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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1. 2021

흙빛 고대 도시 토프락 칼라 2

토프락 칼라의 시간 여행자


토프락 칼라의 시간 여행자 


흔히 우리는 사차원의 공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공간을 나타내는 삼차원에 시간의 축을 하나 보태면 사차원이지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경복궁 근정전의 팔작지붕 앞에 서면 구슬 달린 면류관을 쓰고 그곳에서 즉위식을 올리던 세종대왕을 볼 수 있을까요? 지구 위에서 경복궁이라는 삼차원 좌표는 그대로인데, 시간까지 넣어 사차원으로 생각하면, 세종대왕이 즉위식을 올리던 궁정은 몇백 년 전의 궁정이고 내가 서 있는 궁정은 지금의 궁정입니다. 두 곳은 사차원으로는 다른 곳입니다. 우리는 그 다름을 별로 신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오면 공간마저 달라져서 시간의 축이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척박한 땅에 이천 년 전이라는 시간의 좌표를 하나 더 넣어봅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건물도 사람도 많습니다. 사제들은 사원에서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필경사들은 가죽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직물을 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전을 주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폐허를 여행하려면 시간 여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토프락 칼라에 지금 남아 있는 터는 직사각형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성 안쪽 중에 북서쪽 높은 지대입니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15m 정도 흙을 높게 다져 궁전터로 삼은 곳입니다. 북서쪽, 북동쪽 양쪽 끝으로 불쑥 올라와 있는 저 무너진 흙더미들은 탑입니다. 탑처럼 보이지 않는다고요? 도저히 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긴 합니다. 그렇지만 탑이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흙무더기로나마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에 감탄이 나옵니다. 톨스토프가 본 탑이 바로 이것입니다. 남쪽으로는 형체가 더 무너진 흙더미가 있습니다. 남쪽 탑입니다. 지금도 다른 곳보다는 높지만, 역시 탑이었다고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간 여행자는 지그시 상상의 눈을 뜹니다. 궁전터 서쪽에서 출발하여 시계 방향으로 방향 잡습니다. 두꺼운 흙담으로 구획 지어진 흙더미 탐사를 시작합니다.     


서쪽 작은 방은 수사슴실이라고 부르는 공간입니다. 발굴 당시 벽면에 덧댄 패널에 수사슴 그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지요. 수사슴 위에는 사자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신화적 존재인 그리핀이 그려 있고 양쪽으로는 나무 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햇볕 뜨거운 담장 위에 서서 아래쪽 흙벽에 수사슴을 그려 넣고 그리핀도 그려 넣어봅니다. 이들에게 수사슴과 그리핀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수사슴실 옆의 넓은 방은 가면 무도실입니다. 벽마다 춤을 추는 인물들의 그림이 실물 크기로 연이어 붙어 있었답니다. 폐허에서 발견된 파편에서 그림의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가면 무도실이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춤추고 즐기는 사람들끼리의 사교의 장은 아니었고 호레즘의 여신인 아나히타를 위한 성소로 보인답니다.


궁전 지대의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 광경. 정사각형 궁전 터가 있고 그 바깥으로 탑이 있었다.


북서쪽 탑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릅니다. 흙을 다져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몇 미터 더 높아졌을 뿐인데,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합니다. 저 너머 북쪽으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토프락 칼라 2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궁전과 사원이 있는 위성도시라고나 할까요. 사실상 토프락 칼라는 토프락 칼라 2를 포함해서 성벽 바깥 지역도 포함하는 넓은 도시였습니다.      


북서탑과 북동탑 사이에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 곳은 왕의 공간입니다. 호레즘에서는 왕을 샤라고 불렀으니 샤의 집무실이지요.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가운데 세 개의 아치로 열려 있는 실내에 샤의 옥좌가 있었다고 합니다. 옥좌 좌우로는 기둥으로 지붕을 받쳐 실내인 듯 실외인 듯 열린 공간인 주랑을 만들어냈습니다. 양쪽으로 늘어선 주랑 가운데에 큰 안뜰이 만들어집니다. 그 구조가 우리의 궁전과 비슷합니다. 창덕궁의 인정전을 생각하면, 인정전 양옆으로 늘어선 행각이 그 가운데에 마당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같은 거지요. 어디에서건 왕의 권위는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에 의해서 만들어지나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곳은 아마도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성소였을 겁니다. 가운데는 햇빛이 들어오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뜰이 있고 한쪽에는 불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ㄷ자 벽을 따라 낮은 단이 설치되어 있고 벽들은 칸칸이 나뉘어 칸마다 커다란 점토 좌상이 올려져 있었답니다. 톨스토프는 점토 좌상이 왕실의 조상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중앙에 있는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을 여신이라고 추측하여 마치 판테온처럼 호레즘의 신들을 묘사한 것이라도 했습니다. 사당인지 판테온인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뚜렷한 저 첨두아치 구멍은 틀림없이 창문이었을 겁니다.


