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바다를 대신할 수 없다.

by a universal seoulite

볼 게 없는 채널을 연신 돌리다 EBS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남해에서 만난 친구'에 나오는 봄빛 푸른색 물결이 넘실거리는 남해 바다에서 멈췄다. 마침 신계숙 씨가 밭갈이하던 소를 보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떠올라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나왔는데 나도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마음이셨을지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애틋한 그 알 수 없는 느낌이 통했던 것 같다.


내 고향 부산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닿을 거리에 바다가 있었다. 학창 시절 마음이 답답할 때면 언제든 버스를 타고 무작정 바다를 향했다. 모래사장에 앉아 쉼 없이 철썩이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한참을 앉아있어도 질리지 않고 그렇게 낭만적이었다. 바다 보러 가자고 할 때면 친구는 재미도 없는데 또 가냐고 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바다가 좋았다.


버스가 해변에 가까워지면 언덕 너머 넘실거리는 파도가 보일 때부터 설레었던 나는 지금도 바다가 눈앞에 나타나면 변함없이 설렌다. 그래서 그런지 해외여행을 가도 결국 바닷가 도시들이 그렇게 좋다. 언젠가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는 날, 나는 아마도 바다가 보이는 해변 마을들을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온전한 내 시간을 누리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설렌다.


이런 내가 서울에 살면서 제일 아쉬워하는 게 가까이에 바다가 없다는 것이다. 별 일이 없어도 틈만 나면 그냥 바다를 보러 가던 그때는 날을 잡고 길을 나서야 볼 수 있는 게 바다라는 것을 몰랐다. 가까이는 인천이 있겠지만 서해 바다는 아무리 봐도 언제든 품어줄 것 같은 넉넉한 푸른빛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첫 출근 하던 날,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내가 부산이라고 답하자 그는 문 열고 나가면 바다냐고 물었다. 집 앞이 바다냐는 질문이 신선하다는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는 아버지가 어부시냐고 물었다.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그의 진심을 알 수는 없었지만 바다도시 부산을 시골 취급하는 서울 토박이에게는 호탕한 바다의 낭만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이 도심에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시원하게 뻥 뚫린 해안선을 바라보며 리드미컬한 파도소리를 듣는 힐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강변에 빼곡히 자리 잡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를 볼 때면 한강변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물욕이 끓어올라 근심 걱정이 한층 더 커지는 나는, 이 도시의 이방인일 뿐이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한강대교를 지날 때면 유독 서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13년 차 서울 사는 부산 사람의 글에 한강을 건널 때마다 내가 서울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한다는 서울살이 14년 차 대구 사람의 댓글이 달린 걸 보고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부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한강대교 위를 진입하는 그 순간이면 '다시 이방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 생활이 힘들수록 한강철교 위를 진입하는 그 순간이 더욱 끔찍하게 싫었다. 다음날 출근하면 마주쳐야 할 난폭한 상사들, 산적한 업무들, 기댈 곳 없는 깊은 고독감이 떠올라 내 마음은 갈 길을 잃고 한없이 울적해지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늘 막차를 타고 캄캄한 한밤중에 한강철교를 건넜다. 자정 무렵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집에 가자마자 자고 일어나면 그나마 울적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았다. 내가 이제 더 이상 열차를 타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으로 가는 이유는 어쩌면 한강철교 위에서 느끼는 그 고독한 이방인의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