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한 달 살기 둘째 주
대망의 생일 전날, 그냥 일만 하긴 아쉬워 Museum of Modern Art(뉴욕 현대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보통 줄여서 MoMA(모마)라고 불리는 미술관이다. 뉴욕 여행자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로 이름값만큼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한 작품들을 정말 많이 소장하고 있다.
나도 꼭 가보려고 벼르고 있었으나 가능하면 평일에 가고 싶지 주말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 워낙 바빴던 남편은 평일에 시간을 낼 수가 없게 되자 혼자라도 갔다 오라고 했다. 근데 그냥 주말에 같이 갈걸 그랬다. 평일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모마는 5,6층에 유명한 작품들이 특히 많이 몰려있기에 위층부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궁수가 있는 그림이다. 칸딘스키가 추상적인 화풍을 개발하기 전에 그려진 그림인데 배경이 색채들의 나열로 녹아들어 가는 걸 보면 이미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출신인 칸딘스키는 법과 경제학을 전공한걸로도 모자라 민족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 시골에서 무속신앙을 믿었던 샤먼들과 어울리며 전통적인 민속예술에 푹 빠져서 이 그림을 그렸다.
칸딘스키의 그림을 알아보기만 했지 팬은 아니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아름답게 조화시킨 그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칸딘스키가 뙇! 하고 보일 때 좀 멋졌다. 지금은 모마에 없는 작품들이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다리 위 소녀들 석판화 버전. 모네나 르누아르처럼 뭉크는 거의 삼십 년간 이 풍경에 집착하며 조금씩 다른 버전을 스무 개나 만들어냈다. 이 풍경은 그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더 이상 책 읽는 남자와 뜨개질하는 여자가 있는 실내 풍경을 그리지 않을 거야. 숨 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릴 거야.
_에드바르드 뭉크
뭉크는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빛과 외부의 세계를 그리기보다 사랑, 질투, 외로움, 불안 같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누나를 잃은 트라우마와 이루지 못한 사랑은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자들. 아비뇽은 바르셀로나의 홍등가로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그림 속 여자들은 창녀들이었다. 익숙할 대로 익숙한 그림인데 실제로 보니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아프리칸 가면 같은 기괴한 얼굴보다 곧게 날아와 꽂히는 여자들의 시선이나 당당한 자세가 더 눈에 들어왔다. 여체를 각이 지게 표현해서일까 선정적이기보다는 힘이 느껴졌다.
크기에서 오는 압도감도 만만치 않다. 여자들은 거의 실제 사람 크기로 보인다. 이는 작업 시기 당시 피카소가 그린 그림 중 역대 최고 크기였다고 한다. 피카소는 무려 20년 동안 공들여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정성에도 피카소의 친구들은 이 작품을 극혐했고 피카소는 그림을 돌돌 말아 자신의 침대 밑에 보관해야 했다고 한다.
거울 앞의 소녀라는 작품이다. 피카소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피카소 특유의 표현주의와 작품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분홍색 같기도 라벤더색 같기도 한 피부색과 노랑, 빨강 같은 원색들이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는지.
이 그림은 모든 게 대칭적이다. 해와 달, 젊음과 늙음,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다면적으로 표현했다. 피카소답게 소녀의 팔과 가슴은 남성의 생식기를 연상하도록 그려졌다.
폴 시냑의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원제목은 Opus 217. Against the Enamel of a Background Rhythmic with Beats and Angles, Tones, and Tints, Portrait of M. Félix Fénéon in 1890)의 알록달록한 색감은 예외 없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펠릭스 페네옹은 시냑과 점묘 화법을 옹호했던 비평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동시에 편집자,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해 여러 방면에 잘 알려진 사람이었고 시냑과 쇠라의 화풍에 신인상파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자신을 피의 쉴드로 지지해준 사람에 대한 시냑의 애정이 드러난다.
앙리 루소의 꿈이라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작품의 크기가 시선을 끌고 그 다음엔 다양한 색채와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에 영향을 줬다는 앙리 루소는 종종 꿈에서 본 풍경에서 영감을 받고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파리 식물원에 다녀와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한다.
앙리 루소 그림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저 은빛 달이 너무 좋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아마 모마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이 그림 앞이 미술관 전체에서 가장 붐볐다. 이 그림을 보면서 짜증이 솟구쳤는데 그건 그림 때문도 인파 때문도 아니었다. 위 앙리 루소 그림처럼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뒤에서 들어오는 빛이 액자 유리에 비친다. 안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오래 감상할 수 없는데 걸작을 만나는 그 짧은 찰나가 이렇게 망쳐진다는 게 아쉬웠다.
