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빅 팻 이탈리안 웨딩

토할때까지 먹는 이탈리아 결혼식

by 휘바

9월의 어느 밤, 나는 이탈리아 시골의 한 호텔 식당에 앉아있었다. 고속도로 옆 허허벌판에 외로이 서있는 이 호텔에 다른 손님들이라곤 트럭 운전기사들뿐이다.


내일이면 새 신랑이 될 알레산드로는 와인에 입도 대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있다. 그는 최근 사령관으로 승진을 했고 이탈리아 의회에서 자기가 쓴 정치 에세이에 대해 발표도 한 엘리트 군인이다.


내 옆자리에는 영화감독인 구예르모가 챗지피티의 도움을 빌려 이탈리아 방언들이 얼마나 다른지 나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영어를 못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엄청난 수다쟁이이다. 나를 만나자마자 이탈리아어로 봉준호의 기생충 속 상징들에 대해 설명하더니 김기덕 영화들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두 달 배운 이탈리아어 실력으로 구예르모의 수다를 힘겹게 듣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알레산드로가 한마디를 한다. 너 엄청 참을성 있다, 구예르모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몇 달 동안 수다를 떨 친구야.


런던에서 변호사일을 하고 있는 샘은 속사포처럼 떠드는 구예르모의 통역을 하느라 조금 지친 얼굴로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 옆에 앉은 안드레아는 가만히 대화를 듣기만 한다. 나는 그가 원래 수줍은 사람인지 영어를 못해서 조용한 건지 줄곧 궁금했는데 다음날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타서 알게 되었다. 그가 앞에서 튀어나오는 차에게 팔을 들어 파닥거리며 ‘마! 바이! (가라고!)’라고 소리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 순간 수줍게만 보이던 안드레아에게서 마! 가라! 라고 외치는 경상도 남자가 보였다.


이들은 모두 소꿉친구인 알레산드로의 결혼식을 위해 7시간 내지 10시간을 여행해 이곳에 모여있다. 알레산드로는 신부와 연인으로서의 마지막 밤산책을 나서기 전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당부한다. 굉장히 복잡한 손짓과 심각한 어투에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내일 아침 계획을 브리핑했다고 한다. 그 계획이란 공구시 공공분에(09:00) 호텔 로비에서 만나 사진을 찍고 십시 공공분(10:00)까지 성당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과연 군부대를 호령하는 사령관다운 모습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호텔 로비에 모여 사진 촬영을 했다. 우아한 초록색 원피스에 귀걸이와 시계까지 초록색으로 깔맞춤 한 알레산드로의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뭐라고 속삭이셨다. 역시 군인으로 장군 제복을 입은 아버지와는 데면데면 사진을 찍던 알레산드로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지며 눈물이 흘렀다. 늠름한 사령관이 소년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아침햇살 아래 눈물로 반들거리는 모자의 얼굴에 모두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우리는 사진 촬영을 마치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산비탈에 자리한 성당을 향해 떠났다. 조용한 시골마을 입구부터 멋지게 빼어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하객의 반은 제복을 입고 군도를 들고 다니는 군인들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이 소란을 구경하고 있었다.


성당 뒤는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탁 트인 골짜기 뷰가 펼쳐져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황금빛 밀밭이 춤을 추듯이 흔들렸다.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하프 연주가 들려오고 화려한 꽃장식에서 진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성당 내부는 얼룩덜룩 지워진 비잔틴식 프레스코 벽화 말고는 단출했다. 나폴리나 로마에서 본 성당들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이천 년 전 이곳은 전쟁의 신 마르스를 숭배하는 로마 신전이었다. 천년 뒤 이탈리아에 기독교가 퍼졌고 성당은 비잔틴 벽화와 함께 다시 태어났다. 대대로 군인집안인 신랑과 신부의 가족이 하나가 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열한 시, 30분정도 늦는 게 관례라는 신부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탱글한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이탈리아 미녀가 장군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팔을 잡고 등장했다. 모두가 신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이 나는 신부를 바라보는 알레산드로의 얼굴을 관찰했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온갖 감정들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 세밀한 감정들을 정의하긴 어렵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이라는 것만은 명백했다.


