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삐삐, 삐비빅"
알 수 없는 경고음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계속 울렸다. 내차가 아닌 렌터카라 경고음이 나는 이유를 알 길이 없고 차 안에 비치된 설명서는 영문이 아니다. 그림을 봐도 도무지 모르겠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저쪽도 나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근처 렌터카 회사 지점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무려 40분이나 더 가야 하는데 거기가 제일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운전을 처음 하는 여자 둘이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마음 졸이며 달린다. 그때 그녀가 태연하게 말한다.
"나 장롱면허야."
"운전한다며?????"
"아주 가끔 오빠차를 빌려 타긴 했지."
나는 그녀가 운전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정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손은 자동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고 내 오른발은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밟는 듯 잔뜩 힘이 들어간다. 해안 절벽의 비경이 식은땀 나는 롤러코스터 구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침착하게 도로연수 선생님으로 빙의되어 곡선 구간이 나올 때마다 핸들을 풀고 꺾고 브레이크를 밟고 풀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좁디좁은 도로는 너무 구불구불해서 차는 조금만 완급 조절을 잘못해도 언제든 차선을 이탈할 수 있을 것 같고 가파른 절벽은 조수석 옆에 바짝 붙어서 낭떠러지 아래 철썩이는 파란 바다가 훤히 보인다.
차는 곡선구간이 나올 때마다 도로를 튀어나가 하늘로 번지 점프할 것 같았고 그녀는 산책길을 벗어나려는 강아지를 달래어 목줄을 당기듯 브레이크 밟아 차를 가던 길로 다시 끌어오기를 반복한다. 내가 남편이었다면 분명 소리를 질렀겠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부부 사이가 아니었고 점잖게 예의를 갖춰 말을 하는 것이 어울리는 적당히 가까운 사이다. 이제야 운전연수는 남편이 해주는 게 아니라는 말을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인모를 경고음을 들으며 외국의 초행길을 도로 연수중인 그녀와 조수석에 탄 내 어깨는 잔뜩 올라가 있다. 조만간 하늘로 솟아오를 듯 한껏 올라가 있다. 하지만 진땀이 나도 내 긴장이 느껴지면 그녀가 더 긴장하게 될까 봐 최대한 즐기는 듯 보이려 애쓴다.
맞은편에 대형 버스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무사히 지나가 달라고 주문을 외운다. 좁은 도로 위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대형버스는 마치 우리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릴 듯이 가깝게 다가온다. 심장은 쫄깃하고 머리는 하얗게 질려간다. '아, 더는 못 참겠다. 대체 차를 정차할 수 있는 곳은 왜 안 나오는 거야!' 불안한 마음에 얼굴의 검은 그늘이 땅에 닿을 만큼 길게 늘어지고 '그만 내려!!!!!'라는 말이 터져 나오기 직전에 정차가 가능한 곳이 보인다. 나는 2배속으로 다급히 쏟아낸다.
"해안도로라 힘들지? 운전 바꿀까?"
눈앞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드디어 나타났다. 경고음은 조만간 차가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계속 울려대고 우리는 잔뜩 움츠린 채로 렌터카 회사 간판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전방주시를 하고 있다.
렌터카 회사 간판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직원이 차를 한 바퀴 둘러보고서 얘기한다.
"이 차량은 가까이에 다른 차량이나 물체가 가까이 오면 경고음 나도록 되어 있어. 걱정 마."
'What?!?!!!'
아무 이상 없다니깐 안심은 되지만 허무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경고등이구나. 막 출시되기 시작한 차량 접근 경고음을 들어봤을 리가 없는 나로서는 무슨 경고음을 이렇게 성가시게 만들어놨는지 원망스러울 뿐이다. '경고음이 너무 민감한 거 아닌가? 이렇게 자주 그것도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내다니!' 어쨌든 걱정할 일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렌터카 회사에서 나와보니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근데 이 무슨 아름다운 마을인가. 경고음 덕분에 계획에도 없던 마을에 들어왔는데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전방만 주시하며 오느라 곁눈질할 틈이 없었던 우리는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마음이 녹는다.
'우연히 닿은 곳에서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다니. 경고음 시끄럽게 나도 이해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