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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Feb 27. 2024

밤이 속삭이는 불안

뉴욕 레코드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 포근한 침대에 누워있어도 정신은 가시방석 위를 구르고 있는 듯 괴로운 밤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누워있다 보면 밤이 말을 건다. 밤이 속삭이는 말들은 나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희망을 짓밟는다. 어쩐지 지나온 모든 것에 회의감이 들고 지나갈 모든 것이 잘못될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은 누구나 으레 느끼기 마련이다. 어릴 때는 새벽감성이라는 이름 아래 이를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숨이 턱 막혀 이런 밤을 견딜 수가 없다.


낮이라면 초콜렛이나 유튜브 같은 것으로 잊어보겠지만 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미 잠자리에 든 이상 기분이 좀 안 좋다고 입에 초콜렛을 쑤셔 넣을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처럼 새벽 라디오를 들으며 밤새 그 기분에 빠져있을 수도 없다.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살려면 그저 잠이 도착할 때까지 밤에게 시달리는 수밖에.


그리고 아침이 오면 밤새 충전하는 것을 잊은 핸드폰 배터리처럼 고갈되어 눈을 뜬다.


아침 햇살이 비추면 밤의 여파가 여실히 드러난다. 내 마음의 정원은 잡초로 뒤덮여 형편없는 모습이 되어 있다. 밤이 잔뜩 뿌린 피해의식, 수치심 따위의 씨앗들은 하룻밤 사이에도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럴 바에는 다음날 피곤하더라도 졸음이 올 때까지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이틀이면 회복할 테지만 엉망이 된 마음은 회복이 더디기 때문이다. 달빛을 받고 자라 가시가 잔뜩 돋친 잡초들을 뽑으면서 나는 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은 다른 무언가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도 대처하는 요령이 생겼다. 어떤 이유로 정신이 말똥한 나에게 밤이 접근해도 속수무책 당하지 않는다.


나는 밤에게 말한다. 어 넌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난 말이야… 일단 보류.


밤과의 독대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계약 같은 중요한 일을 낮에 처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누구도 새벽 3시에 사인을 하라고 계약서를 들이밀지 않는다. 밤은 결정을 내리기에 적합한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사소한 인상이라고 해도 내일로 미뤄야만 한다. 밤에게 감히 그런 권한을 허락하지 않는다.


밤의 음험한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11:53 pm

9 Februar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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