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호영 Aug 21. 2021

흙빛 고대 도시 토프락 칼라 3

호레즘이 낳은 석학 알 비루니 / 히바


호레즘이 낳은 석학 알 비루니     


토프락 칼라의 영광은 305년에 끝났습니다. 305년에 아프리그왕조가 세워지면서 수도는 카트Kath로 바뀌었습니다. 카트는 우르겐치에서 떠나서 아무다리야강을 건넜을 때 지나온 도시입니다. 그런데, 지도에는 카트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알 비루니 Al Biruni를 기념하여 1957년에 ‘비루니’시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알 비루니는 누구일까요? 호레즘에서 973년에 태어난, 이븐 시나(이븐 시나에 대해서는 그의 고향 부하라에서 알아보지요)와 함께 이슬람 황금기를 대표하는 석학이니,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겁니다. 그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방면에 걸쳐 놀라운 업적을 남겼는데, 지구가 움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뛰어난, 열려 있는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알 비루니(973년-1050년무렵). 우르겐치에서 토프락 칼라로 가는 길의 아무다리야강 북쪽에 비루니 시가 있다.


알 비루니는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인도에 원정갈 때 동행했습니다. 몇 년 동안 인도에 머물며 인도를 연구하여 『알 비루니의 인도』를 썼습니다. 이 책에서 인도 천문학에 대해 논평하면서 ‘지구가 회전한다고 해도 천문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즉 지구가 회전하든 태양이 회전하든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 『(천문학에 관한) 마수드의 캐논』(가즈니 왕조 마수드 왕의 천문학에 대한 기준 또는 정전이라는 뜻입니다)이라는 문헌에서도 움직이는 것을 태양으로 택하든 지구로 택하든 수학적으로는 똑같다고 했습니다. 


알 비루니의 책 『(천문학에 관한) 마수드의 캐논』표지(왼쪽)와 행성 운동을 설명하는 페이지(오른쪽)


간단히 비유하자면 이런 말일 거예요. 기차를 타고 갈 때, 기차에 탄 사람은 기차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풍경이 지나가고 있다고 느끼지 않나요? 만약 기차가 남쪽으로 달리고 있다면 풍경이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고 느끼겠지요. 똑같은 속력으로요. 어렸을 때 기차를 타면 전봇대가 휙휙 지나간다고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알 비루니의 얘기는 바로 그겁니다. 제자리에 고정된 지구에 의해서도 또는 움직이는 지구에 의해서도 같은 이론이 설명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이슬람 천문학은 계속 발전하여 15세기에 지구를 중심에 둔 정교한 우주 모형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 이론은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꾸기만 하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요? 모두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시대에 이론적인 연구로 이런 생각을 하다니요. 다만, 알 비루니는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불가능하게 하는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기차로 생각하면 어느 기차가 움직였든 문제가 없지만, 지구와 태양일 때는 다릅니다. 우리가 올라타고 있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지구가 움직이면 사람이나 나무나 지구상의 모든 것이 휩쓸려 날아가 버려 생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알 비루니가 태양이 회전한다는 이론을 택할 것인가 지구가 회전한다는 이론을 택할 것인가 사이에서 어느 이론을 택할 것인가는 물리적인 문제라고 말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몇백 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지요.      


알 비루니는 『호레즘의 역사』라는 책도 남겼습니다. 토프락 칼라와 주변 칼라들은 물론, 아프리그 왕조에 대한 문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유를 알 비루니는 이 책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 장군이 군사 원정대와 함께 호레즘에 파견되어 두 번이나 정복했을 때, 그는 호레즘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과 호레즘의 유산, 역사 및 문화를 아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죽였습니다. 그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책을 버리고 태웠습니다. 글을 전혀 모르는 문맹만 남을 때까지. 그래서 그 지역의 역사는 대부분 잊혔습니다.      


호레즘은 712년에 아랍 우마이야 왕조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아프리그 왕조에 대한 자료는 이때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이슬람화되기 이전의 아프리그 왕조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알 비루니가 남긴 문헌에 의해서입니다. 

     

호레즘의 중심은 비루니 시, 아니 카트에서 다시 구르간즈로 바뀌는데, 구르간즈는 지금의 우르겐치를 말합니다. 한양을 서울이라고 부르듯이 도시의 이름은 가끔 바뀌기도 하지요. 구르간즈는 이슬람교를 앞세운 아랍이 침략한 이후부터 17세기까지 호레즘의 중심이었습니다. 호레즘 제국을 거쳐 몽골제국의 지배 기간에도, 히바 칸국이 세워지면서도 호레즘의 중심은 구르간즈였습니다. 호레즘의 중심이 구르겐즈에서 히바로 바뀐 것은 16세기 말 아무다리야강이 강줄기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구르겐즈에 물이 부족해지자 1619년, 히바 칸국은 수도를 더 남쪽인 히바로 옮겼습니다. 히바는 오랫동안 카라쿰 사막의 출입구 노릇을 하며 실크로드 경유지로 번성했습니다. 히바는 1925년까지 히바 칸국의 수도로서, 호레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의 수도로서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오늘은 히바에 가서 자려고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각 예술의 도시 히바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