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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1. 2021

흙빛 고대 도시 토프락 칼라 1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치에 도착하다 / 흥미로울 게 없는 요새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치에 도착하다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를 탄 지 1시간 40분, 우르겐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은 우르겐치 북쪽 변두리에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더 북쪽으로 갑니다. 첫 목적지는 1세기 아니면 2세기에 지어졌다고 짐작하는 토프락 칼라, 호레즘의 고대 도시입니다.      


이곳으로 떠나기 전에 모니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돌리면서, 확대하고 축소하면서 호레즘을 살펴보았지요. 호레즘은 중앙아시아 서쪽 지역입니다.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하여 굽이굽이 먼 길을 흘러온 아무다리야강이 만든 삼각주에 넓게 자리 잡은 곳이지요. 북쪽으로는 아랄해, 동쪽으로는 키질쿰 사막, 남쪽으로는 카라쿰 사막이 있는 거대한 오아시스예요. 키질쿰 사막은 한반도보다 넓고, 카라쿰 사막은 더 넓어요. 어마어마하게 넓은 사막 중간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아시스들이 있습니다. 

오아시스라고 하면 나무 몇 그루 있는 작은 호수만 한 줄 알았는데, 여기 오아시스들은 우리나라 도시만큼 큽니다. 강화도 굽이진 길을 걸을 때, 섬에 있는 건지 육지에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되었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오아시스인지 그냥 내륙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호레즘은 태양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메마른 태양의 땅이지만 삼각주가 만든 풍요로운 오아시스에 자리한 지역이라 일찍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했답니다. 약 200만 년 전 구석기 시대의 유물도 발견되었다니 유구한 역사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못지않습니다.      


십여 분도 안 가서 창문 밖에 바로 그 아무다리야강이 보입니다. 강이 얕은지 물이 깨끗한지, 강바닥의 모래가 보입니다. 잔잔한 물빛 사이로 군데군데 모래톱이 올라와 있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던 홍천강처럼 넉넉해 보입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아무다리야강은 사막에서는 모래 밑으로 흐르고 물길도 자주 바꾸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강입니다. 아무다리야강의 아랍어 이름은 자이 혼, 즉 미친 강입니다. 굽이치며 흐르다가 모래 밑으로 사라지고, 어느 사이에 나타나서 넘실대며 물길을 바꿔 버리는 아무다리야강! 아랍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원천이자 혼돈이었나 봅니다.      


창문 밖으로는 키 작은 풀들만 삐죽삐죽 나 있는 누런 초원이 이어집니다. 우르겐치에서 토프락 칼라까지는 오아시스 지역입니다. 위성 사진에서 보면 주변의 황톳빛 사막과는 다릅니다. 어두운 녹색의 오아시스 지역 끄트머리에 토프락 칼라가 있습니다. 스텝 기후답게 번듯한 나무보다는 키 작은 관목과 듬성듬성 나 있는 풀들만 창문 밖으로 흘러갑니다.          


토프락 칼라로 가는 길. 관목만 듬성듬성하다.


어릴 적 마당에서 벌어지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가끔 아버지는 가위처럼 생긴 수동 이발기로 보자기를 두르고 앉은 오빠의 머리를 밀었습니다. 엄지손가락은 그대로 있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재깍재깍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머리 주변부에서 정수리 쪽으로 밀고 올라가길 반복합니다. 어느 순간 아악, 하는 오빠의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머리 한 번 밀 때마다 서너 번은 이발기에 머리카락을 뜯겼지요. 풀들도 그렇게 뜯겨나간 듯, 듬성듬성합니다.      


흥미로울 게 없는 요새     


그런 풍경에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토프락 칼라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동네 뒷산같이 낮은 언덕이 보입니다. 민둥민둥합니다. 토프락은 흙, 칼라는 도시를 뜻한다더니 진정한 흙의 도시인가 봅니다. 하긴, 사막에서 흙 말고 어떤 건축 자재를 찾을 수 있었을까요.          


