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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2. 2021

목각 예술의도시 히바 3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와 칼타 미나렛



높게, 거대하게! 칼타 미나렛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마드라사라고 합니다. 히바 칸국의 49대 칸이었던 무하마드 아민칸이 가장 큰 마드라사를 지으라고 했다지요. 19세기 초 히바 칸국이 강성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무하마드 아민칸은 곧이어 이 마드라사 바로 옆에 가장 높은 미나렛도 짓기 시작했습니다. 1851년의 일이지요. 400 킬로미터나 떨어진 부하라 칸국을 볼 수 있을 만큼 높게 지으려고 했답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보려면 미나렛을 얼마나 높게 지어야 할까요? 얼추 계산해도 수 킬로미터는 되어야 할 겁니다.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63빌딩과 롯데월드타워의 높이가 250미터 정도이니 높이를 킬로미터로 재야 하는 탑을 짓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설령 엄청나게 높은 미나렛을 짓더라도 공기의 방해 때문에 보일 리가 없잖아요. 어떤 물체가 점점 멀어질수록 잘 안 보이는 건 눈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공기 때문에 흐릿해지기 때문이니까요. 멀리 있는 산은 가까이 있는 산보다 색이 탁해 보이지요.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이 사실을 적용해서 배경을 흐릿하게 그렸지요. 그래도 미심쩍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직선거리가 3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세요. 서울에 얼마나 높은 빌딩을 지으면 부산이 보일까요?     


히바 칸국은 이웃인 부하라 칸국과는 몇 차례나 전쟁을 벌인 사이였어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사이였던 거지요. 그러나 칸이 죽으면서 칼타 미나넷 건설은 중단되었어요. 28m 높이에서. 그래서인지 두께가 굉장합니다. 다른 첨탑에 비하면 탑이 아니라 둔중한 빌딩 같아요.    


칼타 미나렛의 변주되는 무늬     


칼타 미나렛의 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다른 첨탑들은 중간부터 채색 타일을 붙여 모양을 냈지만, 칼타 미나렛은 바닥부터 채색 타일을 붙여 전체가 푸르게 빛납니다. 마치 거대한 도자기를 세워놓은 듯합니다. 언뜻 보면 무늬가 다른 여러 층의 원형 띠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용된 타일은 모두 가로로 긴 직사각형 한 종류입니다. 색깔만 다릅니다. 기단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닥 쪽은 푸른색 한가지 타일만 붙였고, 몸통 부분은 색깔이 다른 타일들을 붙여 무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몸통 부분을 네 개의 원형 띠로 구분해볼까요? 첫 번째 띠를 칼타 무하마드 아민칸 마드라사와 이어지는 구름다리와 연결된 원형 띠라고 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차례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띠라고 합시다. 네 개의 띠의 무늬를 비교하면 다른 듯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볼게요.      


칼타 미나렛. 민무늬의 푸른빛 기단과 그 위로 네 단계의 띠로 치장한 미완성의 첨탑이다.

무늬가 가장 선명한 건 아래에서 두 번째 띠입니다. 모름지기 정체를 파악할 땐 선명한 것부터 해야 쉽기도 하고 오류도 최소화할 수 있지요. 두 번째 띠에서는 푸른색 바탕에 흰색 타일이 8개씩 모인 십자 문양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십자 모양 흰색 타일 사이사이를 푸른색 타일이 채운 무늬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 번째 띠도 구조는 같습니다. 갈색 타일 8개가 십자 문양을 만들고 푸른색 타일 10개가 블록처럼 끼워져 바탕을 채우는 구조가 같습니다. 십자 문양 자리에 짙은 푸른색이 붙인 경우도 있고 갈색과 푸른색이 섞인 듯한 색깔의 타일이 붙인 경우도 있지만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변주 정도로 보입니다.  