곧 사제복을 입은 신부님이 등장했다. 그는 어쩐지 부패한 성직자의 인상을 풍겼는데 이건 속사정을 아는 나의 편견일 것이 분명하다. 결혼식 전에 큰 사건이 있었다.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한 신부님의 여동생이 큰 사고를 당해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알레산드로는 결혼식 이틀 전 급하게 새로운 신부님을 구했고 결혼식 전날까지 신부님과 미팅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을 보고 나니 왜 신부님이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결혼식에서 신부님의 역할이 90퍼센트 이상이었다. 신부님은 성서를 읽고 설교를 했고 서약을 나눈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을 했다. 자리마다 놓여있던 작은 책자에 신부님의 설교 내용과 하객의 응답이 적혀있어서 따라 읽었다. 중간에 꼬마 하객이 성경으로 보이는 어떤 구절을 읽기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샘에게 물었다.


- 이탈리아 결혼식은 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비종교인도?

- 시청에서 간단히 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탈리아에선 종교가 없어도 보통은 이런 식이야.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식이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하얀 리본이 달린 마세라티가 성당 앞에 세워져 있었다. 9월 중순이었지만 남부 이탈리아의 햇빛은 여전히 강렬했다.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나도 땀이 날 정도인데 제복을 입은 이 수많은 군인들은 얼마나 더울 것인가.


장군 제복을 입은 신랑의 아버지와 신부의 아버지가 군인들을 정렬시켰다. 모두 같은 제복을 입은 그들은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군도를 칼집에서 꺼내 들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선 군인들이 군도를 치켜들자 칼로 만들어진 작은 아치가 생겨났다. 군인들의 결혼식에서만 볼 수 있다는 군도로 만들어진 아치, 아르코 디 샤볼레(Arco di Sciabole)였다. 이른 오후의 햇빛이 은빛 칼날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군인들은 서로의 칼날을 부딪쳤고 창창창 소리가 산골짜기를 타고 울렸다. 공식적으로 부부가 된 커플이 번쩍이는 은빛 아치 밑을 걸어왔다. 마지막에 서있던 군인 둘이 칼을 밑으로 내려 부부의 길을 막았다. 갈 길이 막힌 그들은 웃으며 키스를 했다. 하객들은 아르코 디 샤볼레를 통과한 부부의 머리 위로 쌀알을 뿌렸다. 새 부부를 축복하며 신의 선물이자 생명의 상징인 곡식을 뿌리는 것이다.


식이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차들의 행렬이 기차처럼 길게 이어졌다. 피로연 장소 역시 풍성한 하얀 장미와 파란 수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프로세코와 오르되브르가 하객들을 반겼다.


그런데 알레산드로의 여동생 라우라의 표정이 무척 심각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누군가’ 길을 잃었다고 했다. 이때는 그 누군가가 구예르모와 샘인지 몰랐다. 나중에 앞차만 따라오면 되는걸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냐고 구예르모를 놀리자 그가 솔직히 고백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는 길에 다른 결혼식을 발견해서 잠깐 들러서 술도 한 잔 하고 놀다 왔다는 것이다. 웨딩 크래셔가 따로 없었다. 진지한 변호사인 샘이 어떻게 기발한 예술가인 구예르모와 소꿉친구일까 궁금했는데 다른 의문 하나가 풀렸다.


하객들은 리셉션에서 수다를 떨다가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수로로 둘러싸인 커다란 파빌리온 아래에 테이블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중앙에서는 재즈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 앞에 있는 가장 큰 테이블은 신랑과 신부를 위한 것이었다.


