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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universal seoulite May 06. 2022

신입사원 밥상머리 교육

입사하고 첫 회식이었다.


직원들은 먼저 식당으로 출발해 테이블에 둘러앉은 후 과장이 상무님을 모시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 자리는 테이블 맨 끝이지만 여성 우대를 적용해서 끝에서 한 자리 안쪽에 앉으라 했다. 무슨 말인고하니 회식 자리에서는 직급과 입사 순서에 따라 서열대로 앉는 정해진 룰이 있었던 것이다.


몇 개의 테이블을 연결해 만든 커다란 테이블에 전원 착석을 완료하자 맞은편에 앉은 사수가 내게 말했다.


"수저, 물컵, 소주잔 세팅은 원래 막내가 하는 거예요."


"네."


'원래' 그런 거란다. 그러고 보니 옆 테이블에서는 그 테이블에서 제일 서열이 마지막인 사원이 숙련된 솜씨로 테이블마다 소주잔과 수저 세팅을 하고 있었다. 나도 얼른 눈치를 챙겨 신속하게 수저와 물컵 등을 세팅을 했다.


주문한 고기가 나오자 나는 불판에 고기를 가지런히 뉘이고 알맞게 색이 입혀지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먹기 좋게 배치했다. 처음 하는 것치곤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사수가 또 말했다.


"여기 선배님 소주잔이 비었는데 따라드리세요. 빈 잔이 보이면 재빨리 채워드리세요."


"아, 네."


"아이, 윗사람이 잔을 비우고 술을 따라 그 잔을 권했으면 원샷한 다음 잔을 채워 윗사람에게 다시 드리시고요."


우리 아버지는 애주가시지만 한 번도 집에서 엄마나 나, 남동생에게 술을 따르라고 시킨 적은 없으셨다. 아버지는 그게 싫다고 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솔직히 같은 술잔을 돌려마시는 것은 끔찍했다. 간염 주사를 언제 맞았었더라 기억을 더듬는 내 본능을 겨우 누르고 고약하게 쓴 약을 넘기듯 술을 넘겼다. 술잔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각자 술잔이 있는데 잔을 돌리면 사내 근로의욕이 더 고취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고기로 배를 어느 정도 채워가던 그쯤, 파도타기가 시작되었다. 누구도 예외없이 깨끗하게 잔을 비워야 했다.


'아니 근데 왜 파도타기를 돌고 돌고 또 돌까? 쓰나미도 아닌데.'  


나는 다 받아마시다가는 죽을 것 같은 나머지 물 잔에 물수건에 국에 틈틈이 티 나지 않게 잔을 털어 넣기 바빴다. 그러다가 예리한 신대리님 레이더에 잡혀서 벌주를 받고야 말았다. 아무리 봐도 파도타기는 주조회사에서 술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교묘히 개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볼까? 오늘은 우리 신입사원부터 얘기해보지."


상무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또 뭐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문장 조합은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약 30명, 도합 60개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해 조준되었다. 머릿속은 더 엉망진창으로 꼬여가고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렇게 내 차례는 지나갔다. 다음 차례가 일어서서 말하면 정성스럽게 바라봐주고 끝나면 박수치기를 28번 정도 더 하고 나니 마지막으로 상무님께서 마무리 말씀과 건배사를 하셨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사수가 나를 구석으로 잠깐 불러냈다. 다음 장소를 섭외하러 미리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당 주변 전원이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룸을 예약할 수 있는 노래방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이 일어서기 전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서 다음 장소를 미리 알려야 했다.


노래방에서 서열순은 식당에서와 반대로 적용되었다. 막내부터 노래를 시작했고 분위기 처지는 노래 선곡은 눈치껏 피해야 했다. 노래를 하기 싫어도 예외는 없었다. 일단 모두 참석해야 했고 누구든 한 곡은 꼭 불러야 했다. '전 노래하기 싫습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필요한 사람이 하고픈 일을 스스로 하는 문화였기에 나로서는 쉬이 납득이 되지 않는 회식 자리였다. 밥을 먹은 것인지 눈칫밥을 먹은 것인지 모호한 기분에 그저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동안 세월이 흘렀고 회식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공동체 의식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회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모임 인원 제한 및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가 실시된 직후, 회사 내 여기저기에서 회식 소식이 들리고 아직은 식당에 모여 앉아서 밥 먹는 게 불편한 데 가기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 못 할 고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회식이 실종된 것을 기뻐하는 직장인들도 많다고 들었다. 나 역시도 회식 걱정 없이 살았던 지난 시간이 너무 좋았다. 어쩌면 MZ세대에게 그동안 회식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간접 체험했거나 구설로 전해 들은 유물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부디 엔데믹이 되어서 회식을 재개하게 되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에 한강공원에서 캠핑 의자 펴고 앉아 회식하던 사람들의 갈 곳 잃은 눈빛이 떠오른다. 대표님 옆에 가까이 앉은 한 사람이 대표와 직원들 사이를 오가며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섭취하고 있던 직원들의 시선은 계속 허공을 방황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회식하는 직장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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