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우리 외숙모는 항상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셨다. 그러면 나는 미끄러지듯 스르륵 이불로 데워진 따뜻한 아랫목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그러다 이불을 끼고 앉아 군고구마도 먹고 귤도 먹고 붕어빵도 먹었다. 이불 아래 엉덩이는 이글거리는 바닥에 녹아내려도 코끝은 웃풍에 날아온 찬바람으로 시렸던 그 옛날 겨울이 문득 생각났다. 그리 오래 전이 아닌 것 같은데 이미 요즘은 보기 힘든 옛날 풍경이다.
지금이야 보일러 전원을 누르기만 해도 완벽 차단된 2 중창에 갇힌 실내 공기가 간편하게 데워지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이불을 끌어안고 귤을 까먹던 그 겨울이 문득 그리운 겨울밤이다.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던 풍경이 사라진 지금의 겨울이 갑자기 삭막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내가 진짜 그리운 것은 방안의 제일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던 그 마음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빌딩 속에 있어도 어쩐지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사람의 온기가 그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랫목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물이 되었지만, 아랫목 정신을 계승해야겠다는 갑작스러운 생각이 떠오르는 중이다.
올겨울은 아랫목을 내어주는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해야겠다.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내 마음에 혹은 누군가의 마음에 더 따뜻한 온기가 돌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