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비우고 새로 채웠다.

by a universal seoulite

'검정, 회색, 흰색, 다시 검정...'


한겨울 출근길 도로 위, 잠시 신호대기 중인 동안 잔뜩 움츠린 사람들이 칼바람을 피해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무채색이 만연한 계절이다.


어느 날 내 옷장이 한겨울 무채색 풍경 같았던 날이 있었다. 옷장을 점령하고 있던 검정, 회색의 무채색 옷들이 갑자기 눈에 거슬렸다. 온통 무채색으로 가득한 옷장은 마치 내 모든 일상이 회사에 맞춰서 돌아가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너무 보기 싫었다. 체형에 맞지도 않고 피부톤에 어울리지도 않는 무채색 정장, 회사가 권장하는 아웃핏이었을지는 모르나 나의 개성 따위는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패션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옷장 속 옷들을 컬러풀하게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훨씬 생기 있고 예쁘게.


'oo님은 이 직종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외부업체와 미팅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다. 때로는 내 몸에 맞는 밝고 화사하고 편안한 옷이 잘 어울린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때로는 뻔한 틀속에 갇혀있는 유형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틀에 갇히지 않는 삶을 꿈꾸면서 직장이라는 커다란 틀속에 살고 있는 이중적인 삶이 옷 하나로 위로받는 기분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내가 속한 곳이 너무 무채색이 아닌가. 도로에서 주황색 택시와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버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차량 색상도 흰색, 검은색, 회색이 압도적이다. 출근하면 회사도 무채색이다. 심지어 때론 겨울부터 봄까지 하늘도 뿌연 미세먼지로 덮인 회색빛 무채색이다.


나는 문득 우리의 평소에 색상을 더하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개성 있는 지금의 내 옷장이 더 좋다.




그림 : Dan Colen/Electra(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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