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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1. 2021

목각 예술의 도시 히바 1

지붕 없는 박물관_이찬 칼라 / 호레즘에서 찾는 알 콰리즈미의 흔적


지붕 없는 박물관, 이찬 칼라   

  

흙빛 성벽이 히바의 파란 하늘 아래 길게 누워있습니다. 완만하게 누운 성벽 위로 가파르게 서 있는 성벽, 틀림없이 몹시 두껍게 지어졌을 성벽이 끝이 보이지 않게 깁니다. 그렇지만 위압적이지는 않습니다. 성벽과 하늘이 맞닿는 선이 대바늘 뜨개질을 하다 바늘을 쭉 뺐을 때 동글동글 반복되는 코처럼 정겹게 보인 탓일까요? 직사각형 성문은 굴다스타라고 부르는, 둥근 지붕을 쓴 두 개의 원기둥 망루를 사이에 두고 열려 있습니다. 


이찬 칼라 서문과 굴다스타(왼쪽).  완만하고 가파르게 두 단계로 되어 있는 성벽. 규칙적으로 둥근 옹성이 배치되어 있다(오른쪽).


여기는 이찬 칼라로 들어가는 서문입니다. 히바의 유적지는 두 개의 성으로 둘러싼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내성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이찬 칼라, 내성과 외성 사이 지역을 디샨 칼라라고 부릅니다. 히바의 중심부에서 살짝 남쪽에 있습니다. 출토된 유물로 추정하건대, 성벽을 쌓기 시작한 건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랍니다. 이찬 칼라는 도시의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이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디샨 칼라는 이찬 칼라에 비해 훨씬 넓습니다. 외성은 드문드문 남아 있고 유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고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많답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찬 칼라는 내성으로 둘러싸인 중앙아시아 히바의 고대 도시이다. 가장 오래된 동문은 3천년된 문이고 지금은 서문이 정문이다.


이제 저 문으로 들어가면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 히바의 성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보존이 잘되어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부르는 이찬 칼라.


호레즘에서 찾는 알 콰리즈미의 흔적     


이찬 칼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볼 게 있습니다. 저기 어디쯤 알 콰리즈미의 동상이 있을 텐데요. 미리 보아둔 사진에는 알 콰리즈미가 앉아서 두루마리를 내려다보는 동상이 있었습니다. 알 콰리즈미는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활동하였는데, 아랍 세계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일컬어집니다.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이나 세계사 교과서에서 이름을 보았을 겁니다. 설령 알 콰리즈미는 몰라도 알고리즘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알고리즘은 알 콰리즈미라는 이름의 라틴어 버전입니다. 11세기, 12세기에 아랍 세계의 학문적 성과를 유럽에서 라틴어로 번역할 때 아랍 학자들의 이름도 라틴어 소리로 옮겨 적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리가 조금씩 바뀌게 되었지요. 그는 수학만이 아니라 천문학, 지리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지만, 성안으로 들어갈 마음이 급하니 한 가지만 이야기할게요.      


알 콰리즈미는 아바스 왕조의 궁전으로 인도의 사절단이 가져온 책을 보고 『인도 숫자 계산법』이라는 책을 썼어요. 825년의 일입니다. 이 책은 12세기에 『알고리즘의 인도 숫자 계산법』이라고 라틴어로 번역되었는데, 이후 저자의 이름이 계산 방법 자체로 굳어졌어요. 알고리즘, 아니 알 콰리즈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인도 숫자를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인도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으로. 


페르시아 수학자 알 콰리즈미. 1983년 구 소련 우표(왼쪽). 1857년에 라틴어로 번역된 알 콰리즈미의 책 『알고리즘의 인도 숫자 계산법』(오른쪽).


알 콰리즈미가 태어났을 때는 이슬람 제국이 생겨나면서 급격한 팽창을 한 지 불과 백여 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세 개의 대륙으로 뻗어나간 아랍인들은 엎드려 절할 메카 방향도 알아야 했고 하루 다섯 번 기도드릴 시간도 계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늘어난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까다로운 계산도 해야 했고요. 그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인도인들의 위치적 기수법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0을 포함한 열 개의 기호가 자리에 따라 값이 달라지면서 어떤 수든 표기할 수 있다니. 지금의 컴퓨터만큼이나 획기적인 발견이었을 거예요.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그렇게 놀라운 거냐고요? 놀랍다마다요. 우리 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어요. 우리 말로 수를 셀 때는 일, 십, 백, 천, 만으로 한 자리씩 올라가는데, 천만 다음에는 억, 천억 다음에는 조, 천조 다음에는 경, 이런 식으로 네 자리마다 새로운 이름이 붙습니다. 수학이 발달했던 그리스도 그렇고 로마도 마찬가지였어요. 대부분의 숫자 표기 방식이 이런 식이었어요. 물론 계산하기도 불편해서 주판이나 산가지와 같이 계산 도구는 따로 있고 숫자는 기록할 때만 쓰였지요. 그런데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열 개의 기호로 무한히 큰 수, 무한히 작은 수 모두를 표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수였어요. 더구나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필산도 할 수 있다니! 알 콰리즈미가 『인도 숫자 계산법』을 써서 이 표기법이 널리 퍼지도록 한 일은 인류 역사상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 거지요.      


알 콰리즈미는 알 호레즈미로도 읽습니다. 호레즘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호레즘은 히바가 속해있는 지역입니다. 알 호레즈미가 태어난 이곳에서 그를 만나리라 기대했습니다. 두리번거리다가 주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알 콰리즈미의 동상이 어디 있나요?"


별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알아 왔습니다. 저쪽에 있었는데 우르겐치로 옮겨갔답니다. 정비 작업이 끝나면 다시 옮겨온다고. 이런 사실을 몰랐으니 우르겐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알 콰리즈미의 동상을 찾아 나설 수는 없었던 터. 여행은 그렇게 삐걱거리기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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