사 박물관, 세르고지칸 마드라사는 의약사 박물관, 쿠나 아르크 궁전은 고대 호레즘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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