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꽃

by a universal seoulite

한 때 내가 모셨던 상사의 방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그림이 하나 걸려있었다. 자기 몸보다 큰 칼라꽃 바구니를 등에 진 여성의 그림이었는데 결재를 받으러 갈 때면 상사의 뒤편에 걸려있던 그 그림에 자연히 눈이 갔다. 워낙 꼼꼼했던 상사였기 때문에 보고서를 검토하는데 늘 엉덩이에 뿔이 날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가 말없이 보고서를 보고 있는 동안이면 눈 둘 곳이 마땅히 없는 나는 눈앞에 걸려있는 그 그림을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눈부신 칼라꽃이 예뻐서 꽃만 보였는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칼라꽃 무덤 아래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건넨 꽃다발을 안아 든 여인이 아니라 자기 몸짓보다 큰 꽃바구니를 짊어지기 위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여인의 얼굴은 바닥을 향해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 없는 얼굴이 꽃과는 너무 대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 흐른 후에야 내가 본 그 그림이 사실은 멕시코의 유명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에고 리베라는 가난한 농부, 노동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던 멕시코 거장으로 그의 그림 속 칼라꽃은 혁명의 주역, 민중을 상징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 눈에는 우아하고 세련되기 그지없는 그 아름다운 꽃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고단한 삶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꽃에 파묻힌 여인의 표정 없는 얼굴이 그제야 설명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최근에 읽었던 카페 '리브레' 서필훈 대표의 책,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에도 자기 몸의 몇 배나 더 큰 순백의 칼라 꽃다발을 들고 가는 커피 농장 노동자의 사진이 나온다. 중남미 커피가 주로 가파른 산지에서 자라기도 하고 많은 농장들이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수입이 부족할 때면 농장 노동자들이 지천에 널린 칼라꽃을 팔아서 부식거리를 산다고 한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는 노동집약적 커피 산업의 고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해서 커피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있고 노동자들의 도시 이주로 인해서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커피 산지와 달리 선진국 대도시에서는 물가상승으로 커피값이 해마다 오르고 있다. 과연 커피값 인상 수혜의 몇 프로나 산지의 농민들에게 돌아갈까? 우리가 마시는 커피 가격의 극히 일부만이 산지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책에 나온 커피 한 잔의 가격구조를 살펴보면 실로 놀라울 정도로 소액만이 산지 농민들에게 돌아가는데 지극히 불편한 사실이다.


서필훈 대표가 산지 농장을 사고 농민들과 커피 직거래를 하면서 노력하고자 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책에서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 뒤에 숨은 산지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너무 멋있는 말이다.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런 고결하고 숭고한 목적의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림 가득 자리 잡은 순백의 아름다운 칼라꽃에 눈길을 뺏겨 미쳐 보지 못했던 작은 여인의 고된 얼굴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 모쪼록 커피산업이 현대화되고 대규모가 되어갈수록 더 많은 산지 농부들에게 이윤이 골고루 나눠져서 칼라꽃이 조금 덜 고되고 슬퍼 보였으면 좋겠다.



*디에고 리베라(1886-1957),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기도 했고 희대의 엽기적인 결혼 생활로도 널리 알려진 멕시코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