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레코드
11월의 어느 날,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옆테이블에는 나이가 든 백인 여자 두 명이 앉아있었는데 어쩌다 그들과 말을 섞게 되었다. 한 명은 뉴요커지에서 40년 넘게 글을 쓴 작가였고, 다른 한 명도 세계적인 자서전을 쓴 작가였다.
저녁 식사 내내 대화를 나눴는데 자서전 작가가 물었다.
“근데 무슨 일로 여기에 왔어? 기념일?”
우리는 그냥 근처를 지나다가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면서 남편이 말했다.
“무슨 기념일 아니라도 언제든 여기서 식사할 수 있거든. 웃기고 있어.”
둔한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이상하게 어두워진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질문은 우리가 기념일처럼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이런 식당에 올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했다. 그 식당은 웨이터가 턱시도를 입고 서빙을 하는 고급식당이었지만 절대 가지 못할 수준도 아니었다. 우리는 옷도 캐주얼하게 입었고 저녁식사 내내 기념일에 대한 대화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자신의 악의를 알아차려 달라는 뜻 아닐까? 우리가 예민한 걸까?
눈치가 빠르고 처세술이 좋은 남편은 단번에 그 질문에 담긴 악의를 눈치채고도 웃으며 응수했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 후 일주일 동안이나 샤워할 때마다 나를 찌른 악의에 대해 생각했다.
순진한 척 "우린 이 근처에 왔다가 들린 건데 너네는 무슨 일로 왔어? 기념일이야?"라고 해맑게 되물어줬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단도직입적으로 "왜? 기념일 이어야지만 올 수 있는 거야?"라고 되받아쳐줬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통쾌했을까? 그런 여자에게 웃으며 손을 흔든 과거의 나 자신을 쥐어박고 싶었다.
그녀가 무슨 뜻으로 그런 질문을 했든 나도 남편처럼 금세 털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악의를 품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받을 때마다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분명 존재하는 걸 알면서도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되는 바퀴벌레처럼. 악의가 나에겐 그랬다. 아무리 크기가 작을지라도.
내가 영민하게 바로 받아쳤다면 그녀의 표정은 어땠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분명한 건 그녀는 나처럼 연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가시가 잔뜩 돋쳐 피어난 악의들. 꽃밭을 걷다 보면 나를 찔러오겠지만 굳이 곱씹지 않는다. 상처를 부여잡고 연민하거나 한탄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굳은살이 생겨 가시쯤은 대수롭지 않게 지르밟고 지나갈 날이 올 것이다.
9:39 pm
10 November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