    

이제 가장 위쪽인 네 번째 띠를 볼게요. 십자 문양 자리를 갈색 타일이 조금 더 많이 차지하고 바탕에 더 짙은 푸른색 타일이 와 있지만 결코 자리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언뜻 보면 문양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십자 문양이 반복되는 구조는 모두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첫 번째 띠를 보면, 모두 푸른 계통 타일이라 문양이 흐릿하긴 하지만 푸른색 타일 바탕에 십자 문양을 이루는 짙은 청색 타일이 반복되는 구조는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칼타 미나렛의 네 개의 원형 띠는 마치 변주곡 같습니다.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라는 노래가 입에 맴돕니다. 좀 커서까지 밤하늘에 크고 작은 별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던 기억이 납니다. 돌림노래처럼 계속 불렀던 이 노래는 프랑스 민요의 선율을 주제로 하여 모차르트가 만든 곡입니다. ‘작은 별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은 경쾌하게, 우아하게, 끊어질 듯 아련하게, 그러다가 다시 재빠르게 주제를 변화시키며 이어집니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테마


반짝 반짝 작은 별 … 바아안짝 바아안짝 작은 별 … 바반짝 바반짝 작은 별 ……. 변주곡에서 주제가 될 선율은 짧고 단순해야 합니다. 그래야 넣고 빼고 반복하면서 변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민요에서 주제 선율을 택한 이유겠지요. 칼타 미나렛의 변주도 주제는 간단합니다. 다만, 언뜻 보면 달라 보여 수학이라는 렌즈를 통과해야만 변주가 보입니다. 수학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글자에서 예술로, 캘리그라피    

 

그 위로는 아랍어 문장이 새겨진 타일이 붙어 있습니다. 이슬람 건축물에서는 글자를 멋있게 새겨넣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라고 부르는 이것은 손으로 그린 아름다운 문자라는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지요. 우리에게도 문자가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글자의 예술, 바로 서예라는 표현에서 기억할 수 있지요. 김정희는 자신의 호를 딴 추사체라는 서체 이름까지 남기지 않았던가요. 우리의 서예는 건물 현판이나 종이에 남았지만, 이슬람의 서예는 책은 물론 건물 벽면에까지 새겨져 있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슬람에서 문자가 건축 장식에서 이렇게 중요한 요소가 된 이유는 살아있는 생명은 신의 소관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창조한 것처럼 어떤 것을 창조하려고 하는 자보다 더 그릇된 자는 없다.’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 실린 말입니다. 오직 신만이 인간이나 동물, 즉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창조주라는 믿음입니다. 그 결과 이슬람 건물의 조각이나 벽화에서는 인물이나 동물 장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원에도 신을 본뜬 성상은 없습니다. 대신 신의 말씀을 전하는 문자를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발달시킨 캘리그라피로 그들의 예술혼을 펼쳤지요.      


칼타 미나렛 위쪽의 캘리그라피는 히바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글자였습니다. 문양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뜻을 알고 가면 더 좋을 텐데, 칼타 미나렛의 꼭대기에 적힌 글자의 뜻을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수많은 검색 끝에 결국 알아내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비로운 자들이여, 인정이 넘치는 자들이여.’           


칼타 미나렛 위쪽의 캘리그라피. ‘신의 이름으로, 자비로운 자들이여, 인정이 넘치는 자들이여.’라는 뜻이다.

   

이 캘리그라피는 나스탈리크체입니다. 14세기, 15세기에 페르시아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서체이지요. 페르시아어에는 원래 문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문자가 있는 언어가 여럿 사용되었는데, 그 중 널리 쓰이던 아람 문자가 이후에도 표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지요.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를 표기하던 팔라비어도 아람 문자에 기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7세기 아랍에게 정복된 후부터는 페르시아어를 점차 아랍 문자로 표기하게 되었지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말을 기록하는 문자가 없어 말을 할 때는 우리말로, 기록할 때는 한자를 쓰다가 나중에는 이두를 사용하여 표기했지요. 다행히 세종때 한글을 만든 덕분에 우리는 우리말과 문자를 가지게 되었지만, 지금도 페르시아어, 아니 이란어는 기본적으로 아랍 문자로 표기하지요.   

