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죽음의 나무에 대한 집착

by 휘바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황금빛 햇살을 반사하는 나뭇잎들

흩날리는 줄기 사이 번득이는 빛의 절정과 짙은 그림자


아내, 두 아들, 시력, 그리고 그림까지 잃어가던 시절, 모네의 그림이다.


프레임을 가득 채운 나무의 존재감과 정처없이 그어진 붓터치의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왼쪽의 그림자는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마음 한구석 성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한 느낌이다. 빛이 닿을 수 없는 곳들, 어둡고 낮은 곳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네는 버드나무를 통해 자신의 삶에 짙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표현했다. 건초더미나 루엔 성당 시리즈처럼 열 점 이상 그려진 버드나무는 세계 1차 대전과 대학살에 대한 그의 해석이자 프랑스 군대에서 죽어간 청년들을 위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절망과 비극 속 참혹한 내면의 풍경을 어찌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


1918년, 모네의 친구와 가족들은 진군해오는 독일 군대를 피해 더 안전한 장소로 도망갔지만 모네는 애지중지하던 정원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세계 전쟁 직전 두 번째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첫 번째 아들마저 죽음에게 빼앗긴 직후이다. 하나 남은 막내아들 미첼은 전쟁의 최전선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었고 모네는 백내장이 악화되어 점점 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텅 빈 집에 혼자 남아 점점 가까워져오는 독일군의 총소리를 들으면서 쉬지 않고 버드나무를 그렸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애정의 산물인 정원, 그리고 먼저 떠나버린 사랑하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해⋯⋯.




모네는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사랑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하고 싶다. 액자 뒤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인지 이야기 유무에 따라 그림에 대한 감상도 달라진다. 나는 왠지 슬픈 뒷이야기가 있는, 예술가가 고통스러운 내면과 시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승화시킨 작품들에 더 깊게 감명받는다


모네는 16살 때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꾸준히 부딪쳤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그림을 그리던 시절, 1865년 같이 스튜디오를 쓰던 쟝 프레데릭 바지유로부터 18살의 카밀을 소개받는다.


여자 친구이자 모델이었던 카밀을 그린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자, 1866


모네는 살롱에 내놓으려던 피크닉을 완성시키지 못해서 카밀의 초상화를 대신 내놓았다가 당시 무명작가에게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800프랑이나 받고 그림을 팔게 된다.


일곱 살 연상이었던 모네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아이를 임신한 카밀을 혼자 두고 이모네 집에 가서 살았다. 카밀과 헤어졌다고 아버지를 설득시키고 계속 생활비를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1867년 여름, 아빠와 이모가 있는 생타드레스 에서 살던 모네는 몰래 파리로 가서 아들을 낳은 카밀과 함께 며칠을 보낸다. 또 아무렇지 않게 이모네 집에 가서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그해 겨울 다시 카밀이 아들과 지내던 추운 파리의 원룸 아파트로 가 연말을 보냈다.


I was definitely born under an evil star. I have just been thrown out of the inn where I was staying, naked as worm.

나는 사악한 별 아래에서 태어난 게 분명해. 방금 벌레처럼 벌거벗은 채로 여관에서 쫓겨났다.



함께 있기 위해 둘은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녔고 돈을 못내 여인숙에서 벌거벗겨진 채 쫓겨나기도 한다. 카밀과 아들 쟝은 시골 어딘가에 겨우 거취를 마련했고 모네는 생활기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870년 6월, 둘은 드디어 파리에서 역시 화가였던 친구 귀스타베 쿠르베를 증인으로 세우고 결혼의 서약을 맺는다. 카밀의 부모님은 참석했지만 모네의 가족은 참석하지 않았다.


모네 부부는 백화점 주인이자 후원자였던 오쉬데 부부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같이 살기 시작하는데 얼마 안가 1873년, 둘째 아들 미첼을 낳은 카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때 앨리스 오쉬데는 카밀의 간호를 도맡고 자신의 여섯 아이들과 모네의 두 아들까지 돌본다.