토프락 칼라 궁전 터로 올라가는 길(왼쪽). 토프락 칼라 궁전 터 북서쪽 전경(오른쪽)

  

호레즘에는 토프락 칼라를 비롯한 칼라라고 이름 붙은 발굴된 터가 많이 있습니다. 토프락 칼라 부근에도 십여 개 있습니다. 아야즈 칼라, 쿠왓 칼라 ……. 모두 사막 위에 모래를 쌓아 주변보다 높게 하고 성으로 둘레를 막아 도시를 세웠습니다. 호레즘에서 작은 도시국가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제국을 이룬 때는 3세기 무렵이라고 합니다. 이때 토프락 칼라를 수도로 삼아 제국이 출발했다는 주장도 있고 토프락 칼라는 왕실의 계절 거주지였을 뿐, 수도는 악사잔 칼라(카자클리 이아드칸)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모래 밑에 묻혀 끝내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고대의 진흙 도시로 천천히 걸어 올라갑니다.      

걸어 올라간 곳은 토프락 칼라의 북서쪽 높은 지대에 있었던 궁전터입니다. 터는 어찌 보면 집을 짓다 내버려 둔 곳 같습니다. 흙벽만 있습니다. 둥글게 풍화된 흙벽들이 ㄱ자, ㅁ자, ㅂ자로 공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 버려졌던 이곳은 바람이 불고 또 불던 어느 날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겠지요. 고고학자들이 삽으로 파내고 붓으로 털며 옛 모습을 복원했을 텐데, 그들이 떠난 후에 본격적인 풍화가 시작되었을 겁니다. 

지붕이 사라진 흙벽 위를 걷습니다. 저 아래 구덩이처럼 보이는 곳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던 땅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저 아래 땅과 이곳 벽 위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며 고대의 흔적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을 겁니다. 시간에 따라 사람들이 딛고 선 위치가 다릅니다.      


세르게이 톨스토프는 그의 저서 『고대 호레즘 문명의 발자취를 따라』에서 그가 토프락 칼라를 처음 만났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1938년 어느 맑은 10월 저녁, 우리 소규모 탐사대는 아야즈 칼라의 쿠샨 요새 성벽 위에 서 있었다. 남쪽과 동쪽으로 모래와 염분 토양의 부드러운 타키르스 평원 너머 보이는 익숙한 폐허의 실루엣과 함께 멀리 서쪽 수평선 위에 세 개의 탑으로 된 성채의 웅장한 윤곽이 보였다. 거대한 폐허의 윤곽이다. “저게 무슨 요새지요?” 나는 우리의 가이드에게 물었다. “토프락 칼라라고 해요. 거기엔 흥미로운 게 없어요.”라고 그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다음 날 우리는 ‘흥미로울 게 없는 요새’에 갔다.     


토박이 원주민에게는 흥미로운 것 없던 흙더미가 고고학자의 눈에는 감춰진 역사를 드러낼 흥미로운 흙더미였습니다. 톨스토프가 설립한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호레즘 탐사대는 1937년부터 소련이 해체된 1991년까지 중앙아시아를 탐험하며 1천여 개의 고고학 유적지를 발견하고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토르락 칼라에 대한 탐사 결과가 1981년 『토프락 칼라 도시』 12권, 1984년 『토프락 칼라』 14권으로 모스크바에서 출판되었다니, 또 다른 보고서는 얼마나 많았을까요. 무릎에 펴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토프락 칼라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은 이들 덕분이지만, 사실 꼭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소련 시절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발굴에만 관심이 있었던 듯합니다. 발굴이 끝나면 아무런 보호 조치도 하지 않고 떠났다고 합니다. 토프락 칼라도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심하게 침식되었답니다. 석굴암에 콘크리트 붓던 시절이었으니 남 탓할 일도 아니지만, 보존에 대한 계획이 설 때까지 발굴을 미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물론 발굴이 급한 지역도 있습니다. 시베리아처럼.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은 땅을 팔 수 있는 여름철에만 발굴해왔는데, 그곳의 무덤은 의복은 물론 인간의 피부까지도 그대로 보존될 정도로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땅 밑 얼음이 녹고 있어 아직 발굴되지 않은 것들이 그대로 썩어 사라지는 처지라고. 이런 곳은 발굴이 시급하지만 바싹 마른 사막 한가운데 진흙 도시들은 인간을 기다려줄 수 있을 텐데, 사라진 것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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