담장을 따라 걷는 길은 폭이 좁은 곳은 1미터 남짓, 미끄러워 보입니다. 모서리가 둥글게 깎인 벽 위를 걸어가는 일이 조심스럽습니다. 짙은 선글라스를 낀 관광객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발을 뗍니다. 이곳은 승리의 방입니다. 승리와 행운을 상징하는 두 여신 사이에 왕이 있는 모양의 부조가 반복되는 장소입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소는 실물 크기로 숫양의 뿔에 둘러싸인 전사의 부조가 있는 방입니다. 아마도 승리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부조인 듯합니다.


전사의 실 남쪽 공간. 멀리 북동탑이 보인다(왼쪽). 발굴 이후 수십 년에 걸친 풍화로 둥글게 깎인 벽과 문의 흔적만 남아 있다(오른쪽).

어느새 한 바퀴 돌아서 궁전터의 남쪽까지 왔습니다. 남쪽 탑 너머로는 황량한 초원만 보입니다. 이곳 궁전터의 30배 정도로 훨씬 넓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거주지는 흔적도 없습니다. 또다시 시간 여행자가 되어 보렵니다.  

    

궁전 바로 앞에는 불의 사원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믿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의 예식을 지냈습니다. 예식에서 불은 소중한 상징이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정화하는 도구였기 때문이지요. 불의 사원 바깥쪽으로는 주로 주민들의 장소입니다. 2,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측한답니다.


토프락 칼라. 북서쪽 높은 지대의 궁전 터(작은 사진. 1950년)가 관람 지역이다. 그 바깥에 있었던 거주지의 흔적은 없다.


토프락 칼라에서는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도자기, 양모, 실크 직물, 유리구슬 목걸이, 금으로 만든 장신구 등 생활용품과 장신구와 미술품 등. 통치자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도 발견되었습니다. 목판과 가죽에 쓴 아람어 문서들도 발견되었습니다. 


아람어가 뭐냐고요? 고대 중동지역에서 널리 쓰던 언어이지요.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 흩어져 살았던 아람 사람들이 쓰던 언어인데, 기원전 8세기경 앗시리아에 정복당하면서도 아람어는 살아남았어요. 전쟁에 이긴 앗시리아의 언어인 아카드어는 사라지고 피지배민족의 언어인 아람어가 널리 쓰이게 된 거지요. 아람어는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등을 거치면서 국제적인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예수도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로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7세기에 이슬람이 득세하면서 아랍어가 국제어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천년 정도 널리 사용된 언어랍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토프락 칼라에서 발견된 아람어 문서 중에는 식료품의 배달, 수령 등에 대한 문서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치면 207년, 231년, 232년이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세 개 문서도 발견되었지요. 지금은 메마른 초원인 저곳에 집도 있었고, 청동, 도자기, 직물, 무기 제조 등을 담당하는 주조소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메마른 폐허 위로 활기 넘치는 고대 도시가 겹칩니다.      


토프락 칼라를 둘러보며 마치 증강현실처럼 소환했던 고대 도시의 모습을 하나씩 꺼나갑니다. 남쪽 탑 너머의 광활한 주민들의 장소가 흐릿해집니다. 북서탑, 북동탑도 다시 허물어지고 궁전도 허물어져 터만 남았습니다. 발을 돌려 토프락 칼라를 내려옵니다. 길 저편에 관광객을 위한 것인 듯 여러 개의 유르트가 보입니다. 미리 알았으면 저곳에서 하룻밤 머물며 사막의 밤을 즐길 수 있었을까요? 여행은 누리지 못한 일정에 대한 아쉬움으로 채워질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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