앨리스 오쉬데 모네, 나중에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그녀는 카밀이 죽고 나서 그녀의 사진과 흔적을 다 지워버리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때 모네가 그림을 팔아 번 돈의 대부분이 카밀의 병원비로 쓰였지만 계속 병상에 누워있던 카밀은 결국 이듬해에 죽는다(사인은 낙태 부작용, 자궁암, 골반암, 폐결핵 등등 의견이 다분하다).


성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던 백화점 주인이자 모네의 후원자였던 오쉬데 부부는 1878년에 완전히 파산하고 남편 어니스트 오쉬데는 빚 때문에 벨기에로 도망을 가게 된다.


앨리스는 모네의 아이들까지 8명의 아이들을 파리에 데려가서 키우고 모네는 두 가족이 함께 살던 베퇴유에 남는다. 아내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모네는 빚쟁이들로부터 도망 다니는 생활을 하며 그림에 집중하지 못한다.


1880년대에는 드디어 모네의 인생이 피려는지 모네를 중심으로 인상주의가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일이 잘 풀려가는 와중에도 모네는 앨리스한테 쓴 편지에 죽고 싶은 심정을 전했다. 그래서인지 앨리스는 애들을 데리고 돌아오고 모네는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둘의 관계는 막장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 첫 번째 부인 카밀이 아팠을 때 앨리스와 모네가 이미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앨리스의 아들 쟝 피에르가 모네의 아들이라는 추측이 있다. 둘은 앨리스의 남편 어니스트가 죽자마자 1892년에 재혼을 한다.


노년의 모네와 앨리스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연관이 깊은 듀랑를이라는 미술상한테 그림을 팔며 점점 재산과 명예를 쌓아갔고 지베르니 사유지에 있는 집과 정원을 점점 확장한다. 노년을 보낸 그곳에서 그는 둑 가장자리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가장 좋아했다.


불쌍한 친구여, 모든 게 끝났어. 새벽 4시, 사랑하는 동반자가 죽었어. 괴로워, 길을 잃은 기분이야. 너의 친구 모네가.


1911년, 앨리스의 죽음으로 모네의 삶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어두워진다.







버드나무는 왜 죽음의 상징일까?



1800년대 무덤에 새겨진 버드나무와 유골단지



그리스 신화에서 신성시했던 버드나무는 헤라, 헤카테, 키르케, 페르세포네 신에게 바쳐졌는데 그들은 모두 지하세계, 저승과 연관된 여신들이다.


특히 지하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신중 하나인 헤카테는 버드나무와 달의 여신이었다. 헤카테를 경배하고 그녀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시인 중 하나였던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로 갈 때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간다. 켈트족 신화에서도 버드나무는 죽음의 여신을 상징하고 어두운 자아나 정신세계의 숨겨진 부분들과 관련한 마법에 쓰인 걸로 나온다.


오펠리아 머리 위로 보이는 버드나무 가지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버드나무를 죽음에 비유했다. 오펠리아는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있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강으로 떨어지고 가라앉아 죽게 된다.






사실은 생명의 나무



버드나무는 사실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미터 넘게 자랄 뿐만 아니라 땅바닥에 그냥 가지만 꽂아도 아주 잘 자란다. 이 꿋꿋한 나무는 심하게 훼손해도, 베어버려도 다시 살아난다. 이 능력을 알게 된 고대 중국인들에게 버드나무는 영생과 부활의 상징이었다.


북미 원주민 아라파호 부족에게 버드나무는 장수를 뜻했고 다른 부족들에게는 보호를 뜻했다. 카룩 부족은 태풍으로부터 안전을 빌며 버드나무 잔가지를 배에 달았다. 캘리포니아 북쪽에 있는 원주민들은 버드나무 잔가지가 자기들의 영혼을 보호해줄 거라고 믿었다. 모두 버드나무의 뛰어난 성장력과 회복력 때문이었다.


