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
뉴욕 Moma에 다녀온 뒤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나던 그림이다. 오히려 모마에서 가장 유명한 반 고흐의 The Starry Night은 그림 앞에 붐비는 인파도 인파지만 액자 유리에 뒤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비쳐서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다는 게 아주 실망스러웠다.
이 그림에서 저글러는 미스테리한 은색 별빛에 감싸여서 보통의 저글러와 다르게 동그란 빛으로 저글링을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Juggler라는 단어는 마법사, 마술사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가 바로는 별처럼 보이는 저글러의 얼굴을 얇게 붙여진 자개 조각들 위에 그렸다. 그녀에게 자개는 깨달음 또는 의식을 의미했다.
그의 앞에는 얼핏 보면 동일인물인 것 같이 생긴 사람들 무리가 있다. 회색 망토로 감싸여 한 무더기로 연결된 그들의 표정에는 딱히 호불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바로는 한 편지에서 이들이 개인으로 구분할 수 없는, 영적으로 계몽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저글러로부터 빛을 나눠 받아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저글러의 카트 안에는 눈을 감고 있는 여자와 사자, 염소, 새, 부엉이 등이 있다. 한 해석은 이들을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거치는 단계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봤는데 여자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에 대한 해석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림을 보는 순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나에게 이 그림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좋은 예술품이 대개 그렇듯이 나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통해 나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유명세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슨 분야든 잘하면 유명세는 따라오게 되어있다. 반대로 지금은 유명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시대기도 하다. 다들 그래서 바쁜 와중에 자기 브랜드를 키우려 유튜브도 하고 브런치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그러는 거지만 연예인처럼 얼굴이 팔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대중성과 유명도가 기회나 성공의 척도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소수의 친한 사람들 빼고는 나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적인 성격이다. 일할때도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나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편이 좋고 편하다. 그래서 겸손함이 미덕인 우리나라와 달리 나서서 자기 PR을 해야 알아주는 미국에서 사는 게 불리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늘 성공하려면 내 얼굴이나 이름을 팔아야 된다는 것에 대해 딜레마가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인기를 떠먹여 준 것도 아닌데 사양하는 꼴이 좀 우습다). 처음에는 유명해서 곤란한 일을 겪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무의식에 이런 쓸모없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저변에는 남들이 나를 평가하고 재단할 거라는 생각 그리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글을 계속 쓰려면 읽혀야 하고 읽히면서 평가받지 못하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평가 자체가 두려워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으며 그 누구도 나를 100% 이해해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니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근데 타고나길 담이 작은 개복치로 태어나서 그게 안되니까 두려워만 하는 거다.
초현실주의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바로는 자신과 자신의 믿음을 내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비현실적이고 신비한 그녀만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표현했다. 꿈에서 영감을 받고 초자연적인 그림을 그렸던 달리와는 공교롭게도 같은 아트 아카데미 출신이다.
바로는 러시아 신비주의자 Georgii Giurdzhiev와 Piotr Ouspenskii의 이론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은 사람이 잠에 든 채로 태어나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 깨어난다고 보았다. 그녀가 그림에 표현했듯이 의식을 발달시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자동적으로 삶을 살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바로는 Hieronymus Bosch라는 네덜란드 화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도 esotericism(서양 밀교)와 신비주의를 공부한 인물이었다(바로는 수력 공학자였던 아버지를 통해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애드가 앨런 포 등을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 ‘마법사'는 종종 바로의 작품 ‘저글러'와 한 짝으로 언급된다.
여러 문화에서 저글러(마법사)는 비이성적이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통해 대중을 계몽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타로 카드에서 저글러는 0번째 카드인 바보 카드 바로 뒤에 온다. 두 그림에서 관중처럼 타로에서 바보는 주의가 산만하고 본질을 보기보다 쉽게 시각적인 것에 매료되는 유순한 '목격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아실현으로 가는 길에 마법사를 만난다.
바로는 늘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시키려는 세력에 저항하며 자신에게 가장 진실로 느껴지고 와닿는, 자신만의 진실을 추구했다.
그녀의 아빠는 그녀에게 과학, 신비주의, 철학 책들을 소개해주며 독창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추구할 것을 가르쳤지만 아빠와 달리 바로의 엄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 영향력 아래 엄격한 기숙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바로는 19살이 되던 해, 같은 아트 아카데미 학생이었던 Gerardo Lizárraga와 함께 파리로 달아난다.
그녀의 삼부작 중 첫 번째 그림인 「탑을 향하여(Towards the Tower)」 에서는 똑같은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여교장을 따라 기숙학교를 떠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중 바로로 보이는 한 소녀는 혼자 다른 곳을 보며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 그림인 「맨틀에 자수를 놓으며(Embroidering the Mantle)」 에서 소녀들은 탑에 갇혀 교장의 감시 아래 자수를 놓는데 그들이 놓은 자수는 탑 밖으로 흘러 세상의 풍경이 된다.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던 소녀는 감시를 피해 은밀하게 자신의 연인의 모습을 수놓는다.
세 번째 그림 「탈출(The Escape)」 에서 소녀는 구름 위에 떠있는 우산처럼 보이는 배를 타고 연인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그림 세 점만으로도 관람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강력한 스토리텔링도 그렇지만 이 기묘한 그림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창작자인 바로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구속받았던 어린 시절의 고통과 자유에 대한 갈망, 연인과 도망쳤던 경험을 모두 녹여내 '자신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는 남편이 된 제라도를 버리고 프랑스의 신비주의 시인이었던 Benjamin Péret와 보헤미안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바로를 프랑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소개해주었고 그들 옆에서 배우고 함께 전시하며 바로는 초현실주의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바로의 그림, 저글러에서 회색 망토를 입은 사람들 중 몇몇은 눈앞에서 마술을 보고도 저글러가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믿지 않을 것이다. 몇몇은 내가 이 그림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 감명을 받은 것처럼 좋은 영향을 받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유명세에 따르는 부정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더 두려웠던 거다. 남들에게 나와 나의 세계를 알렸을 때, 비로소 따로 혼자 떨어져 있던 내 생각이 세상과 사람들과 연결됨으로써 의미를 가지고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깨달았다. 이미 글을 쓰기로 작정한 이상 남들 앞에 서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중 속에서 섞여 늘 보고 받아들이기만 할 것인가, 용기 내어 그들 앞에 서서 나를 표현할 것인가.
누구나 자기만의 진실이 있다. 진실을 공유했을 때 오는 평가가 두렵다면 우리는 늘 관중 속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이 관중을 감싸고 있는 회색 망토를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대중의 믿음이라고 해석했다. 그들은 하나의 믿음 안에서 안전하게 뭉쳐져 있다. 이 믿음을 버리고 나와 내가 삶을 통해 찾은 나만의 진실을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만이 망토를 걷고 나와 '눈을 뜨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옳든 그르든 자신만의 진실을 추구하고 살아갔던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프리다 칼로, 레오노라 캐링턴과 더불어 초현실주의 여성 예술가 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나만의 진실을 추구하고 알리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두려움 없이 자신이 믿는 진실을 주장하고 박해받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一지동설을 주장했다가 박해받고 매장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달이 신이 아니라 지구 같은 천체라고 주장했다가 추방당한 아낙사고라스 등.
그러나 나는 영원히 퍼져나갈 물결을 시작한 그들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고 싶다. 죽을 때까지는 뭐가 진실인지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그것만큼 값진 일이 있을까? 회색 천을 걷고 나와 나를 세계에 내보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