   

호텔로 사용되는 무함마드 아민칸 마드라사 중정에는 호텔답게 군데군데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지난밤, 조금은 차가워진 밤바람을 맞으며 별을 보며 식사를 한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엔, 다음에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드라사에서 하룻밤 자고 싶습니다. 기숙사로 쓰였던 작은 방에 누우면 그곳에서 신성한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다시 밖으로 나오니 칼타 미나렛과 마드라사 사이로 작은 첨탑, 굴다스타가 보입니다. 보통 굴다스타는 건물의 귀퉁이에 장식으로 덧댑니다. 마드라사 네 귀퉁이마다 설치된 굴다스타는 양파같이 끝이 뾰족하게 올라온 지붕을 쓰고 푸른색 타일을 몸에 붙이고 한껏 모양을 내고 있지요. 빗살무늬 모양으로 흙벽돌이 깔린 바닥을 밟으며 구름다리 밑을 지나 걷습니다. 칼타 미나렛의 푸른빛 타일을 손으로 쓸면서 한 바퀴 돕니다. 한 바퀴가 참 깁니다.     


히바의 이정표, 미나렛     


다시 양쪽으로 흙빛 마드라사가 즐비합니다. 히바는 마드라사와 모스크의 도시입니다. 히바에서 산 관광 지도를 보면 모스크는 8개, 마드라사는 24개 표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찬 칼라는 모스크와 마드라사로 가득 찼으니 이보다 훨씬 많음은 확실합니다. 이찬 칼라는 사실 동서로 400 미터, 남북으로 720 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아담한 공간입니다. 그 안에 높은 흙빛 담장과 흙벽돌로 지은 닮은꼴 건물들로 가득 차 있어 작은 돔을 보면 모스크인가 보다, 이완의 프랙털 구조를 보면 마드라사인가 보다 생각하며 길을 갑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기웃대며 길을 걷다 보면 어디가 어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이찬 칼라의 구조를 머릿속에 넣어야 합니다. 길을 잃지 않도록. 나중에 수많은 사진을 보며 어디가 어딘지 기억하려면.      


여섯 개의 푸른 띠를 두른 주마 모스크 미나렛(왼쪽). 주마 모스크 미나렛의남쪽에 있는 이슬람 호자 미나렛. 가장 화려하고 높다(오른쪽).


이찬 칼라의 이정표는 어디서든 보이는 높은 미나렛 세 개로 정하면 좋습니다. 이찬 칼라에는 미나렛이 네 개 있지만, 키가 작아 이정표 노릇을 하기 어려운 투라 무라드 미나렛은 제외하지요. 마치 잘려 나간 거대한 도자기 같은 독특한 모양의 칼타 미나렛은 서문 안쪽에 있습니다. 나머지 두 개의 미나렛은 모두 바탕색이 흙빛인데, 서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 저 앞에 보이는 것은 높이가 33m인 주마 모스크 미나렛입니다. 여섯 개의 푸른색 타일 띠를 두르고 서 있습니다. 가장 높은 미나렛은 이슬람 호자 마드라사에 있는 높이 45m의 이슬람 호자 미나렛입니다. 아래쪽에는 칼타 미나렛과 같은 무늬의 띠가 있고 그 위로 11개의 서로 다른 무늬의 원형 띠를 두른 화려한 미나렛입니다. 주마 모스크 미나렛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찬 칼라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세 개의 미나렛이 직각삼각형을 이룬다, 칼타 미나렛과 주마 모스크 미나렛은 서문과 동문을 잇는 길 위에 있다, 주마 모스크 미나렛에서 남쪽으로 꺾으면 가장 높은 이슬람 호자 미나렛이 보인다.’ 


이제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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