이걸 여기에 걸어놓을 수밖에 없었나? 모마의 명성이면 분명 업계 최고 수준의 큐레이터를 쓸 거 같은데 내가 모르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방해해야 하는 의도를 찾지 못했다.
폴 고갱의 메이어 드 한의 초상화. 메이어 드 한은 네덜란드 화가로 고갱의 친구였다. 대담한 색채와 동적인 구도덕에 그냥 지나치기 힘든 그림이었다. 사과는 고갱이 존경했던 폴 세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앙리 마티스의 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봤을 때도 그렇고 살면서 수도 없이 마주쳤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 확실히 달랐다. 크기가 큰 미술작품일수록 현장감이 살아나서 더 큰 감명을 주는 것 같다. 대충 그린 것 같을 정도로 디테일을 절제했는데도 그림 속 인물들은 꼭 살아있는 것만 같다. 색감은 단순하면서 어찌나 오묘한지 아무리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림이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 이것도 미술 교과서에서 봐서 그런지 바로 시선이 갔다. 게다가 입구 정면에 있어서 더 눈에 띄는 작품이다. 테크닉이나 시각적인 미보다는 작품 뒤에 있는 철학 덕분에 많은 사람을 사로잡은 작품이지 않나 싶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Man Ray는 "보여지는 것만큼 보고 있는 작품"이라고 꼭 작품이 살아있는 듯한 뉘앙스의 평을 했다. 내면의 주관적인 자아와 외부 세계의 경계에 대해 이렇게 간단명료하면서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게 가히 천재적이다.
이렇게 뒷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초현실주의 작품들도 너무 좋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이것도 미술 교과서에 실린 것을 비롯해 달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흔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실제로 보면 크기가 너무 작아서 오히려 큰 프린트를 보는 것보다 감흥이 덜했다. 하지만 천재 작가의 작품이니 감흥이 없는 건 내 잘못이겠지, 뭐.
작은 극장이라는 작품이다. 사진으로는 티가 안 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연극장이나 뮤지컬 무대장식처럼 세로 폭을 이용한 구조가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스페인에서 달리 뮤지엄에 갔을 때도 못 본 작품인데 굉장히 신선했다.
프리다 칼로의 풀랑 창과 나라는 작품이다. 프리다보다 훨씬 작게 그려졌음에도 원숭이의 존재가 시선을 강탈한다. 원숭이는 프리다가 디에고 리베라와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었던 아이들을 뜻한다고 한다. 그걸 알고 보니 원숭이와 프리다를 연결해주는 분홍 리본이 보인다.
이 작품은 바로 옆에 거울이 달려있어서 관람자가 프리다 옆에 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프리다는 메리라는 친구에게 그림을 선물하면서 옆에 거울을 두게 해 늘 친구와 함께이고 싶은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어딘가 찡하고 친구가 보고 싶어 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가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시카고 미술관에 있어서 자주 보다가 푹 빠지게 됐는데 이 작품은 처음 보는 거였다. 나는 그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색감이나 사연 있어 보이는 분위기가 좋다. 그는 이 작품으로 미국 시골길의 외로운 풍경이 주는 감상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잭슨 폴록의 넘버 31. 잭슨 폴록은 이름과 스타일만 알고 별 관심이 없던 작가였는데 실제로 보니 그 진가를 쥐뿔만큼이라도 알 수 있었다. 무질서해 보이고 카오스 같아 보이지만 약간 불이나 물을 보며 멍 때릴 때 오는 평화감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캔버스의 크기 덕에 더 시선을 확 제압하는 면도 있다.
오딜롱 르동의 침묵이라는 작품이다.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를 자랑하는 그림들 사이에서도 은은하게 존재감을 뿜어냈던 그림이다. 나는 그림을 보고 부처님을 떠올렸는데 사실 그림의 주인공은 침묵과 비밀의 신이었던 하포크라테스라고 한다. 입을 막고 있는 제스처는 에너지를 아껴서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시 보고 싶은데 이 작품도 지금은 모마에 없다.
조셉 코넬의 탈리오니의 보석함. 그는 발레리나들에게 헌정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19세기에 유명했던 발레리나 Marie Taglioni를 향한 오마주였다. 상자의 뚜껑에는 탈리오니의 재밌는 일화가 새겨져 있다. 러시아에서 노상강도를 만난 탈리오니는 그의 간청 아닌 명령으로 인해 눈이 펑펑 오는 도로에서 동물 가죽을 깔아 놓고 춤을 춰야 했다고 한다.
