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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Jan 05. 2024

뉴욕 타자기

뉴욕 레코드

친구가 한국에서 타자기를 보내왔다. 타자기가 태평양을 건너기 위해 무려 195,000원이 들었다. 타자기 설명서와 원고지 한 묶음도 빨간 우체국 박스에 함께 들어있었다.


이 무거운 타자기를 낑낑거리며 들고 우체국에 가서 거금을 주고 부쳤을 친구를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해서 마음이 찡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밤, 겉옷도 벗지 않고 앉아 타자기를 쳤다.


시차 때문에 하루종일 자고 일어난 다음날 밤에는 친구와 같은 시를 쳤다. 휴대전화에서 타닥타닥 팅! 소리가 들려왔다.


능숙한 친구가 타닥타닥 팅! 하면 나도 타..닥.. 타...닥.. 팅!


영상통화 너머로 보이는 친구의 열중한 얼굴.

색만 다른 같은 타자기로 대전과 뉴욕에서 시를 치는 우리들.

시를 치고 나서는 서로 같은 곳에서 같은 실수를 한 것을 보고 푸하하 웃는다.


우리만의 잘못도 아닌 게 타자기는 오타내기가 참 쉽다. 컴퓨터 키보드처럼 백스페이스 버튼도 없고 시스템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쳐야만 한다.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기울여 키를 잉크 리본에 찍은 뒤 누른다. 손끝에 닿는 글자판을 꾹 누르고 활자대가 종이를 때리는 소리를 듣는다. 손가락 끝에 주는 힘에 따라 진해지거나 옅어지는 글자들을 본다. 키보드로 칠 때는 벌컥벌컥 들이마셨던 시를 타자기로 치니 천천히 입에 머금고 음미하는 것 같다.


친구가 자주 방문하는 타자기 카페에는 가끔 촬영용으로 타자기 손 대역을 구하는 글도 올라온다고 한다. 타자기로는 칠 수 없는 글자도 있다.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에 친구로 인해 발을 들여놓았다. 자신만의 취미에 골똘히 마음을 쏟는 친구로 인해 내 세계가 덩달아 넓어진다.


오래오래 손을 잡고 서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타자기로 꾹꾹 눌러 적어 한국으로 부친다.



11:1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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