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점심을 먹고 서점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새로 나온 책 코너 속 한 저자의 이름이 눈에 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자와 동명이인의 아는 얼굴이 떠올랐고 그것을 시작으로 작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무고개를 하듯 생각났다.
나의 작년 1월은 참으로 기이하게 시작되었다.
올 겨울과 달리 유난히도 추웠던 작년 1월 내 차는 삼일 동안 배터리가 두 번 방전되었는데 당시 시동이 안 걸리는 차량 보험 콜이 하루 20만 건 보고되었고 그중 두 번이 내 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아침 출근길에 차바퀴가 굴러가는 느낌이 평소보다 둔탁해서 보니 바람이 완전히 빠진 타이어 대신 휠이 애를 쓰며 굴러가고 있었다. 보험을 불러 확인해보니 산업 현장에서나 있을 법한 엄청난 두께와 길이를 자랑하는 왕 나사가 박혀 있었다. 타이어 땜질을 하던 기사님도 나도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렇게 큰 사이즈 나사를 발견한 사실에 놀라워했고 나는 아마도 살면서 그렇게 큰 나사를 또 볼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고작 1시간 남짓한 짧은 퇴근시간 동안 수도권에 10cm 눈폭탄이 내렸던 날, 눈을 한가득 뒤집어쓰고 온 위층 주차 차량에서 밤사이 녹아내린 눈이 천장 크랙을 타고 하필이면 그 많은 차 중 내 차위에 흘러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천장 콘크리트에 스며든 물이 시멘트 칵테일이 되어 떨어진 덕에 흡사 겨울왕국 엘사라도 다녀간 듯한 얼음 결정 모양의 패턴이 차량에 야무지게도 들러붙어 있었고 문질러봐도 닦이지 않았다.
운전석에서 내다보는 바깥세상은 마치 빙판 얼음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신비롭다면 신비로웠지만, 나는 새우등처럼 굽은 자세로 목을 쭉 빼고 운전대에 바짝 붙은 다음, 희뿌연 앞유리 틈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차선을 따라 기다시피 하여 겨우 세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차장 사장님은 함박웃음으로 아주 크게 반겨주셨다. 말하자면 골든벨을 울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얘들아, 오늘 영업 끝났다. 가게문 닫아라'라고 말할 것만 같은 그런 표정이셨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은 작년 1월 일주일 동안 발생한 일이다. 나는 당시 올해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고 연초부터 이렇게 액땜을 거창하게 하나 싶으면서도, 그 많은 일들이 일주일 사이에 벌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로또를 사러 가야 하는 게 아닌가 농담을 하며 시원하게 웃어넘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연초부터 회사는 회사대로 엉망진창으로 꼬여갔고 여름쯤에는 정말 모든 게 다 싫어질 정도로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생겨라는 일들이 끝을 모르는 듯 계속 몰아닥쳤다. 너무 억울하고 믿기지가 않아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건들기만 해도 둑이 터지듯 눈물샘이 터져서 주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때는 누군가 위로의 말을 건네어도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위로는 하지 마'라는 생각을 품은 채 세상을 원망하는 것에 내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듯 화가 나 있었다. 당시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위로의 말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였는데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그 관용구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 그때는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그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금지어로 지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잔인한 여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도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같이 날씨가 좋다는 소소한 말을 건네며 살뜰히 안부를 챙겼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같이 먹자고 하며 내 기운을 북돋워주려고 애를 썼고, 주말이면 내가 혼자 더 깊은 슬픔 속으로 침잠할까 봐 아침부터 바람 쐬러 가자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내가 화를 내면 화를 내는 대로 아무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무기력할 때는 무기력한 대로 나의 아픈 마음을 공감해 주었고 내 곁에서 머물러 주었다. 나는 그들이 자기 일처럼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까지 공감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경외감마저 들 정도로 그 어떤 말보다도 더 크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런 헌신적인 애정과 의리가 너무 감사하면서도 그저 미안한 마음이었다. 시커먼 비구름 떼가 우리 집 거실에서 사라질 것 같지 않았던 그 어둡고 눅눅한 여름을 내가 견디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언컨대 회사에서 만난 귀한 인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회사에서는 친구를 만들 수도 없거니와 만들려고도 하지 말라 한다. 회사를 나오면 사라질 인연에 애쓰지 말라는 건데 일리가 있다. 편해지면 편하게 일을 더 얹어주기도 하고 하나를 알면 둘을 더 알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라 사생활에 대한 질문도 경계 없이 무례하게 던지기도 하니까. 나도 한때는 그 말을 맹신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포커페이스를 하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직장인들의 통념을 깨고 거리두기의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소중한 회사 친구들이 내게는 있었다.
잔인한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접어들 무렵,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그때쯤에 회사 동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연이어 듣게 되었다. 무슨 사정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엊그제 같이 일했던 동료가 아직 부모의 그늘이 절실할 어린 자녀들을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충격적이기도 했고 그 고통의 크기가 얼마만큼일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너무나도 비통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것은 내가 생과 사, 인생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는지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이 질문을 끊임없이 되물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사건들이 일단락되었고 그제야 나는 내게 휘몰아쳤던 소동들에서 빠져나와 뒤얽혀있던 온갖 감정들을 실타래에서 풀어내듯 하나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모든 사회활동이 거의 금지되다시피 한 것이 오히려 온전히 내 안의 감정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고 그렇게 나는 내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의 작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성장통'이었다고 하기엔 성장통이란 단어가 20대 청춘에게나 어울릴 법한 것 같기도 하고, '철들다'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미숙하고 모자라서 어른스럽지 못하고, 운수가 나빴다 하기에는 '삼재'도 아니었고 네이버 신년운세는 '구름이 걷히고 용이 하늘에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할 만큼 좋았다.
"왜 하필 남들은 겪지 않는 이런 일들이 나한테 일어났을까?"
내 물음에 회사 친구가 답했다.
"응, 더 성장하려고 예방 주사 맞은 거야."
'얼마나 더 성장하려고? 나 힘든데...'
생각해보면 피터팬도 아닌데 피터팬처럼 청춘의 그림자를 껴안고 살다가 그제야 놓지 못하고 있던 내 청춘을 놓아준 게 아닐까. 나는 나이는 먹었는데 어른이 되기 싫어서 여전히 20대 껍데기를 쓰고 살고 있었다. 트렌드를 쫓고 젊은 친구들을 동경하며 어렵고 힘든 현실은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서 외면하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나 보다.
영원할 것 같던 고통의 순간들도 지나고 보니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처럼 찰나였다. 누군가 건넨 마시면 지혜로워지고 아름다워진다는 신비의 명약, 진하게 착즙 된 고농축 희로애락을 마시고 무겁게 가라앉은 침울한 멜로디의 고난 교향곡에 취해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회사 동료의 말대로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조금은 더 성장했기를 바란다. 나는 이제 고통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고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