고대 드루이드교에게도 버드나무는 성스러운 것이었고 그들의 신화 속 버드나무는 사랑, 비옥함, 젊은 여자의 통과 의례를 상징했다.


성경에도 버드나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하고,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장


버드나무의 종소명인 '바빌로니카'는 위 성경구절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포플러 나무를 라틴어와 영어로 옮길 때 잘못 번역한 것으로 부적절한 명칭이라고 한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포로들, 버드나무에는 수금이 걸려있고 가지가 우는 것처럼 그들 위로 늘어뜨려져 있다


기독교인들은 버드나무 가지로 된 십자가가 집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벼락을 막는 부적의 효과를 위해 나무가 죽지 않게 십자가를 물 안에 보관하기도 했다.


아무리 구부려도 휘어지면 휘어졌지 부러지지 않는 질긴 버드나무는 생명력과 적응력의 상징이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십이야」에서 「햄릿」과 반대로 버드나무의 질긴 생명력을 비올라의 굽히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데 사용했다.

당신의 대문 앞에 버드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집을 지어줘요. 그 안에서 나의 영혼을 불러주세요.

기독교 이전의 마법 숭배를 하던 이교도를 'Wicca'라고 불렀는데 이는 상황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조종할 수 있는 마법 숭배자들의 능력을 의미했다. 이 단어가 바로 쉽게 휘어지는 유연한 버드나무의 특징에서 따온 말이라는 주장이 있다.


버드나무는 강인할 뿐 아니라 남의 고통을 치료해주는데도 탁월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미 기원전 오세기 경에 버드나무 껍질을 씹으면 열을 내리고 고통을 완화시킨다는 걸 알고 있었고 북미 원주민들도 열, 관절염, 두통, 치통 등을 치료하는데 버드나무 가지를 썼다. 그들은 버드나무를 '치통 나무'라고 불렀다.


문명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버드나무가 학질이나 류머티즘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살리신을 채취해서 류마티스성 열을 치료하는데 썼다. 이 살리신은 몸속에서 산화되어 살리실릭산으로 바뀌고 이것은 나중에 아스피린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영국에서는 마녀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문 위에 걸었다.





삶과 죽음, 그 사이 서있는 나무


사실 모네는 버드나무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걸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 모든 절망 뒤에도 그는 끝까지 그림과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버드나무 같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전쟁이 끝나고도 7년이나 더 살았다.


얼마나 생명력이 강했냐면 과부가 된 며느리와 좋아 지낼 정도였다. 모네와 앨리스는 모네의 첫째 아들 쟝을 함께 자란 앨리스의 딸 블랑슈와 결혼시켰다. 쟝이 죽자 블랑슈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모네를 돌보게 되는데 충격적이게도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모네의 그림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며 몇몇 학자들은 그녀가 늙고 병든 모네의 작품을 도와줬다고 보기도 한다.


친구 구스타베는 모네가 백내장 수술을 받을 것을 종용해왔는데 모네는 수술이 망한 사람들을 보고 완강히 거부했다. 차라리 시력을 잃고 그림을 포기하겠다던 그는 1923년에 결국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


인생에 사랑하는 것이 그림밖에 남지 않은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그는 수술 후 잘 보이지 않을 때 그린 그림들을 부수어 버리거나 새로 칠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는 86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죽고 지베르니 묘지에 묻힌다. 친구 조르주 클라망소는 모네의 관에 씌워진 검은 천을 보고 검은색을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인상주의자 모네에게 검은 천은 얼토당토않다며 꽃무늬 천을 구해와 덮어줬다고 한다.


그리하여 ‘화가로서 꽃에게 빚을 지며 살고 있다’고 했던 모네는 꽃밭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알았다. 삶에는 늘 빛과 어둠이 함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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