맨디 바커의 표류를 넘어서: 불완전하게 알려진 동물들.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같지만 사실 오래 노출시켜 찍은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라고 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모차 바퀴, 세발자전거 바퀴, 전깃줄, 플라스틱 봉지다. 이런 미세 플라스틱 조각은 플랑크톤이 먹고 그 플랑크톤을 바다생물들이 먹음으로써 결국 우리가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도 이렇게 시각적으로 보니 머리가 띵했다.
무스타파 파루키의 익명의 고객을 위한 취수시설. 제목부터 난해한데 설명을 들으니 더 특이했다. 여섯 점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천사들이 천국에서 지구로 이민을 오면서 거치는 장소들의 청사진 같은 거였다. 건축과 디자인이 국경, 강제수용소, 검문소등에 쓰이면서 배타주의에 이용되는 것에 대한 낭패감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한다.
최대한 버티고 버티다 모마에서 나오니 3시쯤 되어 있었다. 느긋하게 나가 열두 시 넘어서 도착했으니 총 세 시간도 안되게 관람을 한 거에 비해 너무 피곤했다. 에너지가 텅텅 바닥나 패대기 쳐진 빨래가 된 기분에 곧장 집으로 향했다.
큰 미술관에 가면 늘 조급하게 감상하다 이렇게 금방 체력이 떨어지곤 했다. 전에는 심리학도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나도 나 자신에 대해 무지했다면 지금은 왜 그런지 안다.
일단 나는 신경과 감각이 예민한 사람 중 하나여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빠르게 에너지가 바닥난다. 늘 붐비는 미술관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연속적인 시각적 자극에 금세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책을 읽든 티비 시리즈를 보든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하는 스타일이라 작품을 대충 보고 넘어가면 가스불이라도 켜놓고 온 듯 찜찜한 기분이 든다.
작품을 감상하기도 벅찬 시간에 옆에 깨알만한 글씨로 써져있는 해설까지 읽다 보면 내가 미술관에 독서를 하러 온건가 현타가 온다. 그렇게 글을 읽을 거였으면 집에서 편하게 인터넷으로 봐도 될걸 미술관에서 퉁퉁 부은 발로 버티고 서서 꾸역꾸역 집중력을 모아야 한다. 그나마 오디오 해설이 잘 되어있으면 그런 시간 낭비 없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데 그런 미술관이 의외로 별로 없다(모마도 오디오 해설이 형편없었다).
작품 하나만 배우고 감상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작품을 수천 개 모아놓은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다 봐야 한다는 부담감, 언제 다시 올지 모르고 돈을 주고 보는 거니 뽕을 빼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더해지면 총체적 난국이다.
그나마 지금은 미국에 살고 뉴욕은 자주 올 수 있으니 쿨하게 귀가할 수 있었지만 루브르나 바티칸 박물관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허겁지겁 눈에 담으려고 게걸스럽게 감상했던 유명 작품들은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안 날정도로 희미하게 잔상으로만 남아있다.
그렇게 본 작품들은 내가 그 작품을 봤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단지 일방적인 경험에 불과했다. 진하게 남는 여운이나 작품과 내가 소통하며 만들어지는 특별한 느낌은 있을 수가 없다.
다행히도 이 날 모마에서 그런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이 작품이다.
미알못인 나는 레메디오스 바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바로가 초현실주의 작가 중에는 손에 꼽힌다해도 내가 모마에서 차마 다 보지 못한 수많은 걸출한 작가들만큼 유명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줬고 이 그림으로 일으킨 생각들과 감정은 평생 잊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집에 오자마자 잊지 않으려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뉴욕에 도착하고 이주 내내 이러저러한 핑계로 한 글자도 쓰지 않았었는데 이 작품 덕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의 감상은 아래 글에서 볼 수 있다.
모마는 약 200,000개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여기에 싣지 않은 작품들까지 합쳐도 나는 고작 0.07%를 감상한 셈이다. 애초부터 모든 작품을 다 보고 뽕을 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거였다.
결국 우리가 피곤을 무릅쓰고 비싼 돈을 줘가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정신을 살찌우고 삶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나는 미술관을 샅샅히 훑어보지는 못했으나 모마에 준 25달러가 아깝지 않을 교훈을 얻었다. 딱 한 작품만 보고 왔다 해도 그게 내 삶을 바꾼다면 수백 점의 겉만 핥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험으로 인해 다음부터는 미술관에 가서도 불안 초조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감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