파빌리온 옆으로는 뷔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어 스테이션에는 훈제 연어와 구운 연어가 문어 스테이션에는 찐 문어와 구운 문어가 있었다. 생선요리, 살라미, 치즈, 샐러드, 빵 별로 스테이션이 따로 있었다. 모든 음식이 신선하고 맛있었다. 특히 갓 만든 모짜렐라와 연어가 꿀맛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탈리안 하객들은 간단한 이탈리아어만 해도 놀라며 귀여워해주고 프로세코를 가져다줬다. 행복하고 즐거워서 마음이 이미 포만해졌다. 마음만큼 배도 충만해졌을 때 하객들은 다시 실내로 안내되었다. 실내에도 테이블들이 차려져 있었다. 점심식사라고 했다. 방금 먹은 게 점심이 아니었나?라고 하니 다른 하객들이 그냥 전채요리였을 뿐인데?라고 했다. 황당했다. 그 푸짐한 식사가 식욕을 돋우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니. 과연 먹을 줄 안다는 이탈리아인들이었다. 고기를 맹렬하게 구워 먹고 난 후 '식사는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묻는 종업원을 보는 외국인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본격적인 식사는 첫 번째 코스, 두 번째 코스 그리고 두 가지 디저트로 이어진 풀코스 요리였다. 첫 번째 코스는 자바리와 호박이 들어간 카펠레티 파스타 혹은 샴페인과 캐비어가 들어간 게살 리조또였다. 두 번째 코스는 이스키아 소스와 브로콜리를 곁들인 농어였다. 나는 첫째 코스인 리조또를 겨우 다 먹고 배가 터질 것 같아 숨만 몰아쉬었다.


같은 테이블에는 알레산드로의 고등학생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다들 영어를 잘했고 장난꾸러기들이었다. 알레산드로가 국회에서 발표를 하는 사진에 성기를 그려 넣은 사진을 보여주고 알레산드로의 흑역사를 말해줬다. 소꿉친구 그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빠르게 웃음과 프로세코에 취해갔다.


두 번째 코스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시차와 식곤증에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시 밖으로 나가 이탈리아 시골의 풍경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래층에는 에스프레소 바가 있었다. 에스프레소 한잔을 들이켜고 나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에스프레소 바는 화장실 같은 느낌이다.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렇다.


신랑과 신부의 들러리가 하는 축사를 들으며 화이트 초콜렛, 코코넛과 라임이 들어간 타르트를 디저트로 먹었다.


드디어 대장정 같았던 식사가 끝나고 다시 파빌리온으로 나가 재즈 밴드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할 것 없이 서로의 어깨의 팔을 두르고 춤을 추고 인간 기차를 만들어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해가 질 때쯤에 케이크 커팅식이 있었다. 거대한 5단 케이크 위에도 하얀 장미와 파란 수국이 올라가 있었다. 케이크를 자르고 다시 파빌리온으로 돌아가자 낮에 전채 요리 뷔페가 준비되어 있던 자리에 또 직원들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이번엔 디저트 뷔페였다. 각 스테이션마다 온갖 종류의 케이크, 타르트, 치즈, 과일, 초콜렛들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부터 이틀은 굶어도 되겠다했는데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디저트들을 담다 보니 접시가 가득 차고 말았다.


밤하늘 아래 벌어진 댄스파티도 끝나고 음악도 잦아들었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결혼식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신랑과 신부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주며 하객 한 명 한 명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열어보니 선물은 전에도 알레산드로에게 받은 적 있는 발사믹 소스였다. 발사믹 소스병에는 튈로 만들어진 예쁜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열어보니 신랑 신부의 이름과 함께 하얀 사탕 다섯 개가 들어있었다. 이는 손님에게 선물하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기념품, 봄보니에라였다. 콘페티라고 불리는 이 사탕은 사실 설탕으로 코팅된 아몬드였는데 다섯 개인 이유가 있었다. 다섯 개의 콘페티는 부부와 하객의 건강, 부, 행복, 다산,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였다.


안드레아가 차를 빼는 동안 나무 아래 앉아서 시가를 피우는 군인들과 어울렸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있었다. 하루 종일 더웠는데 밤이 되니 으슬으슬 추웠다. 설상가상 머리까지 아팠다.


호텔방에 돌아온 나는 결국 하루 종일 먹었던 걸 다 게워내고 말았다. 프로세코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체한 모양이었다. 장장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먹는 이탈리아 결혼식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다음 이탈리아 결혼식 때는 미리 